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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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사극이라도 안된다, 왜?

D.H.Jung 2010. 4. 6.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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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불패 신화, 새로움에 달렸다

한 때 사극의 기본 시청률은 20%라고 했다. 그만큼 사극은 극성이 강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시청률을 먹고 들어간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이젠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구한말을 배경으로 사극과 의학드라마, 중세와 근대의 하이브리드를 주창하며 야심차게 시작한 '제중원'은 초반 현대극 '파스타'에 밀리더니 정작 '파스타'가 종영한 후에도 26회가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13% 대에 머물고 있는 형편이다. 새롭게 시작한 이병훈 감독의 '동이'는 한효주와 지진희가 등장하면서 차츰 시청률을 회복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14%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부자의 탄생'이 두 사극을 앞지르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주말시간대에 편성되어 있는 '거상 김만덕'도 마찬가지다. 조금씩 시청률이 오르는 추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15%에 머물러 경쟁작인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에 밀리고 있다. 물론 '동이'나 '거상 김만덕'은 초반이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을 하기에는 이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중원'을 통해 우리는 사극이면 무조건 된다던 그 사극 불패 신화가 깨져가고 있다는 징후를 읽을 수 있다. 도대체 왜 이런 결과에 이른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사극에 대한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작년 '선덕여왕'에 이어, 올해의 '추노'는 사극이 가질 수 있는 힘을 최대치로 보여주었다. '선덕여왕'은 여성사극의 성장드라마가 가질 수 있는 스토리의 극점을 보여주었고, '추노'는 스타일리쉬한 영상을 통해 사극이 제공할 수 있는 볼거리의 새로움을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에 '제중원'의 스토리는 너무 정석적이었고, '동이'의 볼거리는 사뭇 밋밋하게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제중원'은 구한말 제중원이란 공간의 좋은 소재를 갖고 있으면서도 시청자들에게 어떤 매력을 제시하지 못했다. 주인공 황정(박용우)은 착하나 남성적인 매력이 돋보이지 않았고, 여주인공 석란(한혜진) 역시 개화된 여성이기는 하나 어떤 당찬 매력이 드러나지 않았다. 황정의 라이벌인 도양(연정훈)은 신분 이외에 황정을 위협할 수 있는 요소가 거의 없는 인물로 설정되어 라이벌로서의 매력을 보이지 못했다.

이들이 보여주는 멜로가 신분제에 얽매여 신파로 흐르는 반면, 제중원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어떤 추진력을 만들기보다는 일회적인 에피소드의 나열에 머무르는 경향이 짙었다. 가장 극성이 큰 부분일 수 있었던 황정이 형장에 서게 되는 위기상황에서 왕의 부름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되는 것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해 극의 긴박한 국면을 타개하는 고대 그리스극의 한 방식)를 떠오르게 하는 해결방식으로 시청자들을 맥 빠지게 만들었다. 또한 갑신정변이나 을미사변 같은 거대한 사건이 지나치게 소소하게 다뤄지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동이'는 초반부 캐릭터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나치게 빠른 스토리 전개로 몰입이 되지 않은 경향이 있다. 이병훈 PD 특유의 추리적인 연출기법은 캐릭터가 형성되었을 때는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는 오히려 극을 따라가기 어렵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성인 연기자들이 등장하면서 이런 부분은 조금씩 해소되고 있다. 또한 '추노' 이후 생겨난 사극에 대한 시청자들의 새로움에 대한 욕구 역시, 성인 연기자들로 전환되면서 '동이'가 소재로 내세운 음악이 등장하며 차츰 채워져 나가고 있다. 이 상황이라면 '동이'는 초반의 부진을 금세 따라잡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거상 김만덕' 역시 이미연의 등장과 함께 자신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고 그 복수극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상황이 차츰 나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그 스토리가 가진 전형성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이미 '대장금'이 보여준 성장스토리에 '상도' 이후 일련의 퓨전사극들이 보여준 경제 이야기의 재미, 그 이상의 새로움을 현재의 시청자들은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사극이면 무조건 되던 시대는 지났다. 그만큼 사극은 우리에게 친숙한 장르가 되었고, 어떤 새로움을 기대하게 만드는 장르가 되었다. 그러니 역사 바깥에서 인물을 찾아내고, 거기에 상상력을 붙여낸다고 해서 모두 성공적인 사극이 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제 사극에서 필요한 것은 새로움이다. 지금껏 다루지 못했던 소재와 지금껏 듣지 못했던 이야기구조, 그리고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영상미학. 이제 작금의 사극에 요구되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