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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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수' 직접 보니, TV가 낫더라

D.H.Jung 2011. 12. 1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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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사실 직업이 직업인지라 현장을 직접 봐달라는 요청이 많습니다만, 저는 현장 가는 걸 그리 즐기진 않습니다. 일단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게 너무 힘들고, 그렇게 기다리고서 보게 된 현장은 물론 더 생생한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오히려 실망감을 가질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다" 싶은 현장의 너무 세세한 상황들을 보고 나면 방송이 주던 그 판타지는 깨지기 마련이죠.

그래도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현장이 바로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입니다.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 겨우 초대권을 얻을 수 있었죠. 물론 저는 일이라 생각하고 봤습니다. 무엇보다 '막귀 논란'이 그렇게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그 '청중평가단'을 체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정말 그 자리에 앉으면 소위 '질러대는 창법'에 귀먹고 마는 걸까, 하는 호기심이 있었죠.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나가수'의 현장은 다른 현장과는 확연히 다르게 콘서트 같은 흐름을 보여줬다는 겁니다. 보통의 현장은 음악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흐름이 툭툭 끊기고 그래서 세트가 준비되고 가수가 나오고 하는 과정들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많죠. 이렇게 되면 무대를 즐기기 보다는 차라리 방청객으로 동원된 인상을 갖게 되곤 합니다. 그때부터 현장은 힘겨워지는 거죠.

하지만 '나가수'는 입장하기 전에서부터 청중들에 대한 세세한 배려가 엿보였습니다. 안전을 위해 질서유지를 하는 요원(?)들은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한 채, 청중들을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게 기다리게 할까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괜스레 우스개 농담도 하고 누군가 불만을 얘기하면 바로 다가와 "죄송합니다"하고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경연이 시작되기 전까지 현장 FD가 끊임없이 지루하지 않게 청중들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모습도 확실히 '나가수'가 가진 특징이었습니다. 그만큼 청중에 대한 배려가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호의는 청중들이 좀더 경연에 마음을 열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연 시작 전 신정수 PD가 무대에 나와 한 마디 당부를 덧붙였습니다. 그 내용의 요지는 가수들이 무용수나 피쳐링 그리고 악기 등을 사용해 더 화려하게 무대를 꾸밀 수도 있는데, 그런 것들 보다는 가수의 노래와 편곡 같은 음악적인 것이 더 집중해서 평가를 해달라는 당부였습니다. 이른바 '막귀 논란'이 나오는 것에 대해 청중들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금 되새기는 멘트였죠.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윤종신이 MC로 등장하고 재치있는 멘트로 청중들을 편안하게 해준 후, 바로 경연이 시작됐죠. 우리가 방송에 보았던 그대로, 가수들이 나오고 노래하고 윤종신이 소개하는 것이 반복됐습니다. 그것은 그다지 방송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라이브가 가진 음향이 피부에 직접 닿는 그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이었죠. 또 윤종신이 방송에 나온 내용보다 훨씬 많은 멘트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노래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알려줌으로써 청중들의 선택에 도움을 주는 것이었죠. 이런 부분을 보니 '나가수'에 윤종신이 왜 꼭 필요한 존재인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나가수'는 아마 현장 녹화로서는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끝나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거의 기다리는 시간 없이 경연이 계속되었고, NG라는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죠. 어떤 분들은 박완규가 부르는 그 절절한 '사랑했어요'에 깊이 감동하기도 했고, 김경호의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에 어깨를 들썩이기도 했으며, '정신차려'를 부른 자우림의 그 귀엽고 발랄한 무대에 절로 흥겨워하기도 했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정도 무대라면 충분히 기다려서 볼만하다고 여겼지요.

하지만 방송이 나간 걸 보니까, 또 새로워졌습니다. 즉 현장에서는 분명 그 분위기가 주는 감흥이 강했지만, 방송이 주는 재미를 따라가기는 어렵더군요. 일련의 편집영상들이 중간 중간 끼워넣어지고, 노래를 하는 동안에도 관객들이 몰입하는 장면이 들어가면서 훨씬 더 경연이 흥미로워졌다는 것입니다. 결국 '나가수'의 힘은 물론 가수들이 뿜어내는 그 절대 가창력이 기본이지만 그것을 팽팽하게 만들어내는 방송 편집의 힘이라는 걸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방송으로 보는 것이 훨씬 낫게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현장에서의 감흥이 나빴다는 건 아닙니다. 제가 본 그 어떤 현장보다 더 진지하고 대접받은 듯한(?) 그 느낌은 정말 한번쯤 체험해볼만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 참 마지막으로 그 '막귀 논란'에 대한 제 느낌은 오해라는 생각입니다. 청중들은 정말 가수만큼 긴장해서 노래를 듣더군요. 어떤 면에서는 즐기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죠. 그런데서 '막귀'라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