주간 정덕현

‘선덕여왕’, 왜 시청률이 오르지 않을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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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왜 시청률이 오르지 않을까

D.H.Jung 2009. 10. 2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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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이 보여주는 완성도와 시청률의 상관관계

애초에 26회 만에 40%에 도달한 ‘선덕여왕’은 여러 징후들이 50%를 손쉽게 넘길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했다. 그것은 사극이라는 장르가 가진 힘과 '선덕여왕'이 소구하고 있는 3,40대 여성 시청층, 그리고 김영현, 박상연 작가 특유의 스토리텔링이 가진 힘이 삼박자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선덕여왕’의 시청률은 40%를 넘기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 그 이유는 도대체 뭘까.

먼저 지목되어야 할 것은 드라마가 진행과정에서 점점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선덕여왕'은 사실 그렇게 쉬운 드라마는 아니다. 전쟁 사극 같은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형적인 멜로가 낯선 이야기들 속에 감초처럼 존재하는 사극도 아니다. 초반부에 중국에서부터 신라로 넘어와 낭도로 성장하는 덕만의 이야기는 스펙터클을 보여주었지만, 덕만이 궁으로 들어와 본격적으로 미실과 대적하는 이야기부터는 정치사극으로 넘어가면서 볼거리는 줄어들었다.

게다가 이 정치사극은 심리극에 가깝고, 그 연출 또한 추리극에 가깝다. 따라서 인물들의 대사를 듣다보면 처음 보는 이들은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추리극 같은 구조의 연출은 당장 대사를 통해 사건의 정황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궁금증을 한참 증폭시킨 후에 뒷부분에 가서 정황을 터뜨리는 것으로 드라마에 이미 몰입된 시청자들에게는 즐거움을 줄 지 모르지만, 새로 드라마를 보려는 이들에게는 장벽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마치 추리극을 중간부터 보는 것과 같다.

대결구도에 있어서도 이 드라마는 결코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사극이 내세우는 선악구도는 그 옳고 그름이 명백한 게 단점이자 강점이다. 너무 단순해보이지만 누구나 보면 척 알 수 있는 그 선악구도의 대결 속에서 시청자들은 쉽게 몰입될 수 있다. 하지만 '선덕여왕'의 대결구도는 옳고 그름의 차이라기보다는 사고관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선악 개념을 넘어서 있다.

미실은 주인공 덕만의 대립자이지만 또 한 편으로 보면 훌륭한 여성 지도자로도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덕만은 미실을 그렇게 인정하고, 자신이 맞닥뜨린 문제를 미실에게 가져가 물어본다. 미실이 종종 덕만의 멘토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물론 미실과 덕만 두 인물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대결구도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상대방에서조차 배우려하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각자 가진 사고관의 대결을 갖는 이 이야기는 물론 매력적이다. 하지만 시청률 면으로 보면 그다지 쉬운 설정은 아니다. 각각의 사고관을 이해시켜야 하며 그 사고관의 부딪침을 극적으로 만들어내고 거기서 한 인물의 승리와 성공을 그려내야 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일 수 있을까. 게다가 선악대결구도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그 대결이 갖는 의미를 읽어내는 것 자체가 힘겨운 일일 수 있다.

'선덕여왕'의 시청률이 오르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드라마가 너무 꽉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인물 또한 살리는 인물, 죽이는 인물 이렇게 나눠서 그려낸 것이 아니고, 각자 제 역할을 하는 인물들로 세워두었기 때문에,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각 인물들의 상황을 모두 이해해야 전체 드라마를 이해할 수 있는 불편함이 생기게 된다. 물론 이 불편함은 즐거운 것이고 완성도 면에서도 높게 평가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나오는 대중적인 수치인 시청률에는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다.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선덕여왕'이라는 꽉 짜여진 완성도를 가진 꽤 복잡한 사극이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로 여겨진다. 최근 미실의 난을 통해 어떤 스펙터클을 보여주고, 또한 미실이 가진 완벽함에 도덕적 균열을 만들어내는 것은 '선덕여왕'이 완성도와 시청률 사이에서 처한 상황을 돌파하려는 의지처럼 보인다. 이렇게 '선덕여왕'의 시청률이 오르지 않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은, 물론 당연히 올려야만 하는 것으로 취급되는 시청률 때문이 아니다. 이것은 어쩌면 자칫 시청률을 위해 지금껏 쌓아온 완성도에 흠집을 내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30%든 40%든 '선덕여왕'은 이미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모쪼록 시청률에 대한 압박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