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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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네모난 세상

대중문화 소비자 시대, 이제 소비자가 왕

D.H.Jung 2010. 4. 3.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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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소비자 시대, 그 명과 암

혹자들은 '패밀리가 떴다2'와 '승승장구'의 낮은 시청률이 2PM 때문이라고 한다. 2PM의 재범 영구탈퇴 결정과 함께 팬들은 하루아침에 안티 팬으로 돌아섰고, 이로 인해 2PM에 대한 호감은 그만큼의 배신감으로 돌아섰다는 것. 그저 항간에 도는 소문이겠지만, 이러한 소문이 프로그램에 미치는 영향 또한 적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일련의 2PM 사태와 그로인해 유포되는 다양한 루머들을 들여다보면 거기 이제 팬 문화에서 대중문화로 확대되어가는 징후들이 포착된다.

과거 기획사-아이돌그룹-팬 이렇게 세 그룹으로 나뉘어져 기획사가 주도하고 아이돌은 그걸 따라가며, 팬은 그런 아이돌에 열광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소비자시대에 들어서면서 소비자로서의 팬은 그 덩치를 키웠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어가길 원한다. 기획사가 과거처럼 아이돌을 제 셈에 맞춰 좌지우지하려 하는 징후가 포착되면(물론 그것이 팬 소비자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은 그런 기획사를 거침없이 비판한다. 2PM 사태는 아예 팬 소비자가 아이돌 자체를 거부하는 상황까지 가게 됐다는 점에서 대중문화에 있어 소비층들의 힘이 어디까지 왔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대중문화가 확산되면서 이제 팬클럽에 한정되던 소비층이 일반 대중으로 넓어졌다는 점이다. 일부 팬클럽의 끊임없는 요구에 지친 기획사나 제작사들은 심지어 이런 팬클럽을 상대하기보다는 보다 넓은 일반 대중을 상대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듯도 보인다. 대중문화에 호의적인 일반 대중들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팬클럽만큼의 구매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대중문화는 특정 세대가 특정한 방식으로 소비되는 그런 문화가 아니다. 누구나 어디서나 접하게 되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소비자의 요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중문화 시대에 대중들의 요구는 점점 강해진다.

드라마 전개에 대한 시청자들의 요구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어떤 요구는 실제로 받아들여져 죽어야 될 인물이 살아나기도 하고(심지어 개연성을 깨뜨리면서까지!) 살아있어야 할 인물이 갑자기 죽어버리기도 한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엔딩에 쏟아진 수많은 시청자들의 비판 속에는 대중들의 욕구가 꿈틀댄다. 영화처럼 단 번에 끝나버리는 것이라면 모를까, 이제 시리즈로 방영되는 드라마는 어떤 식으로든 대중들과 소통하면서 제작(?)되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드라마의 진행은 물론이고 엔딩까지, 그것은 이제 제작자의 것만은 아닌 것이 되었다.

이런 쌍방향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드라마의 사전제작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 편에서는 완성도를 요구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대중들이 원하는 방향으로의 진행을 요구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나갈 수 있을까. 실로 어려운 문제다. '추노'에서 대길(장혁)이 죽는 엔딩에서도, 많은 이들은 그 작품이 괜찮았지만 대길을 살렸으면 더 좋지 않았겠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사실 시청자들 입장에서도 작품의 완성도와 자신의 욕구 사이에서 갈등이 있는 건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무한도전'이나 '1박2일'처럼 확실한 팬층(일반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는 의미에서)을 소유한 프로그램에는 유난히 시청자들의 요구가 많아진다. '1박2일'이 남극에 간다고 결정을 내렸을 때, 제작진들은 그 결정으로 인해 생겨날 대중들의 마음을 읽고 그것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것은 마치 민심을 읽는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뭐든지 사고파는 시대에 민심은 소비자의 마음이기도 하다. '1박2일'이 1년마다 하는 '시청자와 함께 떠나는 1박2일'은 따라서 고객 행사 같은 성격을 띤다. 늘 소비자와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실제 체험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대중문화에 이제 주인이 왕이던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 그 모든 것은 손님을 중심으로 바뀌고 있고, 심지어 손님들은 대중문화의 주인으로 격상된다. 소비자 참여 프로그램이 점점 많아지고, 제작자와 소비자 간의 소통의 창구가 점점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제 중요한 건 어떻게 하면 이 양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가 하는 점이다. 주인은 늘 손님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어쩌면 지나치게 상업적(대중적인 의미로서)으로만 흘러갈 위험도 존재한다. 또한 손님은 왕이라고 하지만, 때론 손님의 요구가 작품 자체를 흔들어놓을 위험도 있다. 하지만 이 건전한 긴장관계, 즉 대중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 사이의 갈등은 어쩌면 좀 더 나은 콘텐츠의 생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작품성도 뛰어나면서 대중적인 성공도 거두는 작품들은, 바로 이런 긴장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