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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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우리가 백홍석에 눈물 흘리는 이유

D.H.Jung 2012. 6. 28.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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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홍석, 우리 시대 아버지의 초상

 

그가 잘못한 것이라고는 가족을 위해 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한 것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돌아온 결과는 실로 참혹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뺑소니를 당했고 간신히 이어붙인 생명줄을 돈 앞에 무너져 내린 친구가 끊어버렸다. 딸의 죽음에 비통해하던 아내마저 죽음을 맞이하고 진실을 밝혀내려던 그는 오히려 범법자가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진실은 은폐되었고, 그렇게 돈과 권력으로 진실을 은폐한 이들은 정치 일선에서 ‘서민 운운’하며 정권을 잡기 위한 쇼를 한다.

 

'추적자'(사진출처:SBS)

형사로서 그토록 지키려 애쓴 법 질서가 이제 거꾸로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는 현실, 그 누가 법에 정의를 기대할까. <추적자>의 백홍석(손현주)은 그렇게 끝단에 몰려 세상의 추악한 진면목을 바라보게 된다.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강동윤(김상중) 앞에 총을 들이대지만 백홍석의 그 행동을 강동윤은 거꾸로 정치적 음모론으로 덮어버린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마음이 없는 강동윤과 같은 권력자들 앞에서, 우리네 정 많고 눈물 많은 수정이 아빠 백홍석은 무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늘 땀에 절어 번질번질한 얼굴에 반쯤 정신이 나간 듯한 표정, 그리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듯한 눈으로 처연하게 이 더러운 현실을 바라보는 백홍석에 똑같은 가슴 먹먹함을 느꼈다면 우리가 사는 현실이 그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인식 때문일 게다. 도대체 우리네 서민들이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왔고 무엇보다 가족들을 위해 헌신했던 우리들이 아닌가. 그런데 권력자들은 저들끼리 권력을 잡으려고만 혈안이다. 그들은 서민을 외치지만 서민 정치는 좀체 보이지 않는다. ‘서민’이라는 이름은 이제 그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호명하는 이름이 되어버렸다.

 

IMF가 터졌을 때 우리네 서민들이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하지만 그네들의 사라져버린 도덕성 위에 무너져가는 기업들을 회생하기 위해 저들끼리 공적자금이라는 이름으로 뽑아간 것은 서민들의 세금이었다. 잘못은 저들이 했지만 고통은 서민들이 겪었다. 수많은 전시행정들과 일관성 없는 정책들이 서민들을 향해 있었던 적이 몇 번이나 되던가. 백홍석이라는 이 시대 아버지의 초상을 바라보며 우리 또한 눈물이 나는 이유는 그의 진심이 보이기 때문이고, 그것이 처절하게 짓밟힌 현실이 보이기 때문이다.

 

<추적자>를 드라마 그 이상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진짜 서민들이 갖고 있는 정서에서 비롯된다. 사실 드라마적으로 보면 백홍석이 위기의 순간에 도주하는 장면이 어색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인다. 강동윤 앞에 총을 들이대고 있는 백홍석을 향해 경호원이 총을 쐈다면 그 자리에서 사살했거나 그를 체포했어야 개연성이 있다 여겨지지만 사실 그런 것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도 않는다. 그 자리에서 도주에 성공하는 백홍석을 시청자들이 마음 속에서 지지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것은 <추적자>가 단순한 드라마 이상이라는 반증이다.

 

그래서 <추적자>의 슬픈 아버지 백홍석을 보며 눈물을 흘린 시청자들은 그가 적어도 드라마 속에서라도 진실이 통하는 세상을 만나기를 희구한다. 우리를 닮아버린 백홍석이라는 아버지가 적어도 드라마라는 작은 공간에서나마 숨통을 틔기를 원한다. 그렇지 않다면 모진 현실을 드라마 속에서조차 확인하는 셈이 될 테니. 물론 섣부른 드라마의 판타지가 현실을 바꿀 수도 없고, 어떤 면에서는 바뀌지 않는 현실이 마치 바뀐 것인 양 호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래도 백홍석이라는 우리 시대 아버지의 초상이 최소한 한 번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는 마음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