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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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이 궁금해? 고미남에 빠져봐!

D.H.Jung 2009. 11. 6.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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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이시네요', 그 비현실적 세계가 보여주는 현실

'미남이시네요'에서 고미남의 어투는 비현실적이다. "-다", "-까?"로 끝나는 그의 말투는 남장여자라는 설정 때문인지 군대식 어투를 그대로 빼닮았다. 처음 이 드라마를 접하는 이들은 아마도 그 어투가 거슬렸을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이 어투를 계속 듣다보면 거기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심지어 그 어투가 어떤 묘미까지 주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다시 돌아보면 고미남의 비현실적 어투는 이 드라마를 보기 위한 마치 하나의 훈련과정처럼 여겨진다. 이 어투가 적응되는 순간부터 당신은 '미남이시네요'의 세계 속으로 깊이 들어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고미남의 어투가 비현실적인 것처럼 '미남이시네요'는 비현실적인 세계를 그린다. 아이돌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미남이시네요'에서 현실이라고 하는 것은 부모에게 버려졌거나, 고아로 자라나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다는 것 정도이다. 그것도 심각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이 드라마에는 우리가 늘 신문기사를 통해 목도하고 있는 아이돌들의 진짜 힘겨운 현실 같은 것은 들어가 있지 않다. 사건사고 속에 등장하는 장기계약에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내야 하는 아이돌의 현실은 이 드라마와는 무관하다.

이유는?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그런 현실보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판타지로서의 아이돌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아이돌의 실제 현실을 바라보고 싶어 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돌 자체가 하나의 판타지를 근거로 서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이들이 꿈꾸는 스타고, 땅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저 해와 달처럼 하늘 위에 떠서 빛나는 존재로서만 자신을 드러낸다. 그러니 그들이 판타지의 세계에서 추락해 현실의 중력 위에 놓여지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아이돌이 아니다.

'미남이시네요'가 그리는 세계는 바로 이 현실이 삭제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아이돌의 세상이다. 그러니 현실적인 갈등은 이 세상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거나 대단히 미약하게 처리된다. 드라마가 본질적으로 갈등구조를 가져간다는 점에서 이 현실적인 갈등이 배제된 공간은 자칫 잘못하면 밋밋한 드라마를 만들어버릴 위험성이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애초부터 현실적인 갈등 자체를 고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이돌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현실에 대한 생각 없이 몰입되는 아이돌의 세계 속에서의 한바탕 가슴 쿵쾅대는 설렘이니까.

처음 고미남(박신혜)이 선 자리와 A.N.GELL의 리더인 황태경(장근석)이 선 자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그 거리감이 있어야 그만큼 설렘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팬덤과는 먼 거리에 있는 수녀원에서 살아가던 고미남이 A.N.JELL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세계로, 또 거기서 그 리더인 황태경에게로 점점 다가가고 가까워지는 이야기다. 고미남은 이 굳건히 닫혀져 대중들의 상상 속으로만 존재하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그 판타지의 로맨스를 만끽하는 존재다.

남장여자라는 코드는 이 드라마에서는 정반대로 활용된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이나 '바람의 화원' 같은 작품에서 남장여자 코드는 그 당사자가 연인에게 다가가고 또 드러나는 방식으로 사용되지만, 이 드라마에서 남장여자는 애초부터 팀원들에서 발각되어 오히려 그들의 보호를 받는 코드로서 활용된다. 즉 남장여자로 남자들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난 남장여자를 남자들이 보호해주는 식이다. 그녀를 보호해주는 세 남자는 순정만화에서 갓 나온 듯, 한 명은 늘 상대방을 즐겁게 해주고(제르미), 한 명은 보이지 않게 상대방을 배려해주며(강신우), 다른 한 명은 늘 건방지고 툴툴거리지만 나름 카리스마를 갖추고 그녀를 보호해주는(황태경) 인물이다.

'미남이시네요'는 이 비현실적인 인물들이 현실의 무거움과는 전혀 상관없는 아이돌의 세계를 만끽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즉 이 드라마가 닮아있는 순정만화나, 이 드라마가 소재로 삼고 있는 아이돌에 대한 판타지는 바로 이 드라마의 정체성이다. 우리는 현실을 잠시 잊기 위해 순정만화의 세계에 빠져들고, 그 무거움을 내려놓기 위해 아이돌의 판타지 속에 뛰어든다. 그리고 그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현실이 배제된 '미남이시네요'를 보면서 도대체 저게 무슨 쓸데없는 이야기인가 하고 생각하면서 거기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가 순정만화를 보거나 아이돌에 열광하면서도 왜 그런지를 이해하려들지 않았던 데서 오는 결과다. 이 드라마는 현실을 배제한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거꾸로 사람들이 잊고 싶고 벗어나고 싶어하는 그 현실을 드러내주고 있다. 따라서 고미남의 비현실적 어투는 현실을 지워내는 지우개이면서, 이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