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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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추적자>, <적도>의 빈자리 채울까

D.H.Jung 2012. 5. 3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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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에 이어 직진하는 사회 복수극, <추적자>

 

"힘 있는 자와 타협하지 않고 힘없는 사람들한테 고개를 숙이겠습니다. 위를 바라보지 않고 아래를 살피겠습니다. 가난이 자식들한테 대물림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서민들의 친구가 되겠습니다. 힘없는 사람들의 희망이 되겠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대한민국을 저 강동윤이 여러분과 함께 만들겠습니다." 대선 출마 선언을 하는 강동윤(김상중)의 이 연설 내용은 지겨울 정도로 전형적이다. 누구나 한번쯤 TV를 통해 봤을 법한 장면.

 

 

'추적자'(사진출처:SBS)

하지만 그 장면이 흘러나오는 TV 옆으로 억울하게 딸을 잃은 백홍석(손현주)이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걸어 나오는 모습은 이 지극히 전형적이어서 이제는 따분하기까지 한 연설 내용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강동윤은 연설 내용과는 정반대로 아내 서지수(김성령)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이용해 힘 있는 자인 장인 서회장(박근형)에게 압력을 가하고, 백홍석의 친구인 의사 윤창민(최준용)을 사주해 살아난 친구의 딸을 다시 죽게 만든다.

 

딸의 죽음 앞에서 백홍석의 아내 송미연(김도연)은 살아생전, 돈이 없어 딸에게 못해준 스마트폰이며 생일잔치, 학원 등록을 못해준 일들을 후회한다. 강력계 형사의 박봉에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억울한 딸의 죽음이다. 그것도 한 정치인의 야망에 의해 가차 없이 유린당한. 이런 세상에 희망이 있을 리 없다. 강동윤이 말하듯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는 애초부터 요령부득인 셈이다.

 

<추적자>는 첫 회에 이 모든 사회적인 분노의 지점을 찾아 그 도화선에 불을 붙인다. 장르적 관점에서 보면 이 드라마는 전형적인 추격전의 코스를 향해 달려갈 것이다. 이런 장르의 드라마는 굳이 새로움을 위해 장르 실험이나 뜻밖의 반전 포인트에 주저하지 않는 것이 관건이다. 오로지 대중들이 기대했던 코스를 제대로 달려 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 박진감과 속도감이 긴장감과 통쾌함으로 이어진다면 성공적인 작품이 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그 반복적일 수 있는 장르의 흐름에 대중들이 공분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금의 현실을 제대로 얹어 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백홍석이 당한 그 고통과 억울함이 대중들에게 공감되고, 백홍석의 딸을 죽음에 이르게 한 PK준(이용우)이나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강동윤, 그리고 그의 사주를 받은 친구 윤창민의 행각에 공분을 갖게 되는 건, 그것이 안타깝게도 작금의 현실을 그대로 재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적자>를 통해, 외면되는 정의와 진실에 대해 질깃질깃한 복수극의 끝장을 보여주었던 <적도의 남자>가 떠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게다. 이 두 드라마는 모두 돈과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현실을 복수극의 형태로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적도의 남자>는 좌우의 우회길을 살피지 않고 '직진하는 드라마'로서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이미 첫 회부터 거두절미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툭 던져놓고는 그 안에 백홍석을 달리게 하는 <추적자>는 그런 점에서 <적도의 남자>의 직구 승부를 닮은 점이 있다.

 

과연 <추적자>는 <적도의 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차츰 시동을 걸어 점점 깊은 긴장감과 속도감을 만들어낼 것인가. <추적자> 첫 회의 마지막 장면, 즉 백홍석이 복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오고, TV 화면으로 버젓이 누군가의 삶을 짓밟고 그 위에 올라선 강동윤의 연설 장면이 오버랩 되는 그 장면은 그래서 이 작품의 제대로 된 착화점이 되는 셈이다. <추격자>는 <적도의 남자>가 보여준 그 통쾌하면서도 아픈 사회극이자 복수극의 또 다른 그림을 그려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