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그대 웃어요', 최불암의 웃음을 닮은 드라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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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웃어요', 최불암의 웃음을 닮은 드라마

D.H.Jung 2010. 2. 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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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웃어요'는 보면 볼수록 최불암을 닮은 드라마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삶은 그렇게 힘겨운 것이라는 듯 잔뜩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사람좋은 인상으로 쇳소리처럼 바람빠지는 웃음 소리를 내는 최불암은 바로 이 드라마의 얼굴 같습니다. 처음에는 왜 제목이 '그대 웃어요'인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최불암이 그 특유의 웃음을 지을 때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목 앞에는 아마도 이런 문장이 생략되어 있었겠지요. '삶이 힘들더라도'.

'그대 웃어요'의 할아버지 강만복은 간암판정을 받았지만 손주의 행복한 결혼을 보고 싶어 그 사실을 숨깁니다. 자식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할아버지가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한다는 걸 알고 역시 이를 숨깁니다. 그러니 이 드라마는 밑바탕에는 이 숨겨진 마음, 힘겨운 현실이 자리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숨긴 채 서로 웃습니다. 그러면서 행복을 느낍니다.

이 드라마의 희비극을 넘나드는 기막힌 설정은 보는 이를 울다가 웃게도 웃다가 울게도 만들어버립니다. 할아버지에게 간이식을 해주기 위해 결혼도 안한 손주며느리가 몸을 챙기는 그 눈물겨운 상황을 이 드라마는, 시어머니의 오해 즉 손주며느리가 임신을 했다는 상황으로 넘기면서 웃음으로 바꾸어버립니다. 간이식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밉상 사돈인 서정길(강석우)인 사실을 알게된 며느리 백금자(송옥숙)가 간을 달라며 쫓아다니면서 서정길의 술을 빼앗아 먹는 장면은 우스우면서도 눈물겹습니다.

결혼식을 하고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간다면서 사실은 떠나지 않고 호텔에 머무는 자식들과, 결혼식장에서 쓰러진 할아버지 때문에 혹 신혼여행을 망치지나 않을까 저어하는 시어머니는 전화통화를 하며 서로 거짓말을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지만 그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 설정 속에서 눈물과 웃음은 또 한번 교차합니다.

몸을 가눌 수 없어 비틀거리고 고통에 혼자 밤을 지새우면서도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웃어주고 있는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요. 흔히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고 있어서 행복한 것이라고들 말합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건(그것이 빠르냐 더디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그래도 웃으면서 살아야 행복하다고 이 드라마는 말합니다.

이 드라마에 절절한 공감이 가는 이유는 그 비극적 상황을 애써 비극으로만 비추어 눈물을 짜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힘겨움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 그 힘겨움 속에서 어떤 행복감과 즐거움을 찾아내려는 이 드라마가 불황의 그늘 속에서 늘 찡그릴 수밖에 없는 고통을 느끼는 우리네 서민들에게 잠시나마의 위안이 되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웃으라고 하면서 눈물을 나게 하는 '그대 웃어요'는 참 고약한 드라마입니다. 그 우스운 설정에 깔깔 웃게 만들고는 순간적으로 눈물이 핑 돌게 만드는 이 드라마는 참 못됐습니다. 그런데 그 고약하고 못된 드라마가 가슴을 훈훈하게 만드는 건, 아마도 저 허허로운 웃음 속에 삶의 무게까지를 담아내는 최불암을 닮은 구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