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수상한 삼형제’, 그 수상한 행보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수상한 삼형제’, 그 수상한 행보

D.H.Jung 2009. 11. 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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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게임을 시작하는 ‘수상한 삼형제’

‘수상한 삼형제’가 수상하다. 시작 전부터 문영남 작가라는 아우라 때문에 또 다른 막장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생각과는 달리 꽤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특히 남자친구에게 일방적으로 차인 주어영(오지은)이 김이상(이준혁)을 통해 다시 생기를 찾는 모습은 이 드라마의 밝은 행보를 기대하게 했다. 하지만 역시 본색은 버릴 수 없는 것일까. ‘수상한 삼형제’는 서서히 그 수상한 행보를 보이면서 시청자들 사이에 논쟁마저 일으킬 정도로 강한 설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주어영과 삼 년을 연애하다 차버리고는, 그녀가 김이상과 가까워지게 되자 질투를 느끼고 그 사이에 다시 끼어들게 되는 왕재수(고세원)는 이름처럼 왕재수다. 드라마 속의 삼각관계라는 것이 거기서 거기라고 여겨질 지도 모르지만 이 삼각관계는 지나치게 극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왕재수가 검사로서 김이상의 상사로 부임해 오고, 그 권력을 남용해 주어영과의 사이를 가로막는 이야기는 치졸함과 치사함의 절정을 보여준다. 삼각관계의 설정이야 드라마를 위해 어떻게든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지만, 김이상이 보는 앞에서 왕재수가 그를 비웃듯 노려보며 억지로 주어영과 키스하는 장면은 범죄적인 뉘앙스마저 풍긴다.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주어영과 김이상 사이에 어떤 애틋한 감정을 만들어놓은 것이 결국은 시청자들의 공분을 끄집어내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것은 또다시 문영남 작가의 자극적인 갈등 구조로의 회귀다. 문영남 작가는 먼저 지극히 착하고 순한 인물을 먼저 세워두고는 거의 악마에 가까운 대립자를 통해 그 주인공들을 핍박하는 것으로 갈등을 극대화시킨다. 물론 결론은 사필귀정이지만 드라마는 결론만큼 과정이 중요한 콘텐츠이다. 문영남 작가의 작품들이 짧은 사필귀정의 이야기보다 긴 핍박이 가진 울화통의 이야기로 기억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수상한 삼형제’에는 주어영과 김이상 사이에 끼어드는 왕재수 이외에도, 전형적인 민폐남인 장남 김건강(안내상)이 등장하고, 그 지질함을 끝까지 감싸고도는 엄마 전과자(이효춘)가 등장해, 보는 이의 혀를 차게 만든다. 마치 종 부리듯 며느리인 도우미(김희정)를 마구 대하는 전과자가 민폐만 끼치는 김건강을 상전 대하듯 하는 장면은 또 하나의 부정적 관계로서 시청자들의 눈을 밟는다. 전과자 연기를 하고 있는 이효춘의 연기력 논란이 일어나는 이유는 그 대사 자체가 연극적인 데서 오는 이유도 있지만, 그녀의 캐릭터가 가진 과장된 설정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문영남 작가는 드라마라는 살아있는 유기체가 저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작가라기보다는 애초부터 설정된 캐릭터를 부여한 인형들의 놀이를 즐기는 작가처럼 보인다. 인물들의 이름이 그 캐릭터로 부여되는 것은 어쩌면 그 단초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주어영은 이름처럼 두 남자 사이에서 어영부영대고 있고, 김이상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며, 왕재수는 말 그대로 왕재수다. 전과자는 무슨 잘못인지 모르지만 아버지인 김순경(박인환)에게 체포되어 있는 말 그대로의 전과자이며, 심지어 며느리인 도우미는 진짜 며느리라기보다는 집안일 돕기 위해 고용된 도우미처럼 보인다.

‘수상한 삼형제’의 행보가 수상해 보이는 것은 이미 변화의 여지없이 설정된 캐릭터들이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작가의 의지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인위적인 손길은 그것이 인위적이기 때문에 부자연스러워 보이고, 때로는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비정상적인 모습은 보는 이를 답답하게 하고 심지어 화나게도 만든다. 이것은 작가가 시청자들과 벌이는 하나의 게임이다. 거기에 말려들면 화를 내면서도 더욱 더 쳐다봐야만 하는 이상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게임. ‘수상한 삼형제’의 수상한 게임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