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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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극한 생존상황에서 가족이란...

D.H.Jung 2011. 12. 19.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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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우리가 생존에 열광하는 이유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디스커버리 채널 '인간과 자연의 대결(man vs wild)'의 베어 그릴스는 이른바 생존 리얼리티쇼의 대명사 같은 인물이다. 그는 말 그대로 오지에 로프 하나만 달랑 들고 들어가 생존하면서 제한된 시간 안에 오지를 탈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보기만 해도 징그러운 벌레 정도는 생으로 꿀꺽 하기 일쑤고(단백질 보충을 위해서), 뱀을 잡으면 '최고의 만찬'이라고 한다. 살을 에는 듯한 로키 산맥 강물을 배낭 하나에 의지해 맨몸으로 래프팅(?)을 하고, 절벽 정도 오르내리는 건 일도 아니다.

'1박2일'의 강호동은 가끔 프로그램을 통해 우회적으로 베어 그릴스를 언급한 적이 있다. '야생 버라어이티쇼'를 부르짖던 그에게 베어 그릴스가 보여준 진짜 생 야생 리얼리티쇼는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한겨울에 바닷물이나 계곡물에 입수하는 것 정도는 사실 야생도 아니었던 거다. 실제로 그는 베어 그릴스 같은 진짜 생 야생 리얼리티쇼를 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만일 그가 다시 복귀하게 된다면 아마도 이런 프로그램이 가장 적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야생에서 생존하는 모습 그 자체가 그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어 그릴스 같은 생 야생 리얼리티쇼의 기회는 김병만에게 먼저 왔다. '정글의 법칙'은 물론 '인간과 자연의 대결'만큼 생 야생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그 어떤 리얼 프로그램보다 더 야생이다. 아프리카 악어섬에서 있었던 생존기에서 김병만과 그 일행들은 노숙을 하고 벌레와 뱀을 잡아먹고 스스로 뗏목을 만들어 섬에서 탈출해야 했다.

물론 '인간과 자연의 대결'과 다른 점도 있다. 김병만이 가진 달인 캐릭터는 이 다큐 같은 리얼리티쇼에 예능을 부여한다. 그래서 그 야생 환경 속에서도 김병만은 놀랍게도 예능을 선사한다. 악어섬을 탈출해 보여준 힘바족과의 공존 과정은 '정글의 법칙'만의 차별성을 만들었다. 단지 자연과 대결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연과 동화되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좀 더 가족적인 야생 리얼리티쇼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 자연이 허락해야 가능한 일이다. '지옥의 정글' 혹은 '극한 생존의 땅'으로 불리는 파푸아의 정글은 그저 가만히 있는 것 자체가 도전이 되는 자연을 보여준다. 시도 때도 없이 갑자기 쏟아지는 스콜과 도처에서 물어뜯을 준비를 하고 있는 벌레들, 그리고 이름도 잘 알 수 없는 스치기만 해도 불에 덴 듯한 뜨거움을 안기는 풀들까지. 정글 체험 자체가 처음인 새 멤버 김광규는 벌레에 대한 알레르기 증세로 몸이 퉁퉁 붓는 고통을 호소하다 하루 만에 긴급 귀환되었다. 예고편에서 잠깐 보인 것이지만 물살에 휩쓸리고 벌레의 습격을 받는 그 극한의 생존 공간에서도 과연 이들은 악어섬에서 보여준 것처럼 예능을 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극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생존에 대중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누구나 갖고 있는 '생존본능' 때문이다. 평상 시 안전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서 굳이 발현되지 않는 이 '생존본능'을 그 극한 상황의 리얼리티쇼에서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두 가지 점에서 고무된다. 하나는 그런 본능이 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가 있는 이 안전한 문명을 다시 보게 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김병만족이 '정글의 법칙'의 생존공간에서도 더 가족을 떠올리고, 그들 자신들도 유사가족이 되어간다는 점이다. 이것은 생존이 그저 극한 야생에 대처하는 기술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그것은 무언가에 대한 희망, 그 자체다.

'인간과 자연의 대결'의 베어 그릴스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종종 말하길 생존본능은 누구나 갖고 있지만 발견하지 못할 뿐이라고 한다. 사실 산다는 게 늘 치열한 건 아니라 애써서 생존하겠다는 태도는 필요가 없죠. 하지만 우리 내부의 어떤 요소들은 자극과 격려가 있어야 발휘되는 것이 있죠. 지금 저의 경우에는 가족이 너무 보고 싶어요... 그리고 제 등에 하루 종일 매고 다니는 게 배낭이 아니라 제시(2살 난 아들)였으면 좋겠어요. 그런 생각만으로도 나는 원동력이 되요." 어쩌면 우리가 '생존'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 극한상황을 통해 우리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거기 늘 있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가족 덕분에 이 도시의 정글에서 우리가 생존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