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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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 그의 멍 자국에 눈물이 납니다

D.H.Jung 2011. 9. 1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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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 그 이상 세상의 아픔을 담아낸 '통증'

'통증'

세상이 앓는 통증을 당신은 느끼고 있는가. '통증'은 멜로드라마 구조를 갖고 있지만 그저 멜로로만은 볼 수 없는 영화다. 이 영화 속 주인공이 갖고 있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병'이 사회적으로 함의하는 바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이 남자를 세상은 두드려 패고, 그 맞는 대가로 이 남자는 돈을 받아 생계를 이어간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설정인가. 통증을 느끼지 못해 맞으면서도, 심지어 죽어가면서도 "나 하나도 안 안파"라고 말하는 남순(권상우)의 몸에 난 멍 자국을 보면서 눈물 흘리게 만드는 영화, '통증'은 지독하게도 사회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자, 동현(정려원)은 바로 이 남순이라는 아픈 세상을 겪고 있는 인물을 바라본다. 정작 자신은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녀의 눈에 비친 남순은 너무나 아프다. 이것은 그녀의 캐릭터가 작은 상처조차 치명적인 결과에 이를 수 있는 혈우병 환자라는 사실에서 더욱 그렇다. 그녀는 통증에 그만큼 민감하다. 타인의 상처마저 내 상처로 고스란히 느낄 정도로.

이 통증을 두고 상반된 캐릭터의 만남은 절절한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동현이 그렇게 한없이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남순은 처음으로 통증을 느낀다. 자신의 통증은 못 느끼던 그가, 그녀가 우는 모습에는 가슴 한 구석이 무너져 내린다. 이 화학작용을 통해 인물을 바라보는 시점이 생겨난다. 우리는 남순의 시점으로 동현을 바라보고, 동현의 시점으로 남순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그 두 사람이 겪고 있는 깊은 상처와 그 상처를 서로 핥아주는 간절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남순의 정돈되지 않은 집은 상처의 원형이다. 그 속에서 상처를 지워내지 않고 과거에 묶여 살아가는 남순의 집에 들어와 그 집을 치우고 닦고 하는 건 '통증'이 전하는 사랑의 해석이다. 누군가의 공간 속에 들어가 그것이 아픈 것이라 해도 보듬어주고 안아주는 것. 남순과 동현의 입맞춤은 그래서 이 공간을 상처만 남은 과거의 공간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가족을 꿈꾸게 하는 미래의 공간으로 바꾼다. 물론 냉혹한 바깥 세계는 이들을 가만 놔두지 않지만.

흥미로운 건 이 멜로 구도 안에서 영화가 자꾸만 그 구도 바깥을 생각하고 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즉 통증이 있다면 그 통증을 만들어낸 주체가 있게 마련이다. 남순을 피 흘리게 만드는 것은 저 자본주의의 탐욕스런 욕망이다. 재개발 현장을 두고 벌어지는 일련의 폭력과 사건들은 우리가 현실에서 뉴스 속의 원경으로 봐왔던 실제 사건들을 근경으로 당겨놓는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의 통증으로 여겨졌지만, 가까이 다가가 남순이라는 캐릭터를 그 안에 두고 바라보니 그 통증이 내 것처럼 절절해진다.

우리는 흔히 '불감증에 걸린 사회'를 말한다. 아픔과 상처에 대한 깊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기에 쉽게 그 상처를 바라보지 못하고 남의 것처럼 고개 돌려버리는 사회를 얘기한다. '통증'은 바로 그런 우리들 앞에 그 아픔을 던져놓고 직시하라고 하는 영화다. 그래서 남순처럼 아픔을 느끼지 못했던 우리가 누군가의 눈물을 보며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게 되는 그런 영화이고, 맞으며 희생하는 대가로 이제 맞는 것조차 아프지 않다고 말하며 살아가는 세상의 약자들을 동현의 시선으로 끌어안게 되는 영화다. 돌아누운 남순의 허리에 남겨진 멍자국에 눈물이 난 것은 그의 몸으로 환기되는 세상의 잔혹함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