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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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민-이정길-김창완, ‘하얀거탑’의 야누스들

D.H.Jung 2007. 1. 15.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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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 대결을 버리자 살아난 인물들

‘하얀거탑’이 여타의 드라마와 다른 점. 전형적 캐릭터가 거의 없고, 대신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서로 이합집산을 거듭한. 어쩌면 ‘정치드라마’가 갖는 대결구도로서 당연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단 2주), 이렇게 변화무쌍한 캐릭터를 본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 중심에는 장준혁 역의 김명민, 외과과장 이주완 역의 이정길, 그리고 부원장 우용길 역의 김창완이 있다.

선악 대결이 아닌 권력 다툼
먼저 전제해야할 것. 이 드라마는 캐릭터의 선악 대결이 그다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다. 만일 선악으로 나누어지는 캐릭터들이 등장했다면 그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뻔한 진행에 지금 같은 긴장감은 떨어졌을 터. 대신 드라마는 권력을 두고 치열하게 벌어지는 정치적인 대결, 갈등을 핵심에 두고 선악의 차원을 뛰어넘는다. 이들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두고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지만 이건 전쟁이기에 무조건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한다.

그리고 결국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이전투구의 권력다툼 속으로 뛰어든다. 이렇게 되자 도대체 누가 이 게임에서 승리할 것인지 종을 잡을 수 없게 된다. 주인공인 장준혁조차 살아남기 위해 음모를 꾸밀 정도의 캐릭터이기에 우리는 이 권력다툼 속에서 장준혁이 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대결구도, 그것이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긴장감을 주는 이 드라마의 핵심요소이다.

장준혁 vs 이주완-우용길 → 장준혁-우용길 vs 이주완
드라마가 막 시작했을 때, 우리는 외과과장 이주완과 그가 키운 장준혁의 관계에서 어떤 미세한 틈을 발견한다. 그것은 청출어람 잘 나가는 장준혁에 대해, 이제는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버린 이주완의 질시와 굴욕감에서부터 비롯된다. 이 미세한 틈은 조금씩 벌어지면서 갈등을 만들고 여기에 부원장 우용길이 등장하면서 드라마는 복잡한 구도변화를 겪게된다. 핵심적인 인물, 부원장 우용길이 어느 쪽에 붙느냐가 이 첫 번째 대결구도의 관건이 된 것이다.

장준혁에 대한 감정으로 이주완과 손을 잡았던 우용길은 장인인 민충식(정한용 분)이 끌어들인 의사회 회장 유필상(이희도 분)에 의해 마음을 돌린다. 그만큼 우용길-이주완 콤비의 연결고리가 아주 약했다는 것. 단지 감정의 공감 정도 차원에서 이루어졌던 공조체계는 실질적인 이득이 끼어 들자 쉽게 무너진다. 장준혁-우용길 라인이 형성되면서 이주완은 두 번째 싸움에서 지게된다. 그러나 이런 구도가 얼마나 진행될 지는 미지수. 이주완이 데려온 노민국(차인표 분)과 투표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오경환(변희봉 분) 같은 인물들이 차차 이 대결구도에 어떻게 라인을 형성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입체적인 캐릭터가 주는 매력
이처럼 짧은 시간 동안 욕망을 향해 숨가쁘게 변해 가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시청자들을 즐겁게 한다. 그것은 그동안 보았던 착한 캐릭터는 계속 착하고, 악한 캐릭터는 계속 악한 전형적 구도의 틀을 깨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입체적인 캐릭터가 주는 힘은 바로 그 리얼함에 있다. 실제의 인물들은 우리가 흔히 드라마에서 접하듯 한 가지 단면만을 갖고 있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실로 사악하다고 할 정도로 악한 면모를 보이다가도 또 어떤 면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천사 같은 면모를 동시에 보여준다. 때론 비굴해지고 때론 한없이 용감해진다. 기존 트렌디 드라마들이 갖고 있는 말 그대로 트렌디한 캐릭터는 이제 전혀 리얼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얀거탑’은 말해주는 것 같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이 입체적인 캐릭터를 세 배우, 김명민, 이정길, 김창완의 발군의 연기력이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 먼저 김명민과 이정길은 캐스팅 자체부터 적절하게 느껴지는데 그것은 이 두 배우가 갖고 있는 연기의 선이 이 야누스적인 캐릭터에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나라를 위하는 충심의 이순신에 개인적인 야망 등을 잘 버무린 김명민은 이미지로도 연기력으로도 이미 검증된 바가 있다. 물론 따뜻한 아버지 역할(프라하의 연인에서 대통령 역할 같은)에서부터 카리스마 넘치는 을지문덕(연개소문에서) 역할까지 무엇이든 자기 것으로 소화해내는 이정길이라는 배우는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김창완이라는 조커는 드라마의 맛을 몇 배 높여놓았다. 김창완이 지금껏 맡아왔던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 역할에서 180도 변신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이 가진 느물느물한 연기가 역할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드라마는 선악 대결구도 같은 단순한 구조로는 시청자들에게 리얼함을 선사하기가 어려워졌다. 작년 내내 트렌디한 멜로드라마가 각광받지 못한 이유는 멜로드라마 자체의 매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그 인물과 구도의 리얼함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악역 없이도 드라마적 긴장감을 결코 놓치지 않았던 ‘연애시대’가 리얼함을 주었던 이유 역시 그 입체적인 인물들 때문이었다. ‘하얀거탑’의 매력적인 야누스 캐릭터들을 기화로 앞으로는 드라마 속 캐릭터의 변화가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