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1박2일', 그 특별한 여행의 기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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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그 특별한 여행의 기술

D.H.Jung 2010. 5. 1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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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정보가 아닌 산 경험의 여행, '1박2일'

점심식사를 위한 메뉴판에 봄을 알리는 몇몇 풍경이 적혀져 있고, 그 옆에는 거기에 상응하는 액수가 적혀져 있다. 그 풍경을 찍어오면 그 액수를 점심식사비로 지급하겠다는 거다. 경상남도 어느 길목에서 '1박2일'의 출연진들은 차에서 내려 갑자기 만난 풍경 속에서 봄을 찍어댄다. 무엇보다 압권은 이 메뉴판에 적혀진 'UFO 10억'이라는 문구. 재미로 적어놓은 것이지만 '1박2일'은 이 문구 하나로 재미있는 추억거리를 만들어낸다. 조작사진을 찍고, 거기 우연히 찍혀진 눈곱만한 흔적을 UFO라 우기며 결국 협상을 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은 어찌 보면 단순해 보일 수 있는 여행에 의외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실 '코리안 루트'라고 거창한 제목을 달고 강원도 속초에서부터 경상도를 거쳐 전라도를 도는 3박4일 간의 대장정이지만, 프로그램이 재미를 주는 요소들은 의외의 장면에서 발견된다. 속초에서 아바이 마을을 찾아가 아바이 순대와 생선 구이로 포식을 하고 '가을동화'의 촬영지를 돌아보지만, 사실 그 여행의 진짜 재미는 그들이 이동하는 작은 차에서 만들어졌다. 차 안의 좁은 공간에 강호동과 함께 앉아 엄청난 압축률(?)을 보여준 MC몽이 그 장본인이다.

영덕에서 게임으로 낙오(?)된 은지원은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 진주를 거쳐 베이스캠프인 하동에 도착했는데, 그 단순한 여행을 즐겁게 채워준 것은 인근에 사는 친구와 우연히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청도의 그 유명한 미나리쌈에 곁들인 삼겹살 점심은 그 곳을 지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여행의 코스. 하지만 '1박2일'이 이 코스를 더욱 재미있게 만든 것은 턱없이 부족한 삼겹살이었다. 결국 미나리만 소처럼 먹던 출연진들은 저녁의 복불복 제안을 수락하는 조건으로 삼겹살을 얻어먹었다.

하동 베이스캠프는 박경리 작가의 '토지'의 배경이 되는 최참판댁. 하지만 이 의미 깊은 공간의 재미는 냉수마찰을 걸고 벌이는 복불복 게임으로 채워졌다. 이승기와 이수근을 홀딱 젖게 만든 그 해프닝은 여행자들 특유의 객기가 주는 즐거움이 깃들여졌다. 사실 '1박2일'이 제공하는 지역의 정보는 작은 것이 아니지만, '1박2일'이 주는 여행의 재미는 그 정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코리안 루트는 '1박2일'이 제안하는 우리네 지역의 특산물과 여행지의 코스지만, 재미는 그것을 소개하는 데 있지는 않다는 얘기다.

이것은 '1박2일'이 구사하고 또 시청자들에게 제안하는 '여행의 기술'이다. 여행은 제주도에 간다고 해도 별 의미와 재미를 못찾을 수도 있고, 그다지 멀지 않은 인근 지역을 가서도 특별한 의미와 재미를 얻을 수도 있다. 서점의 여행서적 코너에 가면 널려있는 수많은 책들 속에 들어있는 여행지의 정보들이나, 컴퓨터를 켜고 지역명만 치면 줄줄이 달려 나오는 여행지의 숙소나 먹거리 정보, 그리고 관광 명소는 막상 여행을 실제 떠나는 이들에게는 죽은 정보나 다름없다. 그 정보들은 누군가의 소중한 경험이지만, 여행을 떠나는 당사자들에게는 참고 그 이상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행은 스스로 써나가는 것이지, 누군가가 쓴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이런 문제제기를 했다. 여행의 묘미는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것처럼, 그 이유와 가는 방법을 자기 자신에게 묻고 답을 얻을 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1박2일'의 매주 떠나는 여행이 특별하고 재미를 주는 이유는 우리네 여행지들이 품고 있는 보석 같은 풍광과 독특한 지역만의 풍미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여행을 스스로 써나가는 '1박2일'만의 여행의 기술 덕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