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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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로열 패밀리'에 열광하게 만드나

D.H.Jung 2011. 3. 24.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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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선덕여왕' 같은 '로열 패밀리', 그 흥미진진함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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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패밀리'(사진출처:MBC)

"회장님 지시면 인권을 유린해도 되는 거야? 공회장이 무슨 왕이라도 되는 거냐구. 아니 왜 다들 정가원에만 있으면 시대감각을 잃는 거야. 지금 무슨 사극 찍어요? 멀쩡한 사람을 어디다 가둔다고 그래?" '로열 패밀리'에서 한지훈(지성)은 정가원에서 왕처럼 군림하며 가족들을 쥐락펴락하는 공순호(김영애)회장이 자신과 김인숙(염정아)을 감금하려 하자 이렇게 말한다. 한지훈의 비유 섞인 대사지만 사실 이 대사는 이 드라마를 정확히 바라보고 있다. '로열 패밀리'는 현대판 사극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현대판 '선덕여왕'이다.

이 드라마의 중심이 되고 있는 JK그룹은 하나의 왕국이고, 공순호 회장은 그 왕국의 여왕이다. 여왕의 가신들은 가족이다. 가족적인 회사라는 얘기가 아니다. 거꾸로 회사 같은 가족이라고 할까. 여왕인 공순호 회장은 이 가족들을 끊임없이 경쟁에 세운다. 그 경쟁의 전면에 나서는 인물들이 남자들이 아니라 여자들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후계가 이미 결정된 것처럼 행동하고 살아가는 첫째 며느리 임윤서(전미선) 그녀는 구성그룹의 장녀로 뼛속 깊이 재벌가 출신이다. 막내 며느리 양기정(서유정)은 정치인의 딸로 호시탐탐 JK그룹의 실권을 노린다. 여기에 공순호 회장의 딸인 조현진(차예련)이 끼어들면서 여왕의 후계를 노리는 싸움은 흥미진진해진다.

반면 집안도 학력도 일천한 둘째 며느리인 김인숙은 남편도 잃고 자식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겉보기에는 그저 순정가련형 인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서울 정도로 '준비된' 여인이다. 스토리는 바로 이 밑바닥부터 아무 것도 없는 여인 김인숙이 차츰 JK그룹의 실세로 성장해가는 투쟁의 과정이다. 바로 이 점은 시청자들에게 어떤 카타르시스를 준다. 혐오스러울 정도로 보이는 돈과 권력에 대한 집착, 태생으로 신분을 계층화하는 그들 속에서 수십 년을 조용히 준비해온 김인숙이 벌이는 일종의 복수가 보는 이들을 열광하게 만든다. 이 사극에서라면 신분을 뛰어넘는 성공의 이야기는, 일의 측면에서 보면 워킹우먼들의 조직생활로 읽히기도 하고, 가족의 측면에서 보면 시집과 며느리의 대결구도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야기를 끊임없이 풍부하게 하는 건 이 여인들 옆에 또 그녀들을 돕는 측근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즉 첫째 며느리 임윤서와 막내 며느리 양기정은 그 유력한 집안이 움직이고, 여기에 맞서는 김인숙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후원해서 변호사가 된 한지훈, 조용히 그녀를 옆에서 돕는 정가원의 집사 엄기도(전노민), 또 그녀가 자원봉사를 하면서 넓혀놓은 사회적 인맥을 갖고 있다. 이들의 대결이 팽팽하게 이어지는 건, 이 왕국의 여왕인 공회장이 이들에게 끊임없이 미션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 정계와 로비를 하는 과정에서 김인숙은 JK클럽의 대표가 되며, 로엘을 JK에 입점시키는 미션을 성공시킴으로써 첫째 며느리를 무릎 꿇린다.

'로열 패밀리'가 갖고 있는 '선덕여왕' 같은 사극의 이야기 구조는 이 드라마에 강력한 추진력을 만들어낸다. 사극이 갖는 서열구조(즉 신분사회 속에서 신분을 넘어서려는 욕망)는 로열 패밀리의 JK그룹의 집안으로 재현된다. 강력한 카리스마의 공회장은 이 모든 걸 장악한 미실 같은 인물이고, 아무 것도 없지만 차츰 한 계단씩 정상으로 올라가는 김인숙은 덕만 같은 인물이다. 임윤서와 양기정이 미실 세력을 만드는 외척들이라면, 한지훈은 외부에서 들어와 김인숙에게 충성하는 김유신 같은 인물이다.

'로열 패밀리'가 가진 강점은 신분사회라는 사극만이 가진 극성을 재벌가 사람들 속에서 발견해낸 것이다. 마치 싸이코 패스 같은 무감정한 경제 동물들은 신분으로 세습되고, 끝없이 축적된 자본으로 저들만의 왕국을 건설한다. 그 속에 인간 김인숙이 서 있다. 그녀는 묻는다. "내가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그 경제 동물의 왕국 속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온 그녀가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그 첫 번째다. 나머지 두 번째는 그들을 뛰어넘는 방식으로서 자본의 논리가 아닌 인간의 힘(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으로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사극적인 패턴이 들어간 것은 아마도 크리에이터 역할을 하고 있는 김영현, 박상연의 영향일 것이다. 그들은 이미 '선덕여왕'을 통해 현재적인 의미를 만들어내는 사극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로열 패밀리'는 거꾸로 현재 속에도 그래도 남아있는 사극적인 사회의 잔재를 보여준다. 이 현대판 사극은 따라서 그 자체로 비판적인 시선을 담는다. 저 한지훈이 "지금 무슨 사극 찍어요?"하고 되묻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