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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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오디션, 어디까지 갈까

D.H.Jung 2012. 2. 2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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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 코리아'(사진출처:엠넷)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CJ E&M에서 음악사업을 맡고 있는 신형관 국장은 오디션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이유를 이 단 한 마디로 정리했다. 신 국장은 무수한 화제를 낳았던 '슈퍼스타K3'를 기획했고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보이스 코리아'를 기획한 장본인이다. 블라인드 오디션이라는 신개념 콘셉트를 장착한 '보이스 코리아'는 본래 '더 보이스'라는 해외 포맷을 가져와 한국화한 것으로 첫 회부터 대중들의 시선을 단단히 사로잡았다. 오디션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게 된 심사위원의 독설이나 거친 평가에 눈물을 흘리는 참가자의 풍경 따위는 '보이스 코리아'에서는 발견하기 힘들다. 이 오디션은 사실상 심사위원이란 존재가 없다. 그들은 심사위원이 아니라 '코치'로 불린다. 자신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참가자의 목소리가 있다면 버튼을 눌러 회전의자를 돌림으로써 코치들은 참가자를 선택한다. 즉 가창력이 아닌 화려한 퍼포먼스나 출연자의 외모에 휘둘리던 어쩔 수 없는 오디션의 한계를 '등 돌리고 있는 코치들'로 넘어선 것이다. 게다가 이 오디션은 기존 심사위원과 참가자들 사이에 놓여진 '권력관계(?)'를 뒤집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즉 한 참가자를 복수의 코치들이 선택하게 되면, 이제 선택권은 거꾸로 참가자에게 넘어가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코치들이 참가자에게 "자신이 무엇을 더 잘 해줄 수 있는가"를 어필하는 역 오디션이 생겨난다. 대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너무나 많이 쏟아져 나온 오디션 형식들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오디션은 없다고 여겼던 시청자들에게 이 전혀 다른 콘셉트의 오디션은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새롭지 않으면 보지 않는다'는 건 방송계에서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특히 오디션 형식의 예능만큼 그 변화 속도가 빠른 건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엠넷의 '슈퍼스타K2'가 지상파 시청률을 압도할 정도의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기 전, 오디션 형식에 대한 대중들의 인지도는 낮았다. '슈퍼스타K' 시즌1은 새로움은 있었으나 일반 대중들까지 열광하게 하는 파괴력은 없었다. 하지만 시즌2에 이르러 '슈퍼스타K'는 거의 정점을 찍었다. 환풍기 수리공으로서 우승자가 된 허각은 '허각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현실의 무거움에 허덕이던 대중들은 허각을 통해 일종의 신분상승의 판타지를 대리경험했다.

하지만 '슈퍼스타K2'의 대성공은 거꾸로 이 프로그램의 위기가 되기도 했다. 마침 풀려진 지상파 간접광고 허용으로 지상파에서도 대거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등장하면서 이른바 물 타기가 생겨난 것이다. '위대한 탄생', '댄싱 위드 더 스타', '기적의 오디션' 등등 숱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고, 여기에 변종 오디션들인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2' 같은 프로그램들이 가세하면서 작년 1년의 예능은 사실상 오디션 빼고는 찾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것은 또한 오디션 형식의 소비 속도를 더 빨리 진행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슈퍼스타K3'가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라고 불릴 정도의 편집증적인 디테일과 엄청난 속도의 오디션으로 재무장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이즈음 '슈퍼스타K3'의 거의 폭주하는 듯한 오디션을 통해 이제 대중들은 더 이상의 새로운 오디션 형식은 쉽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무얼 봐도 비슷비슷한 형식들이 반복되는 오디션 형식은 그래서 이제 하락기를 걷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작년 말에 시작한 'K팝스타'는 말 그대로 복병이었다. 거대 기획사 3사, 즉 SM, YG, JYP가 함께 한다는 사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방송이 시작되면서 일거에 사라져버렸다. 사실 방송 전, 거대 기획사와 오디션 프로그램은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다. 물론 거대 기획사에서는 늘 오디션을 보지만, 그 오디션과 오디션 프로그램은 정서적으로 확연히 다른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즉 오디션 프로그램은 기존 기획사 시스템 바깥에 놓여진 가수 양성 시스템으로 인식되었다. 나이와 성별 심지어 외모와도 상관없이 누구나 가창력만 있으면 참여할 수 있고 가수가 될 수 있다는 건, 기존 거대 기획사 시스템과는 차별화되는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만의 장점으로 생각됐다. 하지만 이것은 어찌 보면 일반 대중들의 판타지가 섞여있는 판단일 뿐이다. 현실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들이 결국은 다시 기획사를 찾아가는 그 구조에서 드러났다. 물론 오디션을 통해 인지도는 높지만 가수 활동을 위해서는 기획사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따라서 거대 기획사 3사가 참여하는 'K팝스타'는 이제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 되었다. 오디션이 가진 지나친 판타지가 사라지고, 대신 보다 현실적인 시선으로 이 오디션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기획사가 참여하는 오디션이라는 차별성은 프로그램 형식의 차별성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기획사가 발굴해내려는 아이돌 콘셉트는 참가자들의 연령을 현저히 낮춰놓았고, 참가자들을 심사하는 방식은 3대 기획사들의 개성과도 맞물렸다. 즉 심사위원으로 앉은 YG의 양현석과 JYP의 박진영은 같은 참가자의 노래를 듣고도 의견 대립이 잦았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개성과 잠재력을 존중하는 YG와 기본기를 중시하는 JYP의 기획사 특징이 드러나는 식이다. 게다가 각 기획사들이 선택한 참가자들이 그 기획사의 트레이닝을 받는 점도 이 오디션만의 특징이 되었고, 그들이 또 서로 경연을 벌일 때, 기획사들 간의 묘한 긴장감은 기존 오디션 형식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것들이었다. 결국 'K팝스타'는 이러한 새로운 차별점들이 있었기 때문에 숱한 오디션 형식들 속에서도 대중들의 열광을 끌어낼 수 있었다.

'나는 가수다'를 기획하고 만들어냈던 김영희 PD는 "대중들이 프로그램에 익숙해지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고, 따라서 처음 먹혔던 방식을 오래도록 지속한다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 되었다"고 말한다. 즉 일단 형식에 적응하기 시작하면 무언가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게 대중들이라는 것이다. 시즌1을 정리하고 시즌2가 시작되기 전 일정 기간의 준비기간을 갖고 있는 '나는 가수다'의 시즌2는 그래서 시즌1과는 사뭇 달라질 거라는 의견이 많다. 사실 어찌 보면 작년 '나는 가수다'가 만들어낸 대중문화계 전반에 끼친 충격파는 기존 오디션 형식의 뒤집은 데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일반인들이 참가하는 것을 톱 클래스 가수들이 참가하고, 거꾸로 청중평가단이 탈락자를 선정하는 방식이 그렇다. 하지만 이 혁명적인 진화는 1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면서 이제 새로운 진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 진화는 어디까지가 가능한 것일까. 아니 계속적인 진화가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엠넷의 신형관 국장은 "할 수 있는 것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에 의하면 "오디션 프로그램이란 결국 음악 프로그램이라는 큰 틀에 있는 한 가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이 당대의 방송 트렌드와 맞물려 계속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온 것처럼 앞으로도 이 진화는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현재의 오디션 형식은 다큐적인 리얼리티 형식과 무대 형식이 맞물린 형태지만 이것은 또 대중들의 기호와 맞물려 새로운 형식 실험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신 국장은 "이제 모든 유사 프로그램을 오디션이라는 하나의 틀로 묶기가 애매해진 상황"이라고 말한다. 그가 '보이스 코리아'를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라 '슈퍼 보컬 서바이벌'이라는 구체적인 명칭으로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확실히 지금 오디션 형식은 예능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 트렌드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건, 끊임없는 진화의 덕택이다. 그것이 없는 한, 오디션 형식은 쉽게 소비되고 식상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 오디션의 진화는 또 새로운 다른 형식과 맞물려 전혀 다른 이종 예능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높다. 모든 생태계가 그러하듯이.
(이 글은 시사저널에 게재된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