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명랑사극 '동이'가 꿈꾸는 통하는 세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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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사극 '동이'가 꿈꾸는 통하는 세상

D.H.Jung 2010. 4. 13.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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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그 깨방정 숙종이 가진 의미

"여깁니다. 게중 가장 낮은 곳입니다. 냉큼 넘으세요." 동이(한효주)는 범인들이 있는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숙종(지진희)에게 담을 넘으라고 한다. 하지만 "난 담을 한 번도 넘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숙종. 그런 숙종에게 변복을 한 그가 왕인 줄 모르는 동이는 "아니 다른 나으리께서는 글공부도 하기 싫어 담을 넘고 다니시는데, 나린 대체 뭘 하십니까?“하고 채근한다. 그러자 숙종은 ”내가 있는 곳은 담을 넘기엔 너무 높았다“고 말한다. 결국 ”담은 제가 넘을 테니 잠시 엎드려 주십시오“하고 청하고, 동이는 왕의 등을 밟고 담을 넘는다.

‘동이’에 등장한 이 짧은 에피소드는 이 사극의 초반 부진을 털어내며 세간에 화제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왕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사극에서 보던 근엄한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동이와 함께 도망치다가 이내 “달려본 적이 없다”고 주저앉고, 칼을 들고는 “배우긴 배웠으되 실전은 처음이다”고 말하는 왕. 그 모습에 ‘허당’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항간에는 이 깨방정(?) 왕의 모습이 지나치게 희화화되었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

하지만 이 동이가 감히 왕의 등을 밟고 담을 넘는 이 장면은 우스꽝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낮게 웅크린 왕의 모습과 ‘담을 넘는다’는 그 행위가 마치 ‘왕과 낮은 자들과의 소통’으로 여겨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이 덕분에 사건을 해결한 왕은 그녀가 일하는 장악원에 어식(御食)을 내리고 동이에게 상을 내린다. 왕과 노비가 함께 일을 해결하고 왕이 내린 상에 장악원 사람들이 함께 포상 받는 이 장면을 통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가슴 한 구석에 바로 이런 ‘소통의 욕구’를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숙종은 훗날 장희빈이 될 장옥정(이소연)을 부를 때, “옥정!”하고 이름을 부른다. 이것 역시 여타의 사극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이 왕은 옥정에게 전날 있었던 일을 무용담처럼 말하면서 “이건 절대 풍(거짓말)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전날 동이에게서 배운 서민들이 쓰는 ‘풍’이란 말을 옥정에게 써먹은 것이다. 그러자 옥정은 방긋 웃으며 저잣거리에서 쓰는 말을 어떻게 왕이 아시냐고 반색한다. 왕의 낮은 자들과 소통하려는 욕구를 ‘풍’이라는 말 하나로 보여준 것이다.

사실 왕의 깨방정은 파격적이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바로 이러한 소통의 몸짓이라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한껏 낮아지고 한껏 소탈해진 왕을 통해 우리는 앞으로 펼쳐질 동이와 왕의 로맨스가 단지 사랑놀음이 아니라 이러한 통(通)에 대한 사극의 메시지로 확장해낼 수 있다. 이것은 ‘동이’가 단순한 사극판 신데렐라 이야기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가능성이다.

여기에 이병훈 사극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명랑한 분위기’는 이러한 통(通)하는 세상에 대한 판타지마저 꿈꾸게 만든다. 왕이 서민과 함께 고개를 맞대고 똑같은 눈높이로 얘기하는 것. 그것은 때론 우스워 보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숙종의 등을 밟고 동이가 담을 넘는 그 순간, 우리는 어쩌면 현실에서는 쉬 찾기 힘든 그 통(通)하는 세상을 보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