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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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림은 어떻게 '나가수'에 적응했나

D.H.Jung 2011. 9. 2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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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림의 '가시나무', 그들의 자기 존재 증명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이렇게 시작하는 시인과 촌장 '가시나무'의 첫 구절이 자우림의 목소리로 불려지는 순간 이 노래는 그네들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자우림. 그 속엔 정말 많은 자우림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이 노래를 통해 보여주었다. 김윤아가 밝힌 대로 자우림은 '나는 가수다'에서 "그동안 낮을 많이 가렸던 게" 사실이다. 즉 '자우림 답다'는 수식의 감옥에 갇혀있었던 것. 하지만 자우림의 기타리스트 이선규의 말대로 "한 곡 안에서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것 역시 자우림 다운" 것이었다. 자우림의 '가시나무'는 그런 곡이다.

가사만으로도 그 깊은 여운을 느끼게 만드는 '가시나무'라는 곡을 자우림은 좀 더 입체적이고 다이내믹한 풍경으로 그려냈다. 시작은 원곡이 가진 그 '경건함과 자기통찰적'인 읊조림이었다. '당신의 쉴 곳 없는' 심지어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는' 운명을 타고난 '가시나무'의 존재감이 잔잔함과 슬픔, 날카로움으로 전해지는 이 첫 도입부분에서 자우림은 그간 보여주지 않았던 감정을 드러냈다. 쿨한 창법이 대명사처럼 여겨진 자우림에게 마치 흐느끼는 듯한 김윤아의 목소리는 자못 도전적으로까지 여겨졌다. 그녀가 밝혔듯이 자우림은 "마음을 연 것"이다.

하지만 조용히 존재의 슬픔을 읊조리던 첫 구절이 지나고 나면 자우림의 진짜 색깔이 드러나는 강력한 록 사운드의 또 다른 자우림이 기다리고 있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이 구절에 이르면 이제 자우림은 거센 바람 앞에 선 가시나무처럼 '메마른 가지를 서로 부대끼며 울어댄다.' 바람이 휘몰아치는 듯한 이 절절함은 초반의 경건함과 대비되면서 가시 안으로 삼키고 삼켰던 눈물을 밖으로 마구 쏟아낸다. 이 때부터 김윤아가 메고 치는 기타는 그 퍼포먼스 자체로도 강렬한 아픔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한다.

이 때부터 김윤아의 창법은 때론 내레이션하듯 속삭이고 때론 폭풍처럼 몰아치다가 때론 가성과 진성을 오가며 미친 듯이 감정이 섞여 흐느끼는 식으로 계속 변화한다. '같은 가사를 가지고 아주 싸늘하게도 부르고 절규하면서도 부르고 다양한 감정표현이 가능한' 자우림만의 색채가 극에 달하는 순간이다. "원곡이 기억이 안날 정도로 노래에 휘둘려 다녔다고 생각해요. 제가 음악을 끌고 가는 게 아니고 음악이 저를 데리고 갈 때가 있거든요." 김윤아의 이 말은 허언이 아니다. 고요하게 서 있다가 휘몰아치는 감정의 폭풍을 견뎌내는 가시나무처럼, 그녀는 곡에 완전히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나 많아'라는 가사의 반복은 자우림의 자기 존재를 가장 잘 표현하는 가사가 되었다.

수미쌍관을 이루듯 첫 소절의 경건함으로 노래가 마지막을 정리할 때, 그 노래를 들은 관객의 마음 한 구석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게다. 그 경건함 속에 이제는 깊은 슬픔과 절절한 아픔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자우림의 그 변화무쌍한 노래를 통해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우림 다운' 무대가 있을까. '가시나무'라는 곡으로 '자주색 가시나무숲을 만든' 자우림은 이 무대를 통해 그 스스로 존재 증명을 해낸 셈이다. 노래가 끝난 후 차분하게 객석을 바라보며 지어보이는 김윤아의 미소는 그 많은 자우림을 스스로 인정하고 보여준 자의 편안함이 느껴진다. 마치 폭풍우를 겪고 난 '가시나무'처럼.
(자우림의 '가시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