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별을 따다줘', 그 기분좋은 몰염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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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따다줘', 그 기분좋은 몰염치

D.H.Jung 2010. 2. 10.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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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신경쓰인다"는 말은 정지우 작가의 작품에서는 "사랑하게 됐다"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멜로드라마를 그리지만, 그 멜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남녀 간의 관계만을 다루지는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인간애를 바탕에 깔고 있죠. 그래서 그녀의 드라마는 '측은지심의 드라마'가 됩니다.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야될 그 마음을 이끌어내는 드라마죠.

변호사 원강하(김지훈)는 스스로 자신을 '마음이 없는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을 드러낼 때마다 맞았다"고 술회하며 그래서 "마음이라는 것이 없는 것처럼 살아왔다"고 말하죠. 그의 집은 그 마음이 없는 원강하의 그 텅빈 공허를 형상화해낸 공간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 속으로 진빨강(최정원)과 동생들이 불쑥 허락도 없이 들어오죠. 그러면서 이 '마음 없는 공간'은 질서가 깨지기 시작합니다.

원강하의 단단한 방호벽(?)을 뚫고 진빨강과 아이들은 무차별 진격해 들어옵니다. 처음 진빨강은 그 '염치없음'에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차츰 과감(?)해집니다.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간신히 한 달간의 유예기간을 얻은 그녀는 어차피 쫓겨날 거, 이 '마음이 없는 인간'에게 대들기 시작합니다. 자기 주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가정부로 들어온 여자가 가사일을 전혀 모르고, 그것도 모자라 아이들까지 줄줄이 숨겨서 들어와 버젓이 살아보겠다고 주장하는 건 몰염치에 가깝습니다. 그것은 타산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쿨한 이 집의 원강하 같은 인간에게는 엄청난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죠. 그런데 원강하는 이들의 침범에 조금씩 동화되어 갑니다.

몽유병을 갖고 있어 매일 밤 자신의 침대로 침범해들어오는 파랑(천보근)을 처음에는 어이없어 하다가 나중에는 오히려 기다리게 됩니다. 그런 호의를 가진 그에게 그러나 아이들은 아랑곳없이 괴롭힙니다. 호의로 아이들을 데리고 중국집에 가서 음식을 시켜주면, 자장면을 뒤집어쓰게 만드는 식입니다. 그런데 이 몰염치는 단단한 원강하의 방호벽을 뚫고 들어옵니다. 그는 자신을 짝사랑해온 정재영(채영인)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지만 진빨강에게는 결국 "당신이 신경쓰인다"고 말합니다.

'별을 따다줘'의 몰염치가 기분좋은 것은 이 '마음이 없어 보이는' 사회를 침범해들어오는 그 인간적인 염치없음이 보기좋기 때문입니다. 쿨한 사회. 상대방을 위해 웃음을 지으면 마치 자신이 지는 것이라도 되는 양 무표정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진빨강과 아이들의 도발은 신선하기 그지없습니다. 이 드라마의 배경이 보험회사라는 설정은 이러한 드라마의 메시지를 잘 보여줍니다. "가족처럼!"을 늘 입에 달고 다니지만, 그 이면에는 돈의 논리가 꿈틀대는 JK생명의 일단은 우리 사회의 차가움을 대변해줍니다. 그 속에 들어간 진빨강은 마치 마음 없이 살아가는 원강하의 마음 속에 들어간 것처럼 사회에 따뜻함을 전하려 합니다.

멜로에서부터 인간애를 얘기하는 것은 정지우 작가 작품의 특징입니다. 조금은 세련되지 못해 보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인간적인 따뜻함을 느껴지는 것은 그녀의 드라마만이 갖는 매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녀는 이 사회가 얼마나 차가운 것인가를 절감하고 있고 그래서 그렇게 차갑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허락없이 불쑥 발을 디디는 작가입니다. '몰염치'조차 인간적인 매력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것은 그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