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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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 성별을 넘어 공감 받는 이유

D.H.Jung 2010. 1. 17.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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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는 불평등을 다루는 멜로드라마다

요리하는 남자에 대한 편견이 있다. 그 남자가 꽤 감성적이고 여성들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행동할 것 같은 자상함을 가졌을 것이라는 거다. 하지만 틀렸다. 요리하는 남자라고 꼭 그런 건 아니다. 특히 요리사라는 직업의 세계로 들어가면 그 요리는 어쩌면 전쟁과 같은 것이 될 지도 모른다.

파스타라는 요리를 소재로 삼는 드라마 '파스타'는 이런 편견을 트릭으로 사용했다. 게다가 그 트릭에 동원된 배우는 부드러운 남자의 대명사격인 이선균이다. 그러니 횡단보도 한 가운데서 터져버린 비닐봉지에서 떨어진 금붕어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서유경(공효진)의 두 손을 모아 그 위에 금붕어로 놓고 물을 부어주는 센스를 발휘하는 최현욱(이선균)은, 바로 그런 요리하는 남자가 가졌을 것으로 생각되는 자상함과 감성을 지닌 존재처럼 시청자의 마음을 한껏 푸근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남자. 절대 여성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런 남자가 아니다. 남녀평등? 그런 건 자신의 주방에서는 꺼내지도 못하게 할 위인이다. 그렇게 부드럽게 보였던 이 남자는 이제 막 개점 시간이 되고 첫 주문이 들어오자 순식간에 마초적이고 제멋대로인 남자로 돌변한다.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요리가 나왔을 때는 거침없이 접시째로 깨버린다.

처음에는 이 부드러운 쉐프가 요리사들을 진두지휘하는 것이 마치 오케스트라의 그것처럼 조화로울 것이라 착각했지만, 점차 그 장면은 군인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의 행동처럼 변모한다. 그는 요리를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주문을 하고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을 몇 분만 더 지체되면 야수로 돌변하는 그런 존재로 인식하고, 끝없이 쏟아지는 주문에 맞춰 척척 대응해내지 못하면 곧 죽을 것 같은 자세로 요리하라고 소리를 질러댄다. 감성보다는 신속함을 담보해줄 수 있는 힘이 그에게는 더 필요한 것 같다.

그런 그가 이 전쟁터에 여성이란 존재를 어떻게 생각할까. 게다가 그는 연인이자 라이벌이었던 성공한 요리사 오세영(이하늬)에게 큰 상처를 입었다. 부정한 방법으로 최고요리사라는 자리를 그에게서 빼앗은 오세영은, 그에게 사랑에 대한 배신감을 갖게 했고, 최고요리사라는 자존심에 금이 가게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주방에 여성이란 존재를 의도적으로 지워버린다.

그것은 물론 현실적으로 볼 때 법적으로도 위배되는 사항이고, 명백하게 심각한 성차별이다. 맞다. 최현욱이라는 캐릭터는 애초부터 겉으로는 부드러움을 가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과거의 남성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마초가 맞다. 오세영의 배신은 그것을 강화해주고 있을 따름이다. 그것은 시청자의 입장에서 볼 때도 마찬가지다. 최현욱이란 캐릭터는 남자가 봐도 참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을 끝으로 몬다. 특히 여성인 서유경에게 하는 짓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최현욱이란 캐릭터에게서 시청자들은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왜 이다지도 마초적인 인간에게서 심지어 여성들마저 매력을 느끼게 되는 걸까. 그것이 짐승 같은 남성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소리 지를 수 있는 것도 능력일 테니까. 하지만 여기서 생각할 것은 마초라고 불리는 남성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이다. 마초라고 하면 늘 남성우월주의에 차서 여성을 노골적으로 비하하고 성희롱을 자행할 것 같지만, 그것은 상상속의 그림일 뿐이다. 마초도 부족하지만 인간이다. 아직 여성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을 전쟁으로만 여기는 그래서 싸워야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그런 불쌍한 인간.

최현욱은 주방을 나서는 그 순간, 즉 요리라는 일과 떨어지는 순간, 마초에서 보통의 남자로 돌아간다. 그는 일의 세계 속에서 비뚤어져 있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평범해진다. 이것은 어떤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의 존재가 여성성을 알아간다는 것. 그래서 조금씩 변해간다는 것. 이것이 이 드라마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말단 요리사인 서유경의 성장드라마라고만 생각하지만, 이 드라마는 최현욱의 성장드라마이기도 하다.

또한 최현욱의 마초적인 모습은 물론 여성들을 모두 주방에서 내몰았지만, 거기 남아있는 남성들이라고 해서 다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남녀 간의 불평등을 넘어서 한 조직 내에서의 상사와 조직원 간의 관계로 확장된다. 조직의 그런 권위적인 상사에 대한 경험은 남자나 여자나 모두 갖고 있는 것들이다. 남성 시청자가 서유경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남녀평등의 문제라기보다는 조직에 여전히 존재하는 권위적인 모습에 대한 공감이다. 서유경이 바로 그 권위적인 모습을 조금씩 무너뜨릴 때, 우리는 남녀를 떠나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이것은 일찍이 전문직과 멜로드라마가 만났을 때, 불평등이 다루어지던 방식이다. 불평등을 위해 취할 수 있는 방식은 투쟁 한 가지가 아니라 다양하다. 그리고 투쟁은 멜로드라마라는 장르와 잘 어울리지도 않는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이나, '외과의사 봉달희'의 이범수는 바로 이 '파스타'와 연결고리를 갖는 드라마들이다. 그들은 모두 각각의 전문직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남자들이지만 모두 여성들 앞에서 소리 지르는 마초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멜로를 통해 여성성을 알아가는 존재로 변모해간다.

물론 이것은 분명 전문직과 함께 멜로를 다루는 드라마가 갖는 한계일 것이다. 왜 그들은 꼭 멜로로 그 마초적인 남성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데 만족하고 있을까. 하지만 그것은 또한 멜로라는 장르로서는 그나마 평등이라는 가치를 생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멜로드라마라는 장르는 본래 남과 여 사이에 끼어들어 이를 방해하는 사회적 관습을 다루고, 그 관습을 뛰어넘어 남과 여가 사랑하게 되는 그 과정이 목적인 형식이다. 그리고 그 관습에서 수없이 많이 다루어진 것이 남자가 가진 자기중심적 사고관 혹은 세계관이다. '파스타'도 바로 그것을 다루고 있는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