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웃음충전소’, 무대개그의 한계를 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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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충전소’, 무대개그의 한계를 넘다

D.H.Jung 2006. 11. 3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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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탈피한 개그로 돌아온 웃음충전소

KBS에서 본격 코미디를 자처하며 새로 시작한 ‘웃음충전소’는 그간 개그의 대세로 자리잡은 공개무대개그의 시공간적 한계를 넘어서며 신선한 재미를 주. 무대개그의 장점은 즉석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단점은 공간적 제약이 있어 연극적인 상황설정에 의한 개그가 주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또한 정해진 시간 내에 개그를 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시간 흐름과 변화를 통한 개그에는 어려움이 있다. ‘웃음충전소’는 바로 그 어려움을 좀더 정교한 세트와 야외 촬영의 교차편집으로 넘어서면서 카메라가 자유로워진 지점에서 새로운 웃음을 유발한다.

화제를 모으고 있는 ‘타짱’은 긴박감 넘치는 영화 ‘타짜’의 분위기를 개그 속으로 끌어들인다. 화면은 긴박한 배경음악과 함께 마치 영화의 예고편 같은 카드판의 손동작들이 반복되다가 해설자로 나오는 김준호의 얼굴에서 멈춰 서며, 개그가 시작된다. 이러한 긴박감 넘치는 장면 후에 나오는 개그대전이 이 코너가 웃음을 주는 핵심요소이다. 대전은 자학적이라 할 만큼 자해적인 장면들을 보여주고 그걸 보고 ‘웃지 말라’는 대전의 법칙을 통해 웃음을 배가시킨다.

‘미스터 박’은 여러모로 ‘미스터 빈’을 떠올리게 하는 개그다. 무대를 벗어나 카메라는 미스터 박의 일상을 쫓아가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는다. 소시민적이고 약해 보이는 미스터 박이 좀더 강해 보이고 멋져 보이는 남자들과 경쟁하는 이 구도는, 미스터 빈이 같은 개그를 통해 사회의 위선들을 꼬집었던 바로 그것과 같다.

‘막무가내 중창단’은 세트와 야외 촬영을 절묘하게 교차시켜 웃음을 유발한다. 세트에서 노래를 하다가 그 중간 어느 소절에서 멈춰 서며 그 소절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는 설정이다. 일종의 행동개그라 볼 수 있는데 재미있는 건 그 행동이 무대라는 제한적 공간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한낮의 찌는 더위는’을 행동으로 보이기 위해 진짜 찜질방에 들어가고, ‘벽에 걸린’을 연기하기 위해 실제로 담벼락에 몸을 건다. 심지어는 ‘늪에 빠진 거야’를 보여주기 위해 늪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세트로 돌아온 그들의 망가진 몸은 또한 웃음을 유발한다.

‘지친다 지쳐’는 과거 유머일번지식의 세트 개그이다. 시골 풍경을 가끔 도입하지만 그것은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한 도구이며 실제로는 세트에서 대부분의 개그가 이어진다. 약간은 모자란 듯 하면서도 정이 가는 촌사람들의 좌충우돌이 핵심이다.

여러모로 무대개그에서 가장 많이 탈피한 코너는 ‘정의의 따귀맨’이 될 것이다. 이 코너는 영상개그라 할만하다. 영화 ‘바람의 파이터’와 슈퍼맨과 같은 히어로, 액션이 엮어져 한 편의 개그가 완성된다. 화면연출의 즐거움을 또한 갖고 있는 이 개그는 다큐적인 요소까지 끌어들인다. 시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를 괴롭히는 장면에서는 시사다큐프로그램의 모자이크처리와 흔들리는 카메라, 장중한 나레이션이 동원된다. 따귀맨이 나타나 악당들을 쫓아가는 장면에서는 들고 뛰어가며 찍는 카메라가 선보인다. 그리고 절정은 따귀맨이 악당들을 따귀로 물리치며 마치 매트릭스처럼 정지된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장중한 나레이션 장면이다. 이 개그는 전체적으로 진지함을 고수하는 영상에 단지 우스꽝스런 따귀맨이라는 캐릭터가 만나면서 놀라운 웃음의 폭발력을 보여준다.

‘대안제국’은 마치 ‘개그콘서트’에서의 ‘봉숭아학당’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차이라면 대신 세트라는 점이며, 과거라면 개그맨으로서 가장 중심으로 놓여야할 왕의 자리에 이계인이라는 연기자가 앉아 있다는 것이다. 이 이계인이라는 인물의 개그 프로그램 등장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그것은 개그가 무대 위에서의 순간적이고 단발적인 웃음보다 어떤 개그맨의 캐릭터 형성을 통한 웃음이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주몽’의 모팔모에서 얻어진 이계인의 캐릭터는 이 개그에서 왕이라는 자리에 앉혀지면서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한다. 또한 저 연예오락 프로그램에서 그 중심을 잡는 인물에 개그맨이 아닌 아나운서가 자리하는 것처럼, 탤런트 이계인이 주는 편안함이 개그에 대한 어떤 압박감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웃음충전소’는 대사보다는 몸에 의지한 개그가 더 많다. 이것은 자학적인 개그라는 비판의 소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상의 힘을 얻어서 더 강력해진다. ‘웃음충전소’는 좀더 자유로운 촬영을 통해 무대개그가 갖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자유로움은 개그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좋은 무기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웃음충전소’의 미덕은 이제 저 칼바람 넘치는 무대개그에서 어느 정도 발굴된 캐릭터들을 온전히 지속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겼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으로의 회귀는 현재적인 상황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라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