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미드, 일드, 그러면 우리는?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미드, 일드, 그러면 우리는?

D.H.Jung 2007. 2. 2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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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부는 전문성과 오다쿠적 감수성의 요구

최근 들어 미드(미국드라마), 일드(일본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그것은 과거부터 있어 온 것이지만 요즘의 열기는 수면 위로 올라와 있다는 점이 주목할만한 이유다. 한때는 ‘한류’라는 태극마크에 우쭐하던 우리네 드라마 세상에서 갑자기 미드, 일드가 부상하는 이유는 무얼까.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것은 한류의 ‘한 때 부흥’에 들떠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은 우리네 드라마의 진화 속도가, 오히려 한류로 드라마에 더 관심을 갖게 된 시청자들의 드라마를 보는 높은 수준을 따라잡지 못한 데 있다.

언제부턴가 시청자들은 우리나라 드라마의 공식을 꿰뚫고 있으면서 그 공식에 딱딱 맞게 무한 생산되는 드라마들을 외면하고 있다. 작년부터 본격화된 이런 현상은 이른바 ‘트렌디 드라마’, ‘멜로 드라마’의 몰락을 불러왔다. 모든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트렌디 드라마’는 구태의연한 드라마의 대명사로, ‘멜로 드라마’는 통속적인 신파로 싸잡아 인식되었던 것. 우리네 드라마가 이런 시청자들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도 미드와 일드는 그 시청자 욕구의 빈자를 찾아 매일 거의 실시간에 가까운 속도로 인터넷을 넘나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미드와 일드 어떤 점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헐리우드와 시즌제 드라마의 만남
우리는 헐리우드 영화가 헐리우드 시스템에 갇혀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헐리우드는 영화라는 장르에서 시즌제 드라마라는 장르로 새로운 부흥의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매회에 영화 제작비에 버금가는 투자가 이뤄지고 유명 감독들과 스타들이 포진하는 이 시즌제 드라마는 그저 갑자기 나타난 괴물이 아니다. 이 괴물은 우리가 과거 ‘육백만불의 사나이’, ‘소머즈’에서부터 ‘V’, ‘맥가이버’를 거쳐 ‘X파일’을 통해 익숙한 헐리우드라는 강물 아래서 꾸준히 커왔고 수면 위로 올라와서는 거침없이 세계의 시장을 향해 질주를 시작했다.

미드가 가진 특징은 헐리우드 영화들이 갖는 특성 중 하나인 전문성이다. 특정 직업에 대한 심도있는 접근은 미드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다. 형사(CSI)와 의사(그레이 아나토미)는 물론이고 탈옥전문가(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혀를 내두를 정도의 전문성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박아두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한 한 편 한 편에 들이는 영화 수준의 완성도는 전체적인 연결성을 두고 이어지면서 파괴력을 높인다. 어느 중간에 한 편을 봐도 충분히 재미를 느끼게 하는 데다 자꾸 찾아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게다가 시즌제를 통해 무한복제되는 양상은 두렵기까지 하다. 최근에는 방송형태에 있어서도 PMP를 통한 방식을 취해 언제 어디서나 쉽게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되었다니 드라마 폐인의 탄생은 이 정도면 당연한 결과로 보여진다.

오다쿠적 드라마의 중독성
반면 일드의 특징은 편집증적이라 할 만큼 집요한 디테일과 섬세한 감정 묘사이다. 우리네 드라마에 비해 좀 템포가 느리다거나 다이내믹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영상문법에 있어서 우리보다는 좀더 고도의 우회를 거치기 때문이다. 우리 드라마는 한 장면을 묘사할 때 A=A로서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 드라마는 A=B이고 B=C라는 전제를 충분히 깔아놓은 상태에서 A=C라고 말한다. 그러니 시청자 입장에서는 더 수고를 해야 그 감정 선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언뜻 보면 답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단 이런 방식에 익숙해지면 그 중독성은 더 커진다. 일방적인 전달보다 강한 것은 상호 교감이라는 것. 이것이 오다쿠적인 일본 드라마의 중독성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튼튼한 문화의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로 승부하는 수많은 소설들이 또한 각종 권위 있는 상을 휩쓸고 있는 건 우리네 소설계 풍토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또한 만화를 하위장르가 아닌 하나의 가치 있는 상위장르로 보고 있으며, 엄청나게 많은 소재와 다양한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는 것은 드라마처럼 늘 소재발굴에 목마른 장르에게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미드와 일드 앞에 우리 드라마는?
이러한 미드와 일드의 약진 속에서 작년 우리 드라마가 내민 성적표는 그다지 좋지 않다. 좀 과장되게 말한다면 작년 한 해 우리의 드라마는 사극과 논란드라마, 그리고 트렌디 드라마의 공식을 깨는 몇몇 실험적인 드라마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사극은 드라마적인 재미에 있어서 가능성을 보인 것은 사실이나, 또한 민족주의적인 접근이 갖는 한계성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미드와 일드에 대적할 수 있는 힘이 약하다. 논란드라마는 드라마의 퇴진과 시청률 지상주의가 가져온 병폐로 진화보다는 퇴화가 가까울 것이다. 그나마 몇몇 트렌디 드라마의 공식을 깨는 실험적 드라마들(예를 들면 ‘90일 사랑할 시간’이나 ‘환상의 커플’같은)이 겨우 우리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줬을 뿐이다.

그래서 올 들어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 소위 ‘전문직 드라마’다. 이것은 분명 미드와 일드의 영향이 가져온 결과다. ‘하얀거탑’, ‘외과의사 봉달희’같은 병원드라마는 그저 화제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지금 현재 우리 드라마의 지반을 변동시키는 큰 동인이 되고 있다. 과거의 향수로서 드라마를 대하는 시청자들은 이들 전문직 드라마보다는 드라마의 원형에 가까운 가족드라마와 사극에 아직도 마음을 빼앗기고 있지만 이들은 미래의 시청자가 아니다. 미래의 시청자들은 굳이 TV가 아니라도 인터넷 등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드라마를 보는 세대다. 이들 세대들을 겨냥하는 더 많은 전문직 드라마의 등장이 예고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변화된 환경, 시청률에도 질적 개념이 필요하다
재미있는 것은 어떠한 장르든 인터넷과 연결되면 ‘매니아화’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인터넷의 속성이다. 인터넷은 누구든 쉽게 접근하고 쉽게 주장을 펼치고 거기에 좀더 많이 빠져들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하얀거탑’의 시청률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인터넷에서의 폭발력도 낮은 것은 아니다. 이 ‘충성도 높은 시청자’는 ‘그저 심심풀이로 보는 시청자’와는 다르게 분류해봐야 할 것이다. 시청률도 양적인 개념이 아닌 질적인 개념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문제는 변화된 매체환경 속에서 미드와 일드가 각자 자신들이 가진 개성과 힘으로 무장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만의 무기를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외부의 영향으로 인해 변화를 촉발하게 된 우리네 드라마는 현재 퓨전 사극과 전문직 드라마들에 올인하는 느낌이 있다. 이것은 매너리즘에 빠진 우리네 드라마에 활기를 줄 훌륭한 시도임에 틀림없으며 또한 인터넷 환경에서 자꾸만 요구되는 전문성과 오다쿠적 감수성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

한편으로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과거 한류드라마의 틀을 이루었던 ‘멜로드라마’에 대한 무관심이다. 이것은 한류에 기대 몇몇 유명 한류스타를 내세워 성공하려했던 제작사들의 책임이 크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들 졸속 멜로드라마들에 대한 백안시 때문에 ‘완성도 높은 멜로드라마’에 대한 실험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우리가 가졌던 힘을 버리는 행위는 아닐까. 멜로는 드라마의 원형이라는 점에서, 전문성에 매니아적 감수성 그리고 여기에 덧대진 질 높은 멜로의 틀이 완성될 때 우리 식의 독특한 개성이 나타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