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예능 프로그램, 결국은 게임이 문제다 본문

옛글들/명랑TV

예능 프로그램, 결국은 게임이 문제다

D.H.Jung 2010. 9. 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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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투게더'와 '런닝맨' 논란이 말해주는 것

결국은 게임이 문제다. '해피투게더'는 지금껏 게스트 배려가 가장 돋보이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이른바 '커플 게임' 하나로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게임은 전형적인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가져온 것들로 처음에는 이구동성 퀴즈 같은 소소한 것으로 시작하더니, 차츰 막대과자를 남녀가 양쪽에서 먹어 가장 적게 남기는 게임, 신문지를 점점 접어가면서 두 사람이 그 위에 서는 게임으로 강도를 높이더니 마지막에는 눈을 가린 사람이 자장면을 먹여주는 조금은 과도한 게임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이 게임의 주인공은 게스트가 아니라 게임에 참여한 박명수-박미선이었다. 지금껏 이런 균형을 잃은 과도함이 없었던 '해피투게더'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편집이었다.

게스트를 위해 기꺼이 병풍이 되어줌으로써 게스트들의 자연스러운 토크를 유도하던 '해피투게더' 본연의 화기애애하고 편안한 분위기는 왜 이런 과도함으로 점철되어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을까. 이것은 때론 프로그램에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 게임이 가진 또다른 얼굴이다. 게임은 잘 활용되면 캐릭터도 만들어주고, 프로그램을 팽팽하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너무 과도해지면 거기에 참가하는 이는 물론이고 보는 이까지 불편하게 만든다. 웃음은 게임의 강도가 적절했을 때 유발되지만, 어떤 선을 넘기면 고통으로 변질된다. 만일 넘어진 개그맨이 진짜 다리가 부러진다면 웃을 수 있을까. 웃자고 한 일이 과도해 '왜 이걸 하고 있지'하고 반문하게 된다면 과연 웃을 수 있을까.

게임이 문제인 것은 '런닝맨'에서도 불거져 나온 바 있다. 도시의 랜드마크를 찾아가 아무도 없는 밤에 지형지물을 이용한 각종 게임을 수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그러나 지나치게 가학적인 게임 때문에 논란에 휩싸였다. 얼굴에 빨래집게를 집고 양측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게임은 보기만 해도 그 고통이 생생히 느껴졌고, 손가락 사이에 젓가락 넣고 부러뜨리기 게임 역시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는 구호로 얼룩졌다. 주사위 수만큼 계란을 잔뜩 넣은 뜨거운 쌍화차를 누가 빨리 마시는가 하는 게임에서 유재석은 "용암을 마시는 것 같다"고 심정을 말하기도 했다. 아무리 게임 버라이어티를 추구한다고 해도 이건 너무 지나치다는 의견이 쏟아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게임이 갖는 비중은 상당하다. '무한도전'이 어떤 확고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차츰 진화해온 도전과제와 그 과정 중에 보여준 다양한 스토리들 때문이지만, 그 속에 양념처럼 들어가 있던 게임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이것은 '1박2일'에서도 마찬가지다. '1박2일'은 여행이라는 아이템을 주제로 하지만, 재미 요소를 확실하게 주는 것은 다름 아닌 복불복이었기 때문이다. 야외 취침이나 저녁 식사를 놓고 벌이는 복불복은 차츰 진화해서 팀원들과 제작진이 게임을 벌이는 복불복의 스펙터클까지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예능 프로그램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임은 또한 천덕꾸러기이기도 하다. '1박2일'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던 가장 큰 이유는 본래 취지인 여행이 점점 드러나지 않고 지나치게 복불복에만 치중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1박2일'은 이런 비판을 받아들여 복불복 게임을 잠시 접어두고 다섯 구간으로 나누어 지리산 둘레길을 각자 걷는 모습을 통해 본연의 모습을 찾아갔다. 과거 '패밀리가 떴다'가 비판 받았던 점도 바로 게임이었다. 어떤 변화없이 밥 해먹고 게임하고 밥 해먹고 게임하는 그 매너리즘이 문제로 지적되었던 것.

작금의 예능 프로그램은 맥락 없는 게임의 연속만으로는 대중들의 달라진 기호를 만족시키기가 어렵다. 게임은 일종의 자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극만으로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점점 버라이어티쇼화 되어가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이제 말 그대로 버라이어티한 재미를 추구해야 이제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 프로그램들이 내세운 취지에 맞는 스토리를 지속적으로 축적해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이 계속 도전을 하고, '1박2일'이 계속 여행의 설렘을 찾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해피투게더'가 비판받았던 것은 게임에 몰두하면서 그 본래 취지인 '함께 행복(해피투게더)'한 모습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런닝맨'이 비판받는 것은 아무리 게임 버라이어티라고 해도 그 안에 어떤 맥락 있는 이야기 구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저 마구잡이식의 게임에 치중하기보다는 '다이하드'식의 액션 스토리를 부가하고 유르스 윌리스 같은 캐릭터를 끄집어내면서 차츰 스토리를 축적시키는 것에 몰두할 필요가 있다. 예능 프로그램이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하기 시작하는 순간, 본래 프로그램의 스토리는 그만큼 휘발되기 쉽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위기는 바로 이런 부분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