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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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대물'이 권상우에게 부여한 힘과 역할

D.H.Jung 2010. 10. 2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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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으로 돌아온 권상우, 그에게 남은 숙제

권상우가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권상우의 이미지가 달라졌다. '대물'에서 그가 연기하는 하도야라는 돈키호테 검사 덕분이다. 사실 권상우가 검사 역할로 나온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은 기대보다는 우려를 더 많이 했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에 출연하기만 하면 사사건건 구설수가 됐던 데다가 지난 6월에는 뺑소니 사건까지 일어났다. 그러니 드라마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아무리 재미있어도 권상우 때문에 드라마를 안보겠다는 말이 나온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것은 권상우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는 제작발표회에서 "매를 맞든 칭찬을 듣든 작품으로 보여드리는 게 첫 번째인 것 같다"며 고개를 숙였다. 자숙해야 될 시기에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이 부담이 됐을 터였다. 게다가 연기만 하면 연일 터져 나오는 발음이나 연기력 논란은 자칫 이 배수진에 선 연기자를 벼랑으로 밀어낼 위험까지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건 역시 캐릭터가 가진 힘이었다. 많은 이들이 '대물'이란 드라마를 여성 대통령 즉 서혜림(고현정)이 원톱으로 나오는 스토리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하도야라는 돈키호테 검사가 나란히 서는 스토리였다는 것이다. 물론 하도야는 서혜림의 뒤에 서 있지만, 결코 서혜림에 못지않은 역할이다. '대물'은 결국 둘이었던 셈이다.

'대물'이 그리는 세계는 이분화되어 있다. 조배호(박근형)로 대변되는 썩은 정치인들과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서혜림과 하도야로 대변되는 돈키호테들이다. 서혜림이 정치판에서 당의 거수기와 앵무새로 이용되는 것에 당당히 반기를 드는 것처럼, 하도야는 권력자라면 그저 고개부터 숙이는 검찰에 무모하게도 맞서는 인물이다. 그러니 '대물'의 힘은 서혜림이 싸우는 정치판 이야기와, 하도야가 싸우는 검찰 이야기의 두 바퀴로 굴러간다.

서혜림이 감성적으로 눈물에 호소하면서 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처럼, 하도야도 돈 없고 백 없는 서민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한다. 하도야가 신상명세 몇 개로 조배호를 몇 시간 동안 앉혀놓는 장면은 비록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보는 이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아무도 대면하지 못하는 조배호 앞에서 고개를 뻣뻣이 들고 대거리를 하는 장면이 주는 속시원함은 또 어떻고.

서민들의 속내를 대변해주는 하도야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늘 비호감으로 몰려왔던 권상우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분명하다. 권상우의 이미지 속에 남아있던 조금은 건들대는 듯한 모습은 하도야 속으로 들어와 정치권력 앞에서 보여지면서 오히려 당당함으로 전환된다. 가벼운 듯한 이미지는 서민적인 검사 이미지로 바뀌었고, 거친 이미지는 정의감으로 표현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일생일대의 기회에 권상우가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대중들에 대한 부채감 때문이겠지만 하도야 속에서 권상우의 연기는 피어나고 있다. 그가 어린아이처럼 굴 때 보는 이들을 웃게 만들고, 뒤에서 힘겨운 서혜림의 어깨를 두드려줄 때 든든하게 느껴지게 만들며, 자신의 정의가 거짓에 짓밟히고는 뚝뚝 흘리는 눈물에 공감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연기자의 본분이라면 그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대물'이 하도야라는 캐릭터를 통해 권상우에게 부여한 힘은 막대하다. 그리고 그에게 대중들이 부여한 역할 또한 분명하다. 하도야라는 캐릭터의 입으로 서민들의 답답한 속을 확 풀어주는 그런 연기를 보여 달라는 것이다. 물론 권상우가 선택한 것이 어떤 결과로 끝맺음을 할 지는 여전히 속단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노력하는 모습이 연기 속에 묻어난다면 대중들의 마음 또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권상우는 지금 그 길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