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정글', 김병만을 압도한 류담의 반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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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김병만을 압도한 류담의 반전

D.H.Jung 2011. 11. 28.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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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생존만큼 중요한 공존의 가치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정글의 법칙' 악어섬이 보여준 건 '생존'이었다. 그 극한의 낯선 상황에서 가장 빛난 건 단연 김병만과 리키 김이다. 이 두 사람은 끊임없이 집을 짓고 먹이를 구하면서 정글에서의 생존의 가치를 보여주었다. 반면 그 생존 앞에 힘겨운 얼굴을 보인 두 사람이 류담과 광희다. 하지만 악어섬을 탈출(?)해 힘바족 마을로 온 그들은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낯선 힘바족 마을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가까워지는 모습을 통해 류담과 광희의 새로운 가치가 드러났다. 바로 '공존'의 가치다.

낯가림이 심한 김병만보다 류담이 돋보인 건 열린 마음이다. 아무에게나 다가가 말을 걸고(물론 힘바족 말도 잘 모르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면 웃어주고, 때론 과장된 몸짓으로 웃음을 주자, 힘바족들도 조금씩 경계를 누그러뜨리고 그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힘바족 여인들에게 김병만은 그저 '키 작은 친구'였지만, 류담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었고 '사위삼고 싶은 사람'이었다. 이유는 하나다.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생존만큼 중요한 공존의 가치가 드러난다. 제 아무리 살아남는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함께 살아갈 수 없다면 그건 사는 게 아니다. 결국은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이 정당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류담과 광희가 열어놓은 공존의 물꼬에 김병만도 차츰 적응하기 시작했고, 마을 한 가운데 그늘집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시냇물가에 작은 간이 목욕탕을 만들어 아이들이 들어가게 하고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 김병만에게도 공존이 가진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아이들은 왜 이런 조그만 목욕탕이 필요한 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아이들에게 사과를 나눠주고 함께 먹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류담과 광희는 마치 힘바족의 가족이 된 것처럼 그들과 동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편 차츰 적응을 하게된 김병만 역시 나무를 타고 오르는 힘바족 청년들을 그대로 따라함으로써 한층 그들에게 다가갔다. 도무지 못 오를 것이라 생각한 그 나무 타기를 선보인 김병만에게 힘바족 청년은 "용기가 있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이 과정에서 공존을 위한 여러 가지 법칙들이 선보여졌다는 것이다. 힘바족이 쓰는 언어를 하나하나 적어서 간단한 것이나마 말을 건네는 행위, 함께 먹을 것을 건네고 먹는 행위, 마을 사람들에게 선의를 보여줘 마음을 얻으려는 행위, 또 그들이 하는 것을 똑같이 따라하는 행위 등등. 하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 건 류담의 반전이 보여준 '웃음'의 힘이었다. 한번 웃겨주는 것으로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

사실 이것은 '웃음의 기원'을 추론할 때도 등장하는 얘기다. 뭔가 낯선 존재에 대한 극한 두려움이 '사실은 난 너의 적이 아니야'라는 긴장의 이완을 보여주면서 생겨난 게 치아를 드러내 보이는 행위, 즉 웃음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웃음이 가진 힘은 사람들을 '공존'하게 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어쩌면 생존보다 더 강한 욕구가 공존의 욕구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저 로빈슨 크루소의 생존을 넘어선 후의 극도로 외로운 삶을 떠올려보거나,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바닷물에 떠내려가는 윌슨씨(사실은 배구공인)를 보며 오열하던 톰 행크스를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글의 법칙'이 전편에서 생존을 보여주고, 이어 공존의 가치를 드러내준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김병만보다 더 빛난 류담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공존'의 가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