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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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이 현대의학에 던지는 질문

D.H.Jung 2010. 1. 19.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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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중원', 의학의 초심을 묻다

무엇이 도망치던 그의 발길을 돌려 세웠을까. 자신의 첫 시술(?) 과정에서 형조판서가 죽자 충격에 빠진 황정(박용우)은 석란(한혜진)의 설득으로 등 떠밀리듯 도망치다 나루터에서 발길을 돌린다. 그것은 궁금증 같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깊은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그는 그 길로 자신이 판 서양의학책이 있는 서책점으로 가 밤새도록 서양의학책을 읽어나간다. 그 때의 마음은 또 얼마나 간절했을까. 자신의 시술이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 수도 있다는 그 끔찍한 생각.

"인간의 몸에는 피가 세 되가 들어있다. 피가 한 되가 빠지면 죽게 된다." "마취를 하게 되면 혈압이 떨어진다." 이런 구절을 읽으면서 또 심장은 얼마나 쿵쾅댔을까. 이미 혈압이 떨어진 환자에게 마취를 함으로써 더 혈압을 떨어뜨린 것이 사인일 지도 모른다는 그 마음은 또 얼마나 괴로웠을까. 또 알렌(션 리차드)이 "혈관을 잡아 피를 멈추게 하면 혈압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아요"라고 말할 때는 또 얼마나 가슴을 쓸었을까.

이것은 의학도의 초심이다. 그 첫 발을 디디는 그들에게 모든 것은 절실할 수밖에 없다. 그의 손길 하나 하나에 사람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니 어찌 작은 생명이라도 숭고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 "정말이죠? 내가 안 죽였죠?"하고 계속 물어대는 황정의 마음 속에 깃든 의학의 초심을 이미 알렌은 읽었을 것이다. 갑자기 체온이 떨어진 민영익(장현성)을 밤새도록 간호하고는 그가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활짝 웃는 그 얼굴 속에서도 이미 알렌은 황정의 초심을 읽었을 것이다.

이것은 서양의학이 들어온 당시에서부터 1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누군들 의학에 첫 발을 디디는 그 애틋한 초심이 없었을까.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던 그 마음. 하지만 의학이 인술이 되지 못하고 의술이 되어버린 작금의 세태는 그 초심이 무색할 지경이다. 늘 힘겹지만 돈은 되지 않는 일반외과의가 늘 부족하고, 상대적으로 돈이 되는 몇몇 과에 지원자들이 늘어가는 상황은 작금의 의학이 처한 위기가 무엇인지를 잘 말해준다. 위기는 기술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고 그 초심에서 멀어지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생명 앞에 마치 자신이 그 당사자인 것처럼 고통스러워하고 즐거워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의학의 마음이다. 그래서 알렌은 황정에게 묻고 황정은 알렌에게 그 초심을 답한다. "만약 미스터 황 앞에 높은 사람 낮은 사람 있어요. 누굴 먼저 치료할 건가요?" "더 아픈 사람 먼저 치료하겠습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있으면요." "그 또한 더 아픈 사람 먼저 치료하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건 한 가지예요. 의원은 환자를 거부해서는 안돼요. 그게 바로 의원의 처음이고 끝이에요." 이 두 사람이 나누는 이 질문과 답변은 아주 간단한 것이지만 그 간단한 것을 지키는 것은 실로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제중원'이 구한말까지 달려가 서양의학의 그 첫발에서 다시 찾으려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초심. 처음 서양의학으로 환자를 대하던 그 떨리던 손길 속에 들어있던 그 간절한 마음. 모든 이들의 생명을 제 어머니의 그것처럼 여기는 황정의 마음. 그것이 우리에게 전하는 무게가 적지 않은 것은 작금의 현실이 그 초심에서 너무 멀리 떠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