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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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화 속으로', 반공도 반전도 아니다

D.H.Jung 2010. 6. 20.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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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눈빛으로 기억되는 영화, '포화 속으로'

'포화 속으로'의 전쟁 스펙터클은 한 편의 액션영화를 보는 것처럼 숨 가쁘고 정신없을 정도로 현란하며 심지어 때론 아름답게까지 느껴진다.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으면 그 화려한 영상의 박진감 속에 빠져들 정도다. 하지만 그 스펙터클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조금 답답해진다. 많은 이들이 영화 개봉 전부터 불거져 나왔던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했던 문제나, 특정 집단의 자본이 들어갔다는 이야기로 인해 이 영화가 반공영화일 거라는 우려를 하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이 영화는 반공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가 반공영화가 아닌 이유는 당연하다. 상업영화이기 때문이다. 70년대도 아니고 2010년도에 반공영화는 대중들이 공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품성이 없다. 그래서 주인공 장범(탑)이, 죽어가며 '오마이'를 외치는 어린 북한병사를 처음으로 확인사살하고는 '그들 역시 괴수가 아니었다'고 말하는 장면은 조금은 생뚱맞아 보인다. 반공을 주창하던 시기는 전후의 일이지, 전쟁이 막 벌어지던 당대의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장면은 상업영화로서 반공 냄새를 없애려는 안간힘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반공영화가 아니라는 것이 반전영화라는 얘기는 아니다. 초반부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몰아치는 전투장면과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다며 포항에 학도병을 놔두고 가버리는 강석대 대위(김승우). 그리고 이기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것 같은 인민군 776부대를 이끄는 박무랑(차승원). 이들은 어느 편이라기보다는 모두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 던져진 그저 싸워야 하고 이겨야 살아남는 비슷비슷한 존재들처럼 그려진다. 한바탕 전투의 소란 속에서 수많은 죽음을 경험하고 살아남은 장범의 넋 나간 얼굴과, 새로 온 학도병들을 장범의 손에 맡긴 채 떠나가며 강석대 대위가 "너희들은 군인인가 아닌가"를 묻는 초반부의 장면은 그래서 이 영화가 마치 반전영화인 것 같은 인상을 던져준다.

하지만 국군이 떠나가고 포항에 남은 학도병들은 이상하게도 이 덧없는 어른들의 전쟁 속에서 스스로를 자가발전시키며 조국을 위해 몸을 던진다. 영화 후반부에 장범이 "우리는 군인인가 아닌가"를 선창하듯 질문하고, 다른 학도병들이 "군인이다!"라고 선언하는 장면부터, 거의 초인처럼 총을 쏴대는 장범과 갑조(권상우) 앞뒤로 마치 게임처럼 우수수 쓰러져버리는 북한 병사들의 모습은 액션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논조는 이렇게 바뀐다. 왜 싸워야 하는지 모르지만, 조국이라는 명제 앞에서는 결국 그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전쟁은 비극적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

이 쉽게 드러나는 영화의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감성적으로 영화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장범을 연기하는 탑의 눈빛이다.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아도 그의 두려움과 순수함과 강인함, 그리고 슬픔이 교차하는 그 눈빛은 많은 걸 얘기해준다. 영화를 보다가 혹시 눈물이 났다면 그것은 영화가 꾸며놓은 화려한 영상 때문도 아니고, 조악하지만 꾸역꾸역 집어넣은 모성애적인 관점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 모든 상황을 체념하듯 받아들이고 있는 탑의 슬픈 눈빛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탑의 눈빛은 이 영화와 이 영화가 방영되는 2010년도의 우리네 청년들의 눈빛을 닮았다. 마치 왜 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전쟁터로 나갔다가 죽음을 맞이한 학도병들처럼, 여전히 이런 국가의 메시지 속에 던져진 채 그 싸움으로 점철된 어른들의 세상에 여전히 편입되기를 강요받아야 하는 청년들의 슬픔. 그래서 영화 마지막에 뒤늦게 돌아온 강석대 대위가 장범을 안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장면은 여러 모로 의미심장하다. 어른들의 전쟁 속에 무참히 동원된 학도병에 대한 미안함, 혹은 그래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어른들의 시각에 대한 미안함. 탑의 슬픈 눈빛이 아픈 여운을 남기는 건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