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제중원’, 사극의 확장? 의드의 진화?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제중원’, 사극의 확장? 의드의 진화?

D.H.Jung 2010. 1. 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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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 사극과 의학드라마 그 흥미로운 봉합

‘제중원’은 사극의 확장일까, 의학드라마의 진화일까. 시간의 축으로 잘라 보면 ‘제중원’은 사극이 아직까지는 밟지 않은 미지의 시간, 구한말을 다루고 있고, 공간의 축으로 잘라 내면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제중원을 담고 있다. 시간적으로는 사극이면서 공간적으로는 의학드라마의 연장인 셈이다.

시간의 축이 주는 사극이라는 장르는 현대극이 할 수 없는 극적 구성을 가능하게 한다. 구한말이라는 시간은 신분제가 무너지고 서구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시기. 그 시간 위에 신분의 틀에서 이제 벗어나 마주보기 시작한 두 인물, 즉 황정(박용우)과 도양(연정훈)이 서양의학이라는 새로운 서구문명을 축으로 대결선상에 서게 된다.

황정이 백정의 아들이라는 점은 소 잡던 손이 사람 살리는 손으로 바뀌는 극적인 삶의 반전을 예고한다. 그는 의술을 통해 바닥의 위치에서 최고의 위치로 성장해가는 인생역정을 보여준다. 반면 사대부 집안 아들로 태어난 도양은 성균관 유생이 되지만 서양의학에 빠져들면서 2인자의 삶으로 전락한다. 신분제가 폐지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마음 속의 신분'은 버릴 수 없던 시대, 이 두 사람의 성장과 전락은 자신의 '마음 속 신분'과 부딪치며 내적 갈등을 만들어낸다.

'제중원'은 이처럼 엄격한 신분제 아래서 구조되는 기존 사극과는 차별화를 이룬다. 신분제가 무너지고 근대가 눈을 뜨는 그 지점에서 계급은 신분제가 아니라 능력의 잣대로 새롭게 나누어진다. 물론 사극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가장 강력한 갈등기제로서 계급의 이야기는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신분적 차이에 대한 것이 아니다. 신분과 능력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물의 내적 갈등이 이제 계급의 문제로서 대두된다.

의학드라마로서의 '제중원'은 동서양이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의 미세한 떨림들을 잡아낸다. '하얀거탑'의 정교한 수술 장면의 디테일들과 병원 내 정치적 대결구도는 '제중원'이라는 의드에서도 중요한 바탕을 제공한다. 의드의 계보로서 '외과의사 봉달희'가 멜로드라마와 의학드라마를 잘 봉합했다면, '뉴하트'는 의드의 장르화를 꿈꾸었고, '카인과 아벨'은 의드와 다양한 장르들, 즉 액션이나 미스테리, 멜로, 심지어 가족드라마까지를 엮어내며 의드의 폭넓은 장르 포용력을 보여주었다.

그 연장선 위에서 '제중원'은 이제 사극과의 새로운 봉합을 시도한다. 이것은 흥미로운 장르의 결합이 아닐 수 없다. 사극과 의학드라마는 보수적인 시청층에 호소하는 우리네 드라마에서 늘 선도적인 실험을 해온 장르이면서, 동시에 대중적으로도 성공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실험성과 대중성이 공존하는 이 두 장르의 결합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아직은 확실히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두 장르가 가진 힘을 구한말이라는 시간과 제중원이라는 공간으로 끌어 모은 그 기획적 포인트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충분한 가능성을 담보한다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것을 얼마나 완성도 높게 구현해내는가의 문제만 남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