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주말극의 가족, 절망이거나 희망이거나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주말극의 가족, 절망이거나 희망이거나

D.H.Jung 2009. 11. 15.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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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의 가족, '그대 웃어요'의 가족

저런 집구석에서라면 하루도 못살겠다. '수상한 삼형제'가 그리는 가족의 모습이 주는 인상이다. 직업조차 없고 이혼까지 한 장남은 여전히 정신 못 차리며 '인생 한 방'을 외치고, 그래도 장남이라고 챙기는 어머니 때문에 그 집 둘째 며느리는 거의 하녀처럼 구박당하며 죽어라 일만 한다. 그걸 아는 둘째 마음이 좋을 리가 없다. 그래도 어머니 보약이라도 하라며 돈을 챙겨주지만, 그 돈이 전부 장남에게 들어가는 게 둘째는 영 마음이 좋지 않다. 셋째는 건실하고 유쾌하게 살아가려 하지만, 새로 만난 여자가 나쁜 놈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꼴을 보게 된다. '수상한 삼형제'가 그리는 가족은 늘 이처럼 지지고 볶는다. 보는 이의 혀를 차게 만드는 그 진상에 그러나 시청자는 좀체 눈을 뗄 수가 없다.

저런 집이라면 정말 살고 싶다. 반면 '그대 웃어요'가 그리는 가족의 모습이 주는 인상은 정반대다. 물론 이 가족에 진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업을 실패하고도 여전히 정신 못 차리는 서정길(강석우), 고이 공주처럼만 살아와 여전히 아무 일도 못하는 아내 공주희(허윤정), 유학이라고 보냈더니 도박으로 돈만 다 날리고 돌아온 장남 서성준(이천희), 능력 있는 의사지만 어쩌다 애 딸린 이혼남에 빠져버린 장녀 서정경(최정윤), 결혼식 당일 소박을 맞은 막내 서정인(이민정). 이 가족은 진상 아닌 인물이 없다. 하지만 이 진상을 거둬서 함께 살아가는 강만복(최불암)과 그 가족이 있어 이 드라마의 가족은 살 맛이 난다.

두 가족 모두 늘 사건이 끊이지 않지만, 그 양상은 사뭇 다르다. '수상한 삼형제'의 가족은 희망을 좀체 발견하기가 힘든 반면, '그대 웃어요'의 가족은 늘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어떤 희망을 발견한다. 그 희망의 진원지는 바로 가족이다. '수상한 삼형제'의 가족은 그 부딪침이 파탄지경으로 극화되지만, '그대 웃어요'의 가족은 엇나가도 본래는 착하며, 그래서 결국에는 제 자리로 돌아올 거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것은 두 드라마 속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멜로의 양상에서도 드러난다. '수상한 삼형제'의 막내 김이상(이준혁)과 주어영(오지은)의 멜로는 왕재수(고세원)라는 파렴치한 인물로 인해 고난을 맞는다. 왕재수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약속했으면서도 무슨 이유인지 주어영을 말 그대로 가지고 논다. 그 양상은 혼인빙자간음 같은 범죄 수준이다. 그러니 이 관계를 바라보는 시청자의 마음은 흐뭇함이 아니라 분개에 가깝다. 김이상이라는 이상적인 인물과 주어영 같은 착한 여성 사이에 끼어든 범죄적 인물 왕재수에 대한 분노의 힘은 이 드라마의 멜로가 시청자들을 애태우게 하는 이유다.

한편 '그대 웃어요'의 강현수(정경호)와 서정인(이민정)의 멜로는 보는 이들을 풋풋하게 만든다. 정인의 언니인 정경(최정윤)을 짝사랑해오다 정리하게 된 강현수는 서정인을 동생처럼 생각하지만, 차츰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그녀에 당혹스러워 한다. 이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것은 의도적인 장애물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인 부족함 때문이다. 완전하지 않은 그들이기에 사랑이 자꾸만 엇갈리게 되는 것이다.

가족과 멜로를 통해 볼 수 있듯이 두 드라마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약간 다르다. '수상한 삼형제'에는 물론 희망적인 인물이 있지만 '아무리 해도 역시 안되는' 인물이 존재하고, 그 인물들로 인해 가족은 어려움을 겪는다. 작가는 가족이 늘 그렇게 지지고 볶으면서도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존재라고 말한다. 반면 '그대 웃어요'에는 아무리 인간 말종이라도 어느 부분에서는 그 허약함이 드러나고, 그 속에서 변화의 가능성은 포기되지 않는다. 작가는 가족의 어려움은 그 인간 말종의 변화 불가능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그 부족함이 채워질 때, 변화는 여전히 가능하다.

따라서 드라마의 해법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수상한 삼형제'의 해법은 그 변화 불가능한 가족의 고민거리들이 대결구도에서 지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이 드라마는 선악구도가 분명하다. 반면 '그대 웃어요'의 해법은 그 부정적 인물들이 긍정적인 인물로 개과천선하는 과정에 있다. 주말드라마의 이 두 가족은 어려움을 맞이해 우리가 가족을 생각하는 그 두 가지를 잘 보여준다. 하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벽에 서 있는 듯한 절망적 인물과 그래도 그들과 함께 살아내는 긍정적 인물이 있어 살아갈 수 있는 가족이고, 다른 하나는 절망적 인물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속에서 발견하는 변화가능성과 희망이다. 당신은 어느 가족이 더 궁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