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나도 가수다', 이 사골 같은 개그가 사는 법 본문

옛글들/명랑TV

'나도 가수다', 이 사골 같은 개그가 사는 법

D.H.Jung 2011. 8. 23. 09:48
728x90


패러디의 힘을 가장 잘 활용한 '나도 가수다'

'나도 가수다'(사진출처:MBC)

패러디는 낮은 자의 전술이다. 즉 아무 것도 없는 자들은 권위 있는 어떤 것을 끌어와 패러디를 함으로써 시선을 집중시키고 동시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 '나도 가수다'는 이제 누구나 알고 있는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를 패러디한다. 신정수 PD가 '신들의 공연'이라고 추켜세웠던 그 무대. '는'이라는 조사를 '도'로 바꾼 것뿐이지만 그 뉘앙스가 주는 절절함은 이 사골 같은 개그의 밑바탕이 된다.

'나도 가수다'에서 이소라를 패러디한 이소다(김세아)는 무대에 올라 이렇게 말한다. "공연장에 와주신 관객여러분 그리고 청중평가단 여러분... 어디 계십니까?" 그렇다. 그들이 선 무대에는 관객도 청중평가단도 없다. 물론 이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도 많지 않다. '나도 가수다'가 코너로 들어있는 '웃고 또 웃고'는 금요일 자정 12시35분에 편성된 프로그램. 시청률은 2%대로 거의 케이블 수준이다. 그러니 이소다의 이 한 마디는 늦은 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보게 된 시청자를 빵 터지게 만든다. 그것이 스스로의 처지를 가장 잘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가수다'는 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자신들의 개그 무대를 패러디 대상으로 올린다. 즉 패러디라면 희화화되는 대상이 있기 마련인데, 물론 이 코너는 '나는 가수다'를 희화화하는 것이 아니다. 늦은 밤 아무도 보지 않아 관심조차 없는 자신들을 희화화한다. '나는 가수다'라는 놀라운 가창력의 가수들을 패러디해야 먹고 살 수 있는 그 어려움을 드러낸다. 임재범을 패러디하는 정재범(정성호)은 그가 단 세 곡을 부르고 자진 하차했다는 데서 소재고갈로 인한 위기를 토로한다. 또 박정현을 패러디하는 방정현(정명옥)은 이 장수가수(?)로 인해 소재고갈의 문제는 '해피'하지만, 그 절정의 가창력을 패러디하는 데 전혀 비슷하지 않다는 난점을 토로한다. 이 자신의 처지를 희화화하는 모습은 '나는 가수다'의 장면들과 병치되면서 웃음을 유발한다.

이 패러디 개그가 가진 강점은 그 간결한 형식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코너는 패러디 대상이 '나는 가수다'이기 때문에 노래를 바탕으로 깔고 그 중간 중간에 인터뷰를 삽입한다. 절묘하게 패러디되는 노래를 듣는 즐거움과 함께 인터뷰 속에 담긴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이 형식은 그 간결함 덕분에 인터넷 동영상으로서의 강점을 확보한다. 자정 시간대로 밀려 아무도 보지 않는 이 코너가 인터넷에 확산되는 전략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데는 이 앞뒤 없이 뚝 잘라놔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단출한 형식 덕분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패러디가 멋지다고 해도 거기 깔린 패러디의 메시지가 참신하지 않았다면 이토록 공감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가창력 빼고는 놀랄 만큼 비슷한 이들의 패러디는 그들의 위태로운 처지와 맞물리면서 웃음과 함께 묘한 페이소스를 남긴다. 정재범이 말끝마다 "웃겨야죠"하고 말하면서 아무도 보지 않는 그 생존의 무대 위에서 누군가를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드러내는 건 우습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한 구석을 찡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가수다'를 패러디해서 '나도 가수다'라고 얘기하지만, 이 코너의 진짜 제목은 '나는 개그맨이다'라고 여겨지게 된다. 거기서 개그맨들이 절절함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나도 가수다'는 짧고 단출한 형식이지만 '나는 가수다'를 우리고 우려 또다시 재창조해낸 사골 같은 개그다. 거기에는 최정상 실력파 가수들과의 비교점에서 희화화되는 개그맨들의 진한 웃음이 있고, 여기에 아무도 없는 무대 위에서 다음 무대를 걱정하는 그들의 절실함이 뒤섞여 아주 깊은 맛은 낸다. 그러니 '나도 가수다'를 그저 잘 나가는 프로그램에 기대 살아가는 프로그램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바로 그 상황 자체까지를 진솔하게 드러내는 이 개그는 어쩌면 그 패러디가 가진 힘을 가장 잘 활용하고 적용한 사례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