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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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영, 연개소문 살릴까

D.H.Jung 2006. 12. 1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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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사극들이 동시에 각 방송사에서 터져 나오다보니 묘한 일들도 벌어진다. 세 편의 고구려 사극 중, MBC 드라마 ‘주몽’이야 그 역사적 시기가 동떨어진 데다 방영요일도 달라 그다지 큰 영향은 없다. 하지만, 주말 저녁 시간대의 KBS ‘대조영’과 SBS ‘연개소문’은 다르다. 이 두 드라마는 역사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있는 데다 같은 요일, 비슷한 시간대에 방영되기 때문이다. 두 드라마가 영향을 주고받는 그 중심에는 바로 연개소문이란 인물이 있다.

‘연개소문’엔 없고, ‘대조영’엔 있는 것은?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는 ‘연개소문’과 ‘대조영’은 초기 이야기 설정 부분에서 엉뚱한 인물들에 초점이 맞춰졌다. SBS 사극 ‘연개소문’은 청년기로 들어서면서 연개소문보다는 수양제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한 회분에서 연개소문이 등장하는 시간은 고작해야 10분을 넘지 않는데, 훨씬 많은 시간이 수양제에게 할애되었다. 그것은 사극을 끌어가는 구심점으로 젊은 연개소문의 힘보다 수양제의 그것이 더 강력했기 때문이다. 최근의 상황을 보면 ‘연개소문’이란 제목이 무색할 지경이다.

반면 KBS 사극 ‘대조영’은 정통사극을 표방하며 대조영이란 인물이 차곡차곡 극의 힘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중간에 대조영만큼 강력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대중상, 양만춘, 연개소문이 그들이다. 그들 중 최근 최후를 맞이한 연개소문의 힘은 ‘대조영’이란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구심점이 되었다. 실제 아버지인 대중상보다 연개소문이 더 대조영의 아버지 같이 그려지는 것은 그 힘을 어느 정도 주인공에게 분산해 가지려는 드라마의 의도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그의 최후로 인해 고구려가 무너진다’는 극 본연의 설정에도 부합하기 때문에 연개소문의 드라마 장악력은 당연히 요구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연개소문이란 역사적 인물은 SBS 사극 ‘연개소문’엔 없고 KBS 사극 ‘대조영’엔 있는 인물이 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 역할을 맡은 연기자들의 공력 또한 중요한 요인이 됐다. ‘연개소문’에서 수양제 역할을 맡은 김갑수는 광기 어린 황제의 모습을 그려내며 사극의 또 다른 재미인 ‘강한 적’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한편 ‘대조영’에서 연개소문 역할을 맡은 김진태는 카리스마 연기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명확히 보여주고 인상적인 최후를 맞았다.

‘대조영’의 연개소문 사망 그 후
이렇게 해서 두 사극에서 동시에 존재하던 한 연개소문은 사라졌다. 그런데 ‘대조영’에서 죽은 연개소문의 유령이 SBS 사극 ‘연개소문’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뒤늦게 생각해보면 그것은 ‘대조영’의 연개소문이 살아있을 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을까. 만일 ‘대조영’ 없이 단독으로 ‘연개소문’이 방영되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연개소문이란 역사적 인물이 어디서도 각인되지 않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주인공 없는 '연개소문'이란 드라마를 시청자들이 얼마나 참을성을 갖고 봐줄 수 있었을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연개소문’에는 없는 연개소문이 같은 시간대 ‘대조영’에는 있었다. ‘대조영’을 통해 역사적 인물인 연개소문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것은 역할을 다하고 사망한 뒤에도 여전히 남았다. 그리고 이제 몇 회분이 지나면 사람들이 기대하는 유동근의 연개소문을 보게 될 터이니, 사실 이 연개소문 없는 ‘연개소문’의 시기를 메워준 것은 ‘대조영’의 공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대조영’의 카리스마들, ‘연개소문’에서 기대된다
비슷한 소재를 같은 시간대에 양 방송사에서 방영하는 것은 때론 혼동을 낳게 만들며 이것은 비판의 소지가 충분하다. ‘대조영’의 양만춘을 보다가 ‘연개소문’의 양만춘을 보면서 헷갈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혼동에 의해 ‘연개소문’은 톡톡한 이점을 얻게 되었다. ‘대조영’에서 우리는 이미 대조영만이 아닌 양만춘, 대중상 같은 여러 장수들의 매력적인 카리스마를 목격했다. 그러니 지금 저 ‘연개소문’에서 나오는 젊은 양만춘에게 어찌 관심이 가지 않을까.

이것은 저 드라마 ‘주몽’의 시청자들이 RPG 게임처럼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되는 주몽에 매료되었던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대조영’에서 등장한 카리스마들이 하나의 예고편 역할을 해주었다면 우리는 ‘연개소문’에서 그들의 성장과정, 혹은 성장한 모습을 기대할 것이다. 반면 ‘대조영’은 이제 이 카리스마들을 떨구고 자신만의 외로운 길을 새로 개척해나가야 되는 불리한 상황이 됐다. 하지만 결과를 속단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연개소문’에 새롭게 생긴 이 기대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것은 더 깊은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늘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대조영’은 오히려 홀가분하게 맘껏 이야기를 펼쳐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두 사극의 향방이 자못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