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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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해품달'에 가슴 설레게 하나

D.H.Jung 2012. 1. 1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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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품달', 하이틴 로맨스 사극의 탄생

'해를 품은 달'(사진출처:MBC)

"잊어 달라 하였느냐? 잊어주길 바랐느냐? 미안하구나. 잊으려 하였으나 너를 잊지 못하였다." 왕세자 훤(여진구)이 연우(김유정)에게 애틋한 마음을 고백한다. 10대의 어린 나이지만 어딘지 이 고백에는 절절한 훤의 진심이 느껴진다. 그 고백을 듣는 연우의 마음 또한 그 진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어딘가 어둠 속에서 그들을 아프게 바라보는 이가 있다. 바로 훤의 이복형이자 존재자체가 위협이 되는 라이벌 양명(이민호)이다. 그는 일찍이 "모두가 세자의 사람이 되어도 좋다"고 했다. 연우만 그의 사람이 된다면 말이다. 한편 연회에서 홀로 멈춰선 윤보경(김소현) 역시 끈 떨어진 연처럼 어딘가 사라져버린 훤을 찾는다.

두 개의 해와 두 개의 달. 이것은 이 사극의 제목이기도 한 '해를 품은 달'이 가진 스토리의 기본전제이다. 두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인이 갖게 되는 운명적인 사랑. 현대극의 멜로였다면 그저 그런 사각관계에 지나지 않았을 지 모르지만, 사극 속으로 들어오자 이 네 명의 운명은 진중한 무게를 갖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은 왕과 왕후가 될 사람들의 멜로가 아닌가. 하늘에 두 개의 해와 두 개의 달이 공존할 수 없기에 멜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는 두 사람뿐이다. 멜로의 끝이 생사를 가름하는 이 구조는 드라마에 극성을 높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것이 엇갈린 운명이라면? 대왕대비 윤씨(김영애)에 의해 왕후의 상을 점쳐달라는 명을 받은 성수청 국무 장씨(전미선)는 연우와 윤보경을 보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왕후의 상을 지녔으나 교태전의 자리를 가질 수 없고, 왕후의 상은 아니나 교태전의 자리를 가질 운명.' 이 말은 이 멜로가 엇갈린 운명의 비극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연우가 아닌 윤보경이 왕후가 되는 이 예정된 운명이 만들어낼 파국은 어떤 결말을 만들어낼 것인가. '달을 품은 해'가 아니라 '해를 품은 달'이란 제목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이루어지지 못한 연우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 깊이 품고 살아가는 훤의 미래가 그려지기 때문이다.

'성균관 스캔들'이 역사 바깥으로 과감히 뛰쳐나와 멜로 사극의 가능성을 열어 보여준 것처럼 '해를 품은 달'은 그 연장선에 서 있다. 비극적인 운명을 가진 여자 주인공 연우와 그 주변을 감싸는 훤, 양명, 허염(송재희), 운(송재림)은 저 F4의 사극 버전으로 읽혔던 '성균관 스캔들'의 잘금 4인방을 떠올리게 한다. 꽃선비 허염이 지나갈 때마다 과장되게 쓰러지는 궁녀들이나 그에게 빠져 위신이고 뭐고 상관없이 달겨드는 민화공주(진지희), 또 연우의 뇌구조를 그려놓고 7할이 오빠 허염이고 2할이 양명이며 1할이 운이지만 훤은 점에 지나지 않다고 설명하는 내관 같은 현대적인 설정은 사극이지만 하이틴 로맨스가 갖는 발랄함을 잊지 않는다.

어른들의 정치 세계가 갖는 어둡고도 무거운 기운이 이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지만 이들은 아이들 특유의 천진함과 순수함으로 이 어두운 세계와 대적하려 한다. 정치적인 가식과 계급적 주종관계를 떠난 순수한 진심의 대결. 이것은 감히 궁 안에서 벌이는 로맨스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비록 적이라도 입속의 혀처럼 지내거라. 그것이 정치다."라고 말하는 이판 윤대형(김응수)의 조언에 어린 나이에도 가식어린 정치의 행보를 보이는 윤보경과, 진심으로 마음을 전하려는 연우의 대립구도는 그래서 멜로의 차원을 넘어서게 된다.

사극이라는 틀에 박힌 구조를 떠올린다면 '해를 품은 달'의 파격에 놀랄 수밖에 없다. 일단 역사라는 틀거리 자체를 과감하게 무시해버리고 그저 과거라는 그 완벽한 빈 도화지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10대에서 시작해 20대를 넘기지 않는 청춘들의 로맨스가 아닌가. 이것이 가능한 것은 가슴 설레는 로맨스가 저항하는 것이 저 틀에 박힌 정치판의 이전투구이기 때문이다. 수평적 동무관계인 아이들은 어떻게 계급적 서열과 정치적으로 다른 노선에 서 있는 어른들에 의해 그 운명이 유린될 것인가. 그 아픔을 바라보는 만큼 그만큼 순수하게 여겨지는 이들의 사랑은 우리네 가슴을 울리게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