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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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네모난 세상

투표의 시대, 투표는 하셨는지요

D.H.Jung 2012. 4. 1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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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프로그램과 투표가 해줄 수 있는 일

 

바야흐로 '투표의 시대'. 우리는 이제 어디서든 투표를 만나고 투표를 행하고 그 투표가 미치는 영향을 목도하며 살고 있다. '슈퍼스타K2'는 투표로 우리들의 스타를 우리들의 손으로 뽑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그렇게 허각 같은 스펙은 없어도 실력이 뛰어난 인재를 당당히 무대 위에 설 수 있게 해주었다. '위대한 탄생'의 투표는 백청강 같은 조선족 동포를 그 맨 꼭대기에 오를 수 있게 해주었고, '나는 가수다'의 청중평가단들은 투표를 통해 임재범이나 박정현, 윤도현, 김범수 같은 레전드 중에서도 레전드를 재발견하게 해주었다.

 

 

'슈퍼스타K'(사진출처:엠넷)

우리는 이 투표 시스템을 통해 투표가 가진 공정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슈퍼스타K2'에서 우리가 허각에 투표한 이유는 세상이 얼마나 스펙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처절히 느꼈던 탓이었을 게다. 변변히 교육도 받지 못했고 생계를 위해 일을 하면서도 음악을 놓지 않았던 그 진심을 우리는 봤고, 그래서 적어도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라도 그가 오로지 실력만으로 공정하게 정상에 서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투표가 실제로 현실이 되는 것을 우리는 지금도 무대에 선 그를 통해 보고 있다.

 

또 겉으로는 투표 시스템을 세워두고 마치 공정하게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 결국은 연줄에 의해 제 자식 챙기듯 이뤄지는 영향력 있는 자들의 사심에도 우리는 문제제기를 해왔다. '위대한 탄생'에서 멘토들이 동시에 심사를 하면서 빚어진 '내 자식 챙기기'에 대해 비판여론이 들끓었던 것은 그것이 현실의 줄과 관계에 의해 구조화되는 권력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실력이 아니라 관계에 의해 조성되는 그 유착에 대한 민감한 반응은 그만큼 우리들이 현실에서 얼마나 자주 그런 상황에 좌절했던가를 말해주는 대목일 것이다.

 

의견을 묻지 않고 제멋대로 투표 시스템을 무시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대중들은 분개했다. '나는 가수다'에서 김건모가 투표에서 탈락이 결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도전을 하려던 것을 우리는 여론을 통해 거부했고, 그렇게 김건모와 재도전을 결정했던 PD 역시 동반 하차하게 했다. 물론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투표란 어쩌면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그 규정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래도 대중정서는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그만큼 투표를 대중들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서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 전성시대는 어쩌면 투표에 갈급한 대중들의 갈증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힘 있는 자들의 권력에 의해, 또 그들이 공고하게 만들어놓고 그 누구도 진입하기 어렵게 구축해놓은 네트워크에 의해, 또 어쩌면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선별된 정보의 힘에 의해 제멋대로 농단되고 있는 현실에서, 대중들은 어쩌면 이 자그마한 프로그램 안에서라도 자신들이 투표한 이가 그 꼭대기에 서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디션 프로그램의 전성시대는 거꾸로 대중들이 투표를 통해 누군가를 지지함으로써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좌절되곤 했던 현실의 욕망을 채우려는 욕구에서 비롯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한 투표가 물론 세상을 바꾼 것은 아니어도 적어도 자그마한 현실을 바꾼 것만은 분명하다. 그만큼 투표는 일상화되었고, 그 일상화된 투표는 현실이 되었다. 이제 이렇게 우리가 축적해온 경험들을 통해 이제 좀 더 큰 현실을 꿈꾸어야 하는 시간이다. 누군가에 의해 기획되고 주어진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기획하는 삶을 살 것인지는 우리 손에 달렸다. 큰 꿈에 좌절했기에 작은 꿈에 투표해왔던 우리들이라면, 이제 그 작은 꿈이 투표를 통해 실현되었듯이, 큰 꿈 또한 그러할 것이라는 걸 알 것이다. 우리는 바야흐로 투표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이 그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