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신세대 구미호는 어떻게 탄생했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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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구미호는 어떻게 탄생했나

D.H.Jung 2010. 8. 1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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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구미호와 젊은 세대는 뭐가 닮았나

신세대 구미호가 탄생했다.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이하 여친구)'에서 신민아가 분한 구미호다. 신민아의 이미지가 그렇듯 이 구미호는 전통적인 구미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한'이 없다. 무려 오백 년이 넘게 갇혀 지냈지만, 이 구미호가 어딘지 허당 기질이 다분한 차대웅(이승기)을 꼬드겨 그림에서 도망쳐 나오고는 하는 얘기는 고작, "얼마나 갑갑했는 줄 알아?"다. 전통적인 구미호가 인간이 되기 하루 전날 약속을 어긴 남편 때문에 다시 구미호로 변하고는 눈물을 철철 흘리던 그 모습은, 이 신세대 구미호에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또 전통적인 구미호들이 변신을 했을 때 보여주던 엽기적이고 무시무시한 행동들, 예를 들면 소의 간을 빼먹는다든가 하는 것들도 이 신세대 구미호의 상큼발랄한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구미호는 귀엽게도 "고기 좀 사주라"하고 덜 떨어진 허당 차대웅에게 빌붙는다. 빨리 익지 않는 고기를 참지 못해, 생고기를 씹으려다가 "안돼. 안돼. 안돼. 이건 인간답지 않아"하며 내려놓는다. 그녀는 분명 인간이 되고 싶은 욕구를 가졌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구미호라는 처지를 비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구미호로서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들, 예를 들면 대단한 후각을 가져서 멀리서도 대웅이의 냄새를 따라갈 수 있거나, 놀라운 청각으로 멀리서도 소리를 들을 수 있거나 혹은 여우구슬을 이용해 다 죽어가는 대웅이를 살려내는 등의 능력을 자랑한다. 이것은 전통적인 구미호가 가진 변신능력에 대한 재해석이다. 전통적인 구미호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변신능력을 가진 자신을 괴물처럼 여긴다. 반면 이 신세대 구미호는 인간이 되고 싶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변신하는 자신을 괴물로 여기지는 않는다. 변신은 그녀에게 능력이다.

이 전통적인 구미호와 확연히 대별되는 신세대 구미호의 탄생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구미호가 그토록 시대를 거치면서도 반복되어 재탄생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캐릭터가 특별했기 때문이다. 반인반수라는 구미호의 캐릭터는 인간 이하로 취급되는 존재가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각 시대가 갖는 사회 속의 권력구조를 그 속으로 끌어들인다. 억압으로 인해 차별받는 존재들은 구미호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한(잘못 취급받아온 것에 대한)을 토로한다. 어느 시대건 억압은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구미호는 어떤 시대에서건 재탄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억압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신세대 구미호의 탄생은 어떻게 봐야 할까. 구미호라는 캐릭터가 기본적으로 여성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쉽게 그 해답을 알 수 있다. 알게 모르게 여성이라는 성이 그 자체로 억압의 대상으로 판별되던 시대에서 이제 오히려 그 성이 능력으로 자리한 시대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 변신이 천형이 아닌 능력으로 받아들여지는 '한'이 없는 신세대 구미호는 어쩌면 이 시대의 달라진 여성상을 반영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구미호는 무얼 하려는 것일까. 이제 첫발을 떼고 있기에 그 의도를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다만 단서들은 많다. 구미호의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갖는 능력들, 즉 날아다닌다거나 하는 것들은, 이제 대학생이지만 대책 없어 보이는 차대웅에게는 실로 부러운 능력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첫 회에 와이어를 타고 동영상을 찍는 장면에서 "나 멋있냐?"하고 묻고는 잠시 후, "빨리 내려줘 아파 아파."하고 말하는 에피소드는 앞으로 이 능력이 넘치는 구미호와 무능해 보이는 차대웅이 어떤 일을 벌일 지 예측하게 만든다.

홍자매가 늘 작품들 속에서 천착해오던 청춘의 고민들은 이 작품에서도 구미호라는 캐릭터를 통해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취업전쟁 같은 현실 앞에 무력하기만 한 작금의 청춘들이 구미호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 따라서 전통적인 구미호 이야기에서 인간과 구미호는 대결구도를 가지지만 이 신세대 구미호에게 인간과 구미호는 서로의 성장을 돕는다. "인간이 되고 싶다"는 그 공통의 욕망을 공유하며.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다른 존재이면서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또 받아들이는 이 두 존재의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를 통해 얻어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