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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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지 않곤 못 본다, '보이스 코리아'니까

D.H.Jung 2012. 2. 2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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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가창력, 돌아버리겠네 정말!

'보이스 코리아'(사진출처:엠넷)

노래가 고조되면 될수록 코치들의 손은 점점 버튼으로 다가간다. 마치 자석에라도 이끌리듯 버튼 근처를 서성이는 손은 당장이라도 버튼을 누를 것처럼 안절부절 못한다. 노래는 점점 더 고조되고 그럴수록 코치들의 얼굴은 경탄과 갈등과 곤혹스러움 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결국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버튼을 누르면 의자가 빙그르르 돌아가고 갈등했던 코치의 얼굴에도 화색이 돈다. 그걸 본 참가자 역시 한층 신이 나 감동적인 무대를 이어간다.

이것은 '보이스 코리아'라는 블라인드 오디션을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 구성을 잘 보면 알겠지만 이건 일종의 대결 구도다. 참가자가 노래만으로 코치의 마음을 돌려야 하는 대결. 코치들은 넘어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마치 그리스 신화 사이렌의 유혹적인 목소리를 들은 선원들처럼 그들은 결국 이끌리듯 버튼을 누르게 된다. 누가 봐도 톱가수들이자 아티스트인 권위자들이 보여주는 이 일종의 굴복(?)은 대중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권위자들을 '돌아버리게 만드는(?)' 미친 가창력이라니. 도대체 저들은 누구인가.

첫 회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배근석은 이 프로그램의 파괴력을 가장 잘 보여준 참가자다. 얼굴 노출이 되지 않은 채 이어지는 인터뷰에서부터 그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여겨지더니, 무대에 오르자 거의 여성에 가까운 미성과 매력적인 바이브레이션으로 코치들을 한 명 한 명 돌아 버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일련의 과정이 반전에 반전이었다. 서인영의 '신데렐라'를 선곡했기에 그 중성적인 목소리의 배근석은 코치들에게는 여성으로 인식되었던 것. 코치들은 먼저 그 중성적인 보이스의 매력에 놀랐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남성이라는 것에 또 놀랐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을 코치들은 보지 못했지만 관객과 시청자들은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시청자들이 코치들보다 우위에 선 입장이다. 즉 '보이스 코리아'라는 오디션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최고의 권위에 있기 마련인 '심사위원'을 가장 낮은 위치에 놓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관객과 시청자는 참가자를 바라보면서 심정적으로 하나의 팀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니 그 참가자의 놀라운 가창력에 코치가 안절부절하고 결국 버튼을 누르는 굴복의 장면에 시청자들 또한 승리감(?)을 맛보게 된다.

'보이스 코리아'가 가진 블라인드 오디션이란 매력적인 특징은 바로 이 '권력의 역전'에서 나오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건 실제로 지금껏 보지 못한 놀라운 가창력의 소유자들이 이 무대에 서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거장인 퀸시 존스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던 정승원이나,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멤버가 될 뻔했고 요아리라는 이름으로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던 강미진, 허각의 쌍둥이 형인 허공 같은 첫 무대에서부터 기대 이상의 기량을 보여주는 참가자들이 이 오디션에는 넘쳐난다. 특히 보컬 트레이너들이 대거 참여한 점도 오디션의 기대감을 한껏 높여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찌 보면 아마추어라고 하기에는 이미 너무 알려졌거나, 혹은 노래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참가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것도 결국은 블라인드 오디션이라는 이 프로그램만의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만으로 승부한다'는 점은 모든 선입견을 지우고 원점에서 시작하게 한다는 점에서 심지어 프로가 이 무대에 선다고 해도 그것을 용인하게 만든다. 어쩌면 기성 가수라면 그 리스크가 더 클 수 있는(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무대이기 때문이다.

코치를 '돌아버리게 만드는' 이 오디션은 그래서 이제는 식상해진 오디션에 돌아서려 하던 시청자들의 마음도 돌려 세우고 있다. 그래서 금요일 밤이면 우리는 그간 잘 돌리지 않았던 케이블로의 채널을 돌린다. 돌지 않고는 참가자들의 면면을 볼 수 없어 안달하는 코치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