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슈퍼스타K'의 성공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본문

옛글들/대중문화와 마케팅

'슈퍼스타K'의 성공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D.H.Jung 2011. 7. 1. 17:04
728x90

 

'슈퍼스타K'(사진출처:mnet)

요즘 방송가에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히 열풍이다. 그런데 오디션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면 나올수록 점점 더 많이 언급되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슈퍼스타K'다. 마치 '슈퍼스타K'가 오디션 프로그램의 전범처럼 굳어져 가는 형국이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던 것을 케이블이라는 한계점을 오히려 역발상으로 활용하여 하나의 전범을 만들어낸 '슈퍼스타K'. 최근 들어 이 프로그램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도대체 '슈퍼스타K'의 성공은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갖는 걸까.

그 첫 번째는 편성의 역발상이다. 지상파에서 금요일은 피해가야 할 편성 시간대로 인식되곤 했다. 주5일 근무제로 금요일부터 주말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시청률은 평소의 반으로 뚝 떨어진다. 과거 SBS는 이 빈 땅(?)을 차지하려고 금요일에 두 시간 연속으로 유일하게 드라마를 편성하는 파격을 선보인 적이 있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결국 드라마 편성은 폐지되고 좀 더 캐주얼한 교양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이 그 자리를 메웠다. 한 때 MBC는 이 빈자리를 'MBC스페셜'이라는 말랑말랑한 다큐멘터리로 채워 쏠쏠한 재미를 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지상파의 금요일 평균 시청률은 10%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이런 풍경을 바꾼 것이 바로 엠넷의 '슈퍼스타K2'다. 작년 시청자들은 금요일밤 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들고 때론 울컥 감동까지 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삼삼오오 TV앞에 모여들었다. 케이블 사상 전무후무한 14%대의 시청률을 기록한 이 프로그램은 금요일의 시청 패턴까지 흔들어놓았다. 굳이 그저 그렇게 편성된 지상파를 보느니 완성도 높은 케이블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 일반인들이 참여해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슈퍼스타K2'가 한창 전국을 열풍으로 몰아갈 때, 톱 아이돌들이 대거 출연했던 '청춘불패'마저 시청률에서 참패했다는 사실은 케이블로서는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슈퍼스타K2'의 효과는 케이블들의 금요일 공격(?)으로 이어졌다. OCN에서 금요일 밤 12시에 방영되었던 '야차'는 드라마판 '슈퍼스타K'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여놓았던 드라마. 첫 회에서 최고시청률 3.5%를 기록했다. 케이블 드라마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케이블이라서 가능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들에 영상과 대본에 있어서의 완성도를 더했기 때문이다. '야차'는 미드 '스파르타쿠스'의 감각적인 영상을 조선시대 버전으로 보는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살점이 날아가고 피가 튀는 장면들조차 지극히 자극적이지만, 그 자극적인 장면들을 영상에 담는 방식은 대단히 미적이었다. tvN에서 금요일 밤 10시에 편성되었던 '원스 어폰어타임 인 생초리'는 김병욱 사단이 만들었다는 입소문을 타고 첫 방송에서 분당 최고 시청률 2.3%를 기록하며 화제가 되었다. 또 시즌8이라는 대단한 기록을 갖고 있는 '막돼먹은 영애씨'도 금요일 밤 11시 tvN에서 방영되었다. 최초의 시즌제 드라마인데다, 다큐드라마라는 독특한 형식도 이례적인 이 드라마는, 케이블 특유의 확실한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다. 시즌8의 첫 방 시청률은 역시 2.19%. 과거 1% 넘기기 힘들던 케이블 시청률을 생각해보면 대단히 높은 시청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슈퍼스타K2'의 성공과 그 후로 이어지는 효과들은 케이블만이 가진 강점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어찌 보면 틈새전략처럼 보이는 이 케이블의 지상파 침공은 언제든 지상파의 빈 자리를 노린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다. 지상파가 금요일 밤이라는 시간대에 전전긍긍할 때, 케이블이 그 빈자리를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은 그 틈새를 바라봤기 때문이다. 금요일은 다른 요일과 달리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시청자들에 의해 프로그램의 성패가 갈리는 시간대다. 관성적인 시청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보다 확실한 콘텐츠 경쟁력이 있다면 오히려 기회의 시간대가 되는 셈이다. 이것은 지상파에도 똑같은 기회로 작용한다. 'MBC스페셜'이 다큐로서는 예외적으로 꾸준히 10%대의 시청률을 차지하고 있고, '아마존의 눈물'은 20%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것에도 금요일이라는 시간대가 분명 작용했을 것이다. '슈퍼스타K2'에 고무되어 현재 MBC가 편성한 '위대한 탄생'이 금요일에 들어있는 것은 다분히 '슈퍼스타K2'가 각인시켜 놓은 금요일 오디션 편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이 케이블에 의해 재인식된 금요일은 곧 시작될 '슈퍼스타K3', '위대한 탄생' 시즌2, '기적의 오디션', '도전자'가 모두 경쟁을 벌이는 최대 편성 격전지가 되었다.

하지만 '슈퍼스타K2'의 성공은 단순히 틈새를 노리는 편성전략에만 있지는 않다. 케이블로서 가질 수 있었던 이점들을 '슈퍼스타K'는 십분 활용했다. 이른바 케이블의 역발상이다. 사실 오디션 프로그램은 리얼리티TV가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은 21세기에 들어서 이미 검증받은 형식이다. '빅브라더' 같은 일반인들의 일상을 훔쳐보는 리얼리티쇼가 한 줄기라면, 다른 줄기는 '아메리칸 아이돌'이나 '브리튼즈 갓 탤런트'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한 줄기였던 셈이다. '리얼리티쇼'는 국내로 들어오면서 한국적인 변용이 이뤄졌다. 즉 사생활 노출에 있어서 일반인들보다는 그래도 더 심정적인 허용이 가능한 연예인이 출연하는 캐릭터쇼로 둔갑한 것. 이것이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형식으로 지금껏 예능의 대세를 이뤄왔다.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은 한참 후에나 국내에 도입되었다. 그것도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에서.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케이블 채널들이 자체 제작을 시작하면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좀 더 끌기 위해 이 리얼리티TV 형식들을 더 과감하게 도입했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다. 이것은 케이블이라 허용되는 선정성도 한 몫 했다. 일반인들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외국식의 리얼리티쇼도 방영되었으니까. 이 경우에는 저예산을 들이면서도 좀 더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리얼리티TV의 또 한 줄기인 오디션 프로그램은 다르다. 오디션 과정에 전국에서 수백만 명의 지원자가 몰리고 그 공개경쟁을 치러야 하는 이 형식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하지만 이 비용에도 불구하고 케이블이 먼저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형식을 실험할 수 있었던 것은 간접광고가 케이블에서는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전면에 로고와 상표를 드러낸 노골적인 자동차 광고와 음료 광고가 반복적으로 보여지고, 그 유명한 '1분 후에 뵙겠습니다'라는 멘트가 나온 것도 다 이 간접광고 노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다.

'슈퍼스타K'의 성공은 바로 이 케이블만이 가진 이점으로 의표를 찌르는 틈새를 공략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지상파들은 그 성공을 바라보며 씁쓸했을 것이 틀림없다. 이미 검증된 형식이지만 만만찮은 제작비는 애초부터 이런 형식의 시도 자체를 거론하는 것조차 안타까운 일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난해 초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발효되면서 지상파에도 공식적으로 간접광고가 허용되었다. 물꼬가 터진 것이다. 올해 갑자기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오디션 프로그램 봇물은 바로 이런 배경이 깔려있다.

물론 '슈퍼스타K2'의 경이적인 성공을 단 한 가지 요소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거기에는 음악이 갖고 있는 본연의 힘과 그 음악을 세대적으로 배려하는 섬세한 연출, 마치 게임이나 스포츠를 보는 것처럼 구성해놓은 무대 그리고 차츰 성장해가는 인물들의 스토리, 또 외적으로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경쟁심리 등이 잘 어우러져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케이블이라는 채널의 특성을 역발상으로 삼았던 점이다. 지상파보다 훨씬 더 강한 자극의 허용과 그 속에서 케이블만이 자유롭게 해온 실험정신이 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지극히 상업적이면서도 그것이 용인되는 케이블에 대한 대중들의 감성이 녹아 있다. '슈퍼스타'는 그저 탄생한 게 아니다. 케이블이라는 매체에 의해 충분히 계산되어져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변방에서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역발상으로 중심을 차지해버린 '슈퍼스타K'의 특별한 성공은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그 시사하는 바도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