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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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캠프', 이효리가 보여준 토크쇼의 본질

D.H.Jung 2012. 4. 2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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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캠프', 이 토크쇼 특별하다

 

너무 많은 토크쇼들이 쏟아지다 보니 이제 토크쇼는 어딘지 시시해졌다. 한때 세시봉 신드롬을 만들 정도로 잘 나갔던 '놀러와'가 이제 3% 시청률을 기록하는 게 토크쇼의 현실이다. 이렇게 된 것은 토크쇼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과거에는 연예인 홍보쇼도 그 자체로 신기했지만, 차츰 리얼리티를 요구하는 대중들에 의해 리얼 토크쇼가 대세를 이루기도 했다. 문제는 리얼리티를 끄집어내기 위해 과도한 양념들이 장치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힐링캠프'(사진출처:SBS)

'무릎팍도사'는 게스트의 진짜 이야기를 뽑아내기 위해 점방 분위기와 무엇보다 조금은 무식해보이면서도 반드시 속내를 캐내려고 혈안이 된 무릎팍도사라는 캐릭터가 필요했다. '라디오스타'는 김구라라는 직설어법의 아이콘과 때로는 게스트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저들끼리의 삼천포 토크가 필요했다. 또 '강심장'은 토크 배틀이라는 형식이 필요하기도 했다. 모든 이런 시도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장치들에 때로는 토크쇼가 갖는 본질, 즉 진솔한 대화가 흐려지기도 한다는 점이었다.

 

그런 점에서 '힐링캠프'는 특별하게 다가온다. 물론 초창기 '힐링캠프'는 '힐링'이라는 개념의 외적인 조건에 더 집착했다. 그래서 힐링을 떠올릴 수 있는 자연 공간이 게스트만큼 중요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차츰 진화하면서 '힐링캠프'는 토크쇼의 본질에 더 가깝게 다가갔다. 게스트와 진솔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라면 제작진이 꾸며놓은 장소가 아니라 게스트가 가장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직접 찾아가는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됐다. 게스트들은 이 유리한(?) 공간에서 마음껏 속내를 터놓을 수 있게 되었다.

 

차인표는 '힐링캠프'라는 토크쇼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저 담담하고 소신 있게 제 할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유쾌하고 즐거울 수 있으며 심지어 그것이 누군가를 '힐링'해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알게 해주었다. 김정운 교수도 가감 없는 직설어법으로 심지어 남성들이 갖는 성적 판타지까지 모든 걸 드러내주었다. 신은경은 그간 숨겨졌던 아픔과 고통을 남김없이 쏟아내고 그녀 스스로도 표현했듯이, 얼굴의 화장을 모두 지운 듯한 개운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효리는 이 진솔한 대화의 정점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드리워진 모든 빗장들을 풀어내고 말 그대로 무장 해제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힐링캠프'가 가진 특별함은 바로 어떻게 이토록 게스트들이 꾸밈없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나온다. 사귀면 결혼해야 한다며 헤어진 연예인을 비난하는 대중들에게 이효리가 "지들은 안 사귀었나? 지들은 첫사랑이랑 결혼했나?"하고 되묻는 장면은 이 토크쇼가 왜 이렇게 솔직한가의 단서를 제공한다. 이런 멘트는 이효리가 MC와의 대화에 완전 몰입해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상한 일이지만 '힐링캠프'에 나온 게스트들은 카메라를 향해 얘기하지 않고 심지어 대중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우리가 평상시 친구나 동료를 만나면 그러하듯이 그저 거기 앉아 있는 MC들과의 대화에 몰입한다는 얘기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건 거기 앉아있는 세 명의 MC들이다. 이경규는 전체를 이끌어가는 역할로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을 특유의 캐릭터를 활용해 질문하고, 김제동은 특별히 말을 많이 하지 않지만 게스트를 편안하게 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한혜진은 진정으로 몰입해서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진심으로 궁금한 점을 묻는다. 이들이 굳이 웃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 토크쇼의 중요한 포인트다. 이경규가 때로는 직업병처럼 웃기지 않는 농담을 던졌다가 '대국민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이 토크쇼가 얼마나 진지한가를 잘 보여준다.

 

토크쇼의 본질은 웃음일까, 아니면 대화일까. 그 어느 것이 정답일 수는 없다. 토크쇼도 토크쇼마다의 특징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것은 아무래도 대화가 될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제 아무리 웃긴 토크쇼라고 해도 허무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의 대화에서 늘 느끼던 것처럼 말이다. '힐링캠프'가 특별해질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웃음을 포기하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대화에 더 집중하고 그럼으로써 마치 이효리처럼 게스트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대화 그 자체에 몰입하게 만드는데서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이것은 아마도 현 침체기에 빠져버린 토크쇼들에 시사하는 바도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