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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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 왜 시대착오란 생각이 들까

D.H.Jung 2010. 5. 1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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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하면 떠오르는 건 제임스딘과 록허드슨,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주연으로 나왔던 동명의 영화입니다. 텍사스의 목장에서 석유왕이 되는 제임스딘, 그러나 그 성공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그의 욕망과 좌절의 드라마죠. 당시 이 영화는 5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투여한 블록버스터였습니다. 다분히 미국의 성장을 아련한 노스탤지어로 그려내는 시대극이었죠.

SBS에서 '자이언트'라는 드라마가 오늘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제목이 거대해서인지 예고편만봐도 이건 저 영화 '자이언트'를 그대로 떠올리게 만듭니다. 기획의도를 읽어보면 이 드라마가 전형적인 시대극이 가지는 코드들을 모두 버무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공에 대한 욕망과 그 욕망 속에서 벌어지는 비극, 복수, 가족... '에덴의 동쪽'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설정들이 눈에 띕니다. 다른 것은 강남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발시대에 벌어지는 성공과 좌절, 복수와 배반, 사랑과 애증의 드라마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할대로 익숙한 것이 되었죠. 아버지를 죽인 원수 밑에서 성장하고, 그 원수의 딸과 사랑에 빠지지만 뒤늦게 그가 원수임을 깨닫고 성공과 사랑 복수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 어딘지 이제는 조금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스토리가 되었죠.

이 드라마를 가지고 벌써부터 정권 찬양용의 드라마라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정권을 찬양하기 위해 드라마를 만들 정도의 시대라고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의 정서가 개발시대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담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공과 성장에 대한 집착.

하지만 이제 성공과 성장을 향한 질주로 달리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공이 아니라 행복을 추구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공이 행복을 준다는 환상은 깨진지 오래며, 오히려 행복이 성공을 만들어준다는 믿음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거대함에 대한 추구는 과거 개발시대의 잔재입니다. '대마불사'라는 말이 횡행하던 시절, 누구나 벌이려면 크게 벌여야 한다는 것은 성공의 기본 공식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그 속이 비어 있는 거대함은 이미 여러 번 고꾸러지면서 그 실체를 보였고, 이제는 세세하면서도 정교한 것들 속에 성공의 비법이 들어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세세함과 정교함은 행복을 추구합니다. 드러내놓지 않고 거대할 것 없는 그 소소함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그 행복이 거대한 성공을 만들어주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거죠.

'에덴의 동쪽', '태양을 삼켜라'... 최근 일련의 거대함을 내세우는 욕망과 성공의 드라마들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이유는 그 치열한 삶 속에 소소한 행복이 묻어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왜 저런 처절한 삶을 우리가 봐야만 하는 것인가, 그것이 행복의 길을 제시해주지도 못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개발시대의 노스탤지어? 이제 아파트 숲 속에 앉아 지내게 된 마당에 향수란 시간적인 의미 그 이상을 주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직 시작도 안한 드라마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단정하는 것은 성급한 일일 것입니다. 다만 '자이언트'가 기존 시대극들이 걸어갔던 그 성공과 야망의 드라마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드라마가 지금 시대의 행복을 어떻게 얘기해줄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저 고꾸라진 여타의 거인 드라마들의 길을 따라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심 기대하는 것은 '대조영'의 그 아기자기한 반전의 반전의 묘를 살렸던 장영철 작가의 역량입니다. 그라면 혹 좀 다른 시대극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