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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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회, '무한도전'이 바꿔놓은 것들

D.H.Jung 2010. 5. 28.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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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은 TV를 어떻게 바꿔놓았나

'웃으면 복이 와요'가 무대와 세트에 세워진 카메라가 포착하던 정통 코미디 시대를 상징한다면, '무한도전'은 일상 속으로 들어온 카메라가 잡아내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새로운 시대를 상징한다 할 것이다. 따라서 2005년 3월 부활을 꿈꾸며 새롭게 편제되었다가 6개 월여만에 조용히 사라져간 '웃으면 복이 와요'와, 그 즈음인 2005년 4월에 불쑥 등장한 '무모한 도전'이란 외계인의 등장은 이 변화해가는 시대를 징후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포크레인과 인간의 삽이 대결을 벌이고, 정준하가 '뜨거운 가락국수 빨리 먹기'로 달인의 경지에 오르는 이런 형식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일찍이 정보를 얻기 위해 각종 실험을 감행하는 다큐멘터리에서 시도되던 것들이다. 이른바 리얼리티쇼라는 형식은 사실상 다큐멘터리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다큐적인 아이템이 '도전'이라는 주제를 갖고 예능 프로그램으로 시도됐다는 것이다.

'무한도전'이 '무모한 도전'과 '무리한 도전'을 거쳐 성장하며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우리 식의 독특한 형식을 만들어가는 그 사이에,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그 중 가장 주목할 것은 카메라가 외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 ENG카메라로 상징되던 방송카메라가 점점 소형화되고 고화질화되는 진화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그 기술의 발달만으로 어떤 문화가 창출되는 것은 아니다. '무한도전'은 그 변화해가는 영상기술이 문화로 나아갈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했다. 그것도 웃음이라는 강력한 파괴력을 장전시킨 채.

무대만 바라보던 예능의 카메라들은 점점 무대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아예 전국을 떠돌거나 오지를 찾아다니는 '1박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 같은 프로그램도 만들어졌다. 카메라가 바깥으로 나오자 프로그램의 스토리텔링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무대 안에서 대본을 축으로 주거니 받거니 합을 이루던 예능의 스토리텔링은, 이 야외라는 돌발사건의 지뢰밭에서 대본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무대 위에서 만들어지던 예능의 스토리텔링은 이제 현장에서 발견되었다.

'무한도전'의 카메라가 일상 속으로 들어오고, 한쪽 방향이 아닌 어느 방향이든 비추기 시작하면서 대중들은 이제 카메라 뒤편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리얼리티TV의 신호탄이었다. TV의 한쪽에 세트로 세워진 말끔한 면은 이제 그 초라한 진면목을 드러냈다. 세트는 가상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면 별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늘 카메라 바깥에서 카메라 안의 스토리를 조정하던 작가나 PD가 카메라 속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이제 TV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대중들은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실제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이 리얼리티TV는 형식과 장르 같은 프로그램의 겉면을 해체시키면서 그 경계를 지워내기 시작한다. 예능은 다큐와 만나고, 다큐는 예능의 형식을 끌어와 독특한 재미의 세계를 구축한다. 교양 프로그램은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허물어 놓은 형식들을 끌어다가 인포테인먼트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무한도전'의 끝없는 형식 실험이 없었던들, '스폰지'나 '자체발광' 같은 정보의 재미를 추구하는 교양 프로그램이나, '괜찮아U' 같은 재미와 교양을 엮은 프로그램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무대에서 일상으로, 가상에서 현실로 카메라가 빠져나오면서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프로그램이 프로그램 바깥에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은 점점 성장하면서 실제 현실을 바꿔나가는 도전을 시도해왔다.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프로그램의 취지에 걸맞게 사회에 소외되어 있는 인물들을 조명하고 격려해주었다. 우리 음식을 알리기 위해 뉴욕까지 날아가기도 하고, 서민경제를 살린다는 취지로 박명수는 음식점을 '기습공격(?)'하기도 했다. 매년 만드는 달력의 수익금은 전액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해오고 있고, 벼농사 특집으로 수확한 쌀도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하는 등 그 높아진 위상만큼 사회적 책무도 잊지 않고 있다. 물론 이런 공익적인 활동보다 더 큰 공익은 아마도 '무한도전'이 200회 내내 끝없는 노력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제공한 포복절도의 웃음일 것이지만.

작년에 했던 '무한도전TV' 특집 편에서 '무한도전'은 하루 종일 방영하는 거의 모든 형식의 프로그램의 패러디를 시도했다. 거기에는 뉴스에서부터 영화, 쇼, 교양 프로그램, 심지어 드라마까지 다양한 형식들이 '무한도전'식의 패러디로 바뀌어져 큰 웃음을 주었다. 물론 그것은 패러디였지만, 실제 '무한도전'이 TV프로그램에 준 변화는 패러디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나아가 '무한도전'이 TV 바깥세상에 미친 영향 또한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