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신데렐라 언니', 세상의 악역을 위한 동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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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언니', 세상의 악역을 위한 동화

D.H.Jung 2010. 4. 16.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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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을 넘어, 관계의 화학반응으로 가는 '신데렐라 언니'

"나한테 뜯어먹을 거 있어? 왜 웃어?" '신데렐라 언니'의 그 언니인 은조(문근영)는 그녀를 향해 해맑게 미소 짓는 기훈(천정명)에게 다짜고짜 쏘아댄다. 기훈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넌 뜯어먹을 게 있어야 웃니?"하고 되묻는다. 어쩌다 은조는 '뜯어먹을 게 있어야 웃는다'고 여기는 아이가 되었을까. 기훈의 질문은 전통적인 신데렐라 이야기 속에서 그 언니가 왜 그토록 악독했던가 하는, 지금껏 아무도 던지지 않은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람이 악독해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신데렐라 언니'는 신데렐라 이야기 속에서 소외된 그 언니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거기서 그녀가 그토록 독해지고 매정해진 사연을 찾아낸다.

그녀의 어머니 송강숙(이미숙)은 한 때 걸핏하면 계집질 하는 남자를 잡아놓기 위해 광목천을 끊어다 죽으려고까지 했던(물론 연기지만) 독한 인물. 그녀는 인생은 그처럼 날로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며, 그러다 끽 잘못되더라도 위험을 감수해야 얻을 걸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인물이다. 그토록 진심 없는 삶을 살아가는 엄마가 그 모든 것이 다 "너를 위해서"라고 말할 때 은조가 느꼈을 절망은 얼마나 컸을까. 자신의 삶이 지독히도 구차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 엄마의 말이 거짓말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효선(서우)이 아버질 좋아는 해? 효선이 아버지 그냥 뜯어먹을 게 많은 남잔 거야?"하고 묻는 은조는 그래서 필사적이다. 하지만 엄마 송강숙에게 그건 '거지같은 질문'이고 괜한 '청승'이다. 그래서 "좋아서 산다고 말해주면(거짓말이라도) 용서해준다"는 은조에게 "뜯어먹을 게 많아서 좋다"는 잔인한 말을 해댄다. 은조를 엄마를 통해 진심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신데렐라 언니 은조는 더 이상 악역이 아니라 상처받은 슬픈 영혼이다. 술독에서 술이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회초리를 맞아 피멍이 든 종아리에 고기 점을 붙여주는 기훈이 그저 "은조야"하고 불러주는 것에 '하늘 끝까지 날아올라 달까지도 가겠다'는 기쁜 마음을 갖는.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린 기훈에게 "그 사람을 뭐라고 불러본 적이 없어서 뻐꾸기가 뻐꾹뻐꾹 울듯이 따오기가 따옥 따옥 울듯이 새처럼 내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는 그 내레이션이 깊은 공감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편 은조의 내레이션이 이어지면서 그 독해진 사연을 들려주는 동안, 신데렐라인 효선은 그 몰이해 때문에 거꾸로 악역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은조의 독한 행동 뒤에 숨겨진 상처받은 영혼을 보여준 후, 그로 인해 다시 상처받게 되는 효선의 마음을 찾아간다. 무엇하나 손에 쥔 게 없던 은조가 무엇이든 쥐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살아가는 동안, 모든 걸 쥐고 있었던 효선은 차츰 은조에 의해 자기 것이 사라져가는 불행한 상황을 맞이한다.

그녀는 도저히 은조를 따라갈 수 없다는 데서 절망을 느끼면서, 질투가 존경의 차원으로까지 넘어가는 그 지점에 이르자, 입으로는 "언니야. 내가 잘 할께. 죽지마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죽어버려라'하고 외치는 양가감정을 느끼게 된다. "형편없어지는 내 옆에서 근면성실하고 잘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은조에게 "네가 꼴도 보기 싫다"며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어!"하고 외치는 효선의 마음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은조와 효선, 부딪치게 되는 이 두 인물의 속내를 이해하면서, 우리는 그녀들이 모두 악역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의 진짜 악역은 누구일까. 눈앞에 언뜻 보이는 인물은 은조의 어머니 송강숙이다. 그녀는 자신의 구차한 인생의 이유가 모두 은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은조의 삶 또한 구차하게 만들어버리는 존재이며, 또한 모성애를 갈구하는 효선에게 엄마인 척 행동하면서 오히려 그녀를 망치고 있는 존재다. 하지만 그런 몹쓸 행동들도 자식을 가진 모성애의 한 차원으로 들여다보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너 업고 쓰레기통도 뒤졌어. 더러운 거라도 안 먹이는 거 보다는 나을 거 같아서. 뒤져 먹이고 너 탈났을 때, 밤새 열 오르고 니 눈동자 뒤로 까무룩 넘어가 흰자만 번뜩일 때, 하느님 아버지 부처님 신령님, 내 새끼 죽이기만 해보라고, 내가 가만 놔둘 줄 아느냐고, 하늘이고 나발이고 간에 한 입에 꿀꺽 삼켜 잘근잘근 씹어주겠다고, 사람으로 품위 지키면서 사는 거 그날 밤으로 포기했어." 송강숙의 이 대사는 진짜 악역처럼 보이는 그녀에게서 그 독한 행동의 이유를 찾게 해준다.

보통의 드라마가 선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는 반면, '신데렐라 언니'는 악역을 위한 드라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독한 면모를 가진 악역들의 뒤에 숨겨진 독한 사연을 끄집어내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행동을 공감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드라마. 따라서 역설적으로 이 드라마에는 실제 악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으면서 어떤 화학작용을 만들어가는 드라마가 '신데렐라 언니'다.

이 드라마의 배경이 술도가로 설정되어 있는 것은 아마도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는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인간과 인간의 화학작용이, 상당부분 술이 주는 상징과 맞닿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다른 소재들이 모여 부딪치며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결국 술이라는 하나로 만들어지는 그 과정은, 치열하면서도 아름답다. 그래서 술은 독하면서도 감미롭다.

세상에 진정으로 악하고 독한 자가 어디 있을까. 게다가 세상의 악역은 어찌어찌하다 그 역할을 맡게 되었을 뿐, 실제 악이 아니다(실제 악은 오히려 '가난' 같은 엉뚱한 곳에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런 인물들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내면에서 상처받은 영혼의 슬픔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악역이 되어버린 그들이 서로 부딪치고 깨지면서 하나로 얽혀 만들어내는 소리는 아비규환이 아니라 하나의 아름다운 소리가 될 수도 있다. 저 은조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던, 술독에 술이 익어가던 그 소리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