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자체발광', 예능보다 재밌는 교양, 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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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발광', 예능보다 재밌는 교양, 왜?

D.H.Jung 2010. 1. 21.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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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발광'의 궁금증, 꼭 쓸모 있어야 돼?

도대체 이런 실험과 도전은 왜 하는 것일까. 지금 TV에서는 '자체발광'이라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요상한 도전이 펼쳐지고 있다.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시도된 것은 오리 배를 타고 완도에서 제주도까지, 즉 바다를 건너는 도전. 이 도전이 시작된 것은 한 신입사원이 던진 질문 때문이었다. 무동력으로 태평양을 건넌 25세 미국 청년들의 이야기를 접한 그는 "자가 동력만으로 바다를 건널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을 가지게 된 것. 결국 이 호기심 때문에 그는 죽을 고생을 해가며 오래 배의 페달을 밟아야 했다. 결과는? 오리 배의 처참한 침몰로 끝이 났다.

'자체발광'은 파일럿에 이어 본격적인 실험과 도전에 돌입했다. "화장 어디까지 가능할까'하는 의문 때문에 실험자들은 자이로 드롭에 올라타고 팽팽 돌아가는 그 속에서 화장을 시도하는 엽기적인(?) 실험을 선보였다. 결과는 엉망진창. 하지만 그 실험이 주는 웃음만큼은 신선했다. "정말 사슴이 썰매를 끌 수 있을까"하는 크리스마스에 즈음해 생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아빠 산타 정종철은 명동에서 청계천을 거쳐 왕십리까지 사슴을 끌어야 했다.

궁금증을 위해서라면 무협소설에서나 보았던 소림사로 날아가는 일도 이들은 서슴지 않는다. "당랑권과 취권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하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선발된 2명의 도전자는 소림사에서 죽기 살기로 수련을 해야 했다. 한편 사진만 찍었다 하면 눈을 감는 그 굴욕의 순간을 넘어서기 위해 도전자들은 양파를 썰며, 물 속에서 그리고 번지점프에서 뛰어내리며 사진을 찍어야 했다.

'자체발광'의 '발광'은 물론 스스로 밝힌다(光)는 뜻이지만, 거기에는 "미쳤다(狂)'는 뉘앙스도 포함되어 있다. 그만큼 어떤 궁금증은 쓸모 있게 밝혀지지만(실험光), 어떤 궁금증은 쓸모없어 보이고(도전狂),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한 도전과 실험은 생각보다 엄청나다. 쓸데없이 고생한다는 '생고생'이라는 말은 여기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그러니 이런 형식은 시사교양 프로그램보다는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선입견이 든다. 하지만 분명, '자체발광'은 예능이 아니라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다. 즉 무모한 도전이지만 '자체발광'은 어떤 식으로든 궁금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부분, 예능과 교양 사이에 걸쳐있는 지점이 '자체발광'이 스스로 빛을 발하는 이유가 된다. 교양인 줄 알고 쳐다봤더니 웬만한 예능보다 더 웃기는 도전과제가 제시된다. 도전과 실험은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연상시키고, 그 회의 궁금증을 제시하는 영상물은 독특한 '하오체'의 내레이션과 공감을 자아내는 편집으로 마치 '남녀탐구생활'의 다른 버전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렇다고 '자체발광'이 교양이 갖는 정보성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 정보가 갖는 실용적인 가치는 물론 낮은 것이지만.

이 실용적인 가치를 벗어난 질문과 거기에 엄청난 도전과 실험으로 답변을 제공하는 '자체발광'은 작금의 정보에 대한 우리의 기존 관념을 깨뜨린다. 즉 정보라고 하면 그것의 실용가치를 떠올리던 것에서, 이제는 즐거움(fun)의 가치로의 이행을 보게 되는 것이다. '스폰지'가 실용성과 상관없이 정보가 가진 즐거움을 퀴즈 형식으로 프로그램화했다면, '자체발광'은 그것을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갖는 실험 형식으로 프로그램화했다고 볼 수 있다.

궁금증이 꼭 쓸모 있을 필요는 없다. 재미있으면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정보에 대한 태도는 우리가 늘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하면서 해오던 익숙한 것들이 아닌가. '자체발광'이 왠만한 예능을 능가하는 재미를 주는 이유는 정보에 대한 실용적 접근을 벗어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어쩌면 지금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이 변해가고 있고 또 앞으로 변해가야 할 방향을 예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정보는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