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닥터 챔프', 아시안게임이 달라 보이는 이유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닥터 챔프', 아시안게임이 달라 보이는 이유

D.H.Jung 2010. 11. 10.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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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챔프'가 아시안게임에 미치는 영향

아시안게임에 나가는 선수들에게 있어서 태릉선수촌이란 어떤 의미일까. 국가대표가 된다는 것은 무엇이고 부상이란 어떤 고통일까. 사실 TV를 통해 생중계되는 선수들의 경기와 그들이 힘겹게 따낸 메달에 우리는 감동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값진 의미인지는 잘 실감하지 못한다. 물론 메달을 딴 선수라면 그 의미를 찾아 카메라가 다가가겠지만, 아깝게 메달을 놓친 불운의 선수들은 그저 잊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만일 '닥터 챔프'라는 드라마를 본 시청자라면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선수들에 대한 마음이 사뭇 다를 것이다.

태릉선수촌 의무실이라는 이 드라마의 배경은 선수들의 고충을 온몸으로 그려내는 공간이다. 거기에는 부상을 입어도 티 하나 내지 않고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있고, 우정으로 경쟁하지만 경기 중 불운으로 한 선수가 다른 선수를 영원히 뛰지 못하게 만드는 사고를 겪는 선수들도 있다. 거기에는 폐암이 의심되는 증상을 갖고 있으면서도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정밀검사를 받지 않으려는 선수도 있고, 도핑테스트에 걸려 자칫 출전조차 못할 뻔한 선수도 있다.

물론 죽을 것 같은 훈련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태릉선수촌에서 쫓겨나지 않는다면, 그래서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수 있다면 그들에게 지옥훈련은 지옥이 아니다. 그들에게 진짜 지옥은 태릉선수촌 바깥으로 밀려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오로지 메달을 따기 위해 태어난 듯이 살아가는 훈련기계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들은 그 살벌한 경쟁 속에 살아가면서도, 아니 그렇게 살아가기 때문에 더더욱 누군가와의 사랑을 희구한다. 유도선수인 유상봉(정석원)이 박지헌(정겨운)에게 하는 말대로 이제는 "사랑이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더 힘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닥터 챔프'는 경기 무대 위에서만 보았던 선수들의, 무대 아래 이야기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슈퍼스타K2'를 닮았다. '슈퍼스타K2'라는 스포츠 형식을 무대화한 프로그램이 단순히 대결 자체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대결에 임하는 경쟁자들을 포착해 오히려 대결을 더 흥미진진하게 한 것처럼, '닥터 챔프'는 경기장 바깥의 이야기로 경기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놓는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주목받았던 역도의 이배영 선수나 펜싱의 남현희 선수, 배드민턴의 이용대 선수, 유도의 최민호 선수 등등.. 그들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이면에 숨겨진 땀과 눈물을 우리는 '닥터 챔프'가 그리는 박지헌의 이야기를 통해 미루어 짐작해낼 수 있다.

물론 '닥터 챔프'는 극화된 허구의 드라마일 뿐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허구로 그려내는 이야기들 속에는 현재 우리네 선수들의 녹록찮은 삶이 묻어나 있다. 몸뚱어리 하나로 진솔하게 맞붙는 이들의 삶에서 단순하지만 명쾌한 삶의 진실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시안 게임은 꾸며질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니 그동안 정직하게 흘린 땀과 그 날의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승운에 따라 결과가 나오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결과가 무엇이든 이제는 알 수 있겠다. 거기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이미 저마다 하나씩의 고개를 넘은 승자들이라는 것을.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아시안게임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건, 이 작은 드라마가 보여준 선수들에게 대한 따뜻한 헌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