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동이', 기사회생한 이유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동이', 기사회생한 이유

D.H.Jung 2010. 9. 1.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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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 왕재를 키워라

물론 여름휴가철의 여파가 컸겠지만 '동이'는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도 지지부진함을 보임으로써 사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시청률이 떨어지는 비운을 맞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동이'가 기사회생하고 있다. 단지 시청률 반등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조금은 상투적으로 느껴지던 단순한 이야기 구조가 다시 팽팽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도대체 무엇이 '동이'를 다시 일으켜 세웠을까.

무엇보다 큰 것은 훗날 영조가 되는 동이(한효주)의 아들 연잉군(이형석)의 등장이다. 연잉군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달라진 것은 이제 '동이'의 이야기가 동이 자신에게 부여되는 미션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위험에 빠진 동이가 그것을 헤쳐나오며 새로운 등급으로 올라가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인 연잉군을 갖은 위험 속에서 보호하며 왕재로 키워내는 과정이다.

사실 이것은 '동이'라는 사극이 차별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천민 출신에서 후궁까지 성장하는 과정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지만 이미 많은 미션 사극들이 그 정도의 에피소드들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다지 '동이'만의 차별점이 되지는 못한다. 즉 천민에서 후궁이 됐다는 것 자체는 사극으로 재조명할 만큼의 매력이 없다는 이야기다. '동이'라는 소재가 매력적인 것은 그녀가 영조라는 성군을 키워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연잉군이 등장하고 그를 왕재로 키워내는 과정이 다뤄지는 지금부터가 '동이'의 진짜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동이'의 이야기는 다시 초반부에 동이와 깨방정 숙종(지진희)이 저자거리에서 만나 서로 정을 느끼게 되는 과정을 그 아들 버전으로 반복한다. 검계 문제로 궐 밖으로 내쳐진 채 6년 간을 살아온 연잉군이 우연히 숙종을 만나게 되고, 숙종이 아버지인줄도 모르고 "무엄하다!"고 말하며, 거기에 맞춰 한 아이의 아버지로 돌아간 숙종이 자신을 판관으로 속이며 몸을 낮추는 에피소드는 초반부 가장 뜨거웠던 풍산 동이 에피소드의 반복이다. 그리고 다시 궐에 들어간 연잉군이 숙종이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숨어버리는 에피소드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동이'는 다시 초반부의 인간적인 숙종이 보여준 매력을 연잉군이라는 캐릭터의 등장과 함께 과시하고는 본격적으로 연잉군의 에피소드로 들어간다. 7살의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소학은 물론이고 중용에 대학까지 떼어버린 선재 연잉군과 상대적으로 유약한 세자를 앞세우고, 동이, 중전과 장희빈의 피 튀기는 대결이 시작되는 것. 이 부분이 흥미로운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미 '이산'을 통해 봐왔던 카리스마 넘치는 영조(이순재)가 만들어놓은 아우라를 어린 나이지만 연잉군의 영민함과 과감성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 연잉군의 남다른 천재성으로 인해 장차 촉발될 장희빈의 비극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로써 '동이'의 이야기가 '이산'과의 연결고리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영조라는 인물에 대한 조명이 그렇고, '궁에서 살아남기'라는 모티브가 그렇다. 장희빈의 비극은 지금껏 사극에서 그토록 많이 다뤄짐으로써 이미 그 소재로서의 매력을 한껏 드러낸 바 있다. 여기에는 권력에 대한 욕망과 모성애가 절묘하게 이어지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동이'는 과연 이 백미를 어떻게 재해석해 풀어낼 것인가. '동이'는 지금 이 사극이 그토록 긴 길을 걸어 드디어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낼 바로 그 지점에 서 있다. '동이'의 기사회생은 이제 비로소 이 사극이 하려던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