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대만영화를 떠올리게 한 그 곳, 라오미엔 본문

옛글들/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대만영화를 떠올리게 한 그 곳, 라오미엔

D.H.Jung 2010. 5. 3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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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하면 떠오르는 것. 내겐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비정성시'다. 양조위의 아주 말끔한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영화. 차이밍량 감독의 '애정만세'와 함께 대만의 뉴시네마 운동의 대표적인 작품. 홍콩영화가 가진 황당함과 화려함과는 달리, 어딘지 사람이 보이는 영화들. 그런데 이런 영화들을 떠올리다 보면 거의 본능적으로 그 영화들 속 어딘가에서 봤을 식당의 풍경을 떠올리게 된다. 둥그런 식탁에 앉아 자그마한 사발에 국수나 고기 같은 걸 옮겨 담아서 젓가락으로 후루룩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는 그 특유의 분위기.

젊어서 호주생활을 한 경험 때문인지, 그 장면을 연상하면 동시에 그 대만 음식 특유의 향 또한 느껴진다. 진하게 뽑아낸 고기 국물에 청경채 같은 아삭한 야채가 곁들여지고 아마도 허브가 곁들여진 듯한 그 독특한 향은 대만을 포함한 중국음식의 상징적인 기억이 되었다. 분당 수내역 근처에 있는 대만음식 전문점 '라오미엔'은 그 오래된 기억을 떠올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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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 넓은 창은 바깥 풍경을 내려다보이는 곳에 앉은 우리에게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조그마한 코팅된 쪽지로 적혀진 글귀였다. 'MSG(인공조미료)를 넣지 않아서 조금 밍밍한 맛이 날 수도 있다'는 것. 그 글귀는 일단 음식에 대한 신뢰감을 주었다. 배가 고파서였는지 우리는 이 집의 대표음식인 면요리 '라오미엔'과 '홍샤오미엔'을 시켰고, 아이들용으로 대만식 덮밥인 '루로우판', 그리고 애피타이저 겸으로 '라오 두부 샐러드'와 '라오 두부 튀김'을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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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나온 것이 '라오 두부 샐러드' 부드러운 두부와 야채가 곁들여진 이 샐러드는 그 특유의 소스가 일품이었다. 게눈 감추듯 후다닥 먹어치우자 곧바로 '라오 두부 튀김'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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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요리중 가장 독특하고 맛있었던 이 '라오 두부 튀김'은 겉은 두부보다 단단해 씹는 맛이 있었고 속은 부드러웠다. 여기에 매콤한 홍고추와 파가 곁들여져 탄산음료와 곁들여 먹으니 금상첨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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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나온 이 음식점의 대표요리 '라오미엔'은 일단 그 커다란 용기가 마음에 들었다. 사골을 우려낸 국물에 완전히 흐물해질 때까지 익힌 고기, 그리고 그 위에 아삭한 청경채와 야채가 곁들여져 부드러운 면과 함께 잘 어우러졌다. 이 음식은 특유의 대만의 향기(?)를 떠올리게 했다. 작은 그릇에 옮겨 담아 후루룩 후루룩 젓가락으로 반은 마셔가며 먹어보니 마치 '비정성시' 속의 한 인물이 된 듯 기분이 상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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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샤오미엔'이라 불리는 이 국수는 국물의 맛은 '라오미엔'과 비슷했지만 조금 얼큰한 맛이 일품이었다. 고기 국물이 조금 느끼하다 여겨지는 분이라면 이 국수의 칼칼함이 뒷끝을 깨끗하게 해줄 것으로 생각되었다. 국수는 우동 면발처럼 통통했는데, 마치 너구리 면발을 오랜만에 먹어본 듯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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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대만식 덮밥인 '루로우판'. 무엇보다 아삭한 숙주가 그만이었다.

전체적으로 담백한 맛의 음식들은 맛도 맛이지만 몸에 좋을 것 같았다. 마무리는 이 곳에서 만든 음료인 쑤안메이쥬스(매실과 여러 한약재를 오래 끓여서 만든 라오미엔만의 건강음료). 달콤한 듯 하면서도 한약재 특유의 쌉싸름함도 있는 이 쥬스는 입안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어디 음식점이 음식의 맛으로만 기억될까. 나의 경우에는 그 맛이 상기시키는 어떤 기억으로 음식과 그 음식점을 떠올릴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라오미엔'은 나의 젊었던 시절, 대만 뉴시네마에 푹 빠져 지냈던 그 청춘을 떠올리게 했다. 열정적인 사람들이 특유의 따뜻한 시선을 나누던 그 영화 속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 기억은 사발에 담겨진 감칠맛 나는 고기국물에 부드러운 면발 속에서 새록새록 피어나고 있었다. 혹 대만영화에 빠졌던 청춘을 가진 분들이라면 그 회고의 장소로 좋은 곳, 바로 '라오미엔'이다.

찾아가는 길 : 수내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 031-719-24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