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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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추적자>와 <유령>, 시청자가 달라졌어요

D.H.Jung 2012. 7. 1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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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가 아닌 완성도, 시청자들의 달라진 눈높이

 

드라마 시청자들이 달라지고 있다. <추적자>와 <유령> 같은 장르 드라마들의 선전이 그것을 에둘러 말해준다. 물론 시청률은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드라마 시청률이 낮아졌다는 점과 그것을 감안했을 때 시청률이 괜찮은 편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화제성 면에서 단연 압도하고 있다는 점은 과거와 달라진 시청자들의 성향을 예감하게 한다.

 

'추적자'(사진출처:SBS)

<추적자>가 시청률 18%에 육박하고 있는 건 물론 이 드라마가 가진 강력한 극성 덕분이다. 현실을 그대로 보는 것만 같은 리얼리티에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쏟아져 나오는 명대사들, 잘 구축된 캐릭터를 제 옷처럼 입고 연기하는 연기자들, 게다가 숨 쉴 틈 없이 속도감 있게 잘 짜여진 연출까지 뭐하나 빼놓을 것 없는 완성도가 바로 그 높은 시청률의 답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추적자>처럼 본격적인 추격 액션물이 이만한 성과를 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여기에는 <추적자>의 밑바탕에 가족과 서민에 대한 대중정서가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다. 백홍석(손현주)이 국민 아버지가 된 것은 그 때문이다. 즉 <추적자>는 전형적인 추격 액션 장르를 가져왔지만 여기에 한국적인 색채를 덧입히는데 성공했다. 그저 쫓고 쫓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우리네 정서를 집어넣었다는 점이 성공 포인트다.

 

하지만 <유령> 같은 작품이 14%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내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다. 알다시피 <유령>에는 우리네 드라마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하는 멜로나 가족이야기가 전무하다. 오로지 수사 장르물에 입각해 그것이 줄 수 있는 재미에 집중되어 있다. 때로는 <유령>은 드라마로서는 너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촘촘히 이야기가 짜여지다 보니 잠시 집중을 하지 않게 되면 다음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겪기도 한다. TV라는 매체를 생각해보면 이런 드라마가 이렇게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물론 <유령>은 본격 장르물이 갖는 이런 약점들을 넘어서기 위한 보완책들을 갖고 있다. 그것은 누구나 현실에서 쉽게 들어봤던 사이버 범죄들을 소재로 가져왔다는 점이다. ‘타진요 스캔들’을 떠올리게 하는 에피소드도 있었고, 민간인 사찰 같은 민감한 소재도 에피소드로 활용되었다. 이런 익숙한 소재들은 낯설 수 있는 드라마가 딴 나라 이야기가 되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준 셈이다. 게다가 수사 장르물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 있는 반전 포인트들을 다양하게 가져간 점도 성공의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보완책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추적자>나 <유령>을 통해 시청자들의 변화를 느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청자들은 이제 장르에 대한 편견 없이 드라마를 좀 더 섬세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에는 의학드라마나 사극 혹은 시대극이라면 무조건 성공하는 것으로 보았지만 지금은 그것이 통용되지 않는 상황이다. 새롭게 시작한 의학드라마 <골든 타임>이 아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나, <무신> 같은 사극은 별로 화제가 되지 않지만, <닥터 진> 같은 사극은 연일 화제가 되는 상황이 그렇다. 또 같은 멜로라도 <신사의 품격>이 선전하고 있는 반면, <빅>과 <아이두 아이두>가 부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즉 장르적인 우위를 떠나서 이제는 드라마가 갖는 완성도나 참신성 같은 것이 성패를 가름하고 있다는 얘기다. 화려함은 없어도 팽팽한 대본과 연기가 뒷받침되어 성공한 <추적자>가 그렇고, 다소 복잡하고 어려울 수도 있지만 사건의 얼개나 구성이 촘촘하게 잘 엮어져 있는 <유령>의 성공이 그렇다.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시청자들의 드라마를 보는 수준이 높아져 있다는 얘기다. 이제 어디선가 했던 비슷비슷한 설정을 반복하는 드라마들에 시청자들은 식상해한다. 관성적인 시청도 물론 여전히 남아있지만 과거만큼은 아니라는 것은, 한 드라마 시청률의 등락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보통 드라마의 첫 회 시청률이 높으면 대체로 성공하는 드라마로 생각됐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드라마가 힘이 빠진다 싶으면 시청률이 곤두박질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중반에 시청률이 잘 나왔지만 후반에 이르러 연장을 하면서 시청률이 뚝 떨어졌던 <빛과 그림자>가 단적인 사례다.

 

아마도 미드와 일드를 경험하고 열광했던 시청자들도 이제는 어느 정도 나이 들어 TV의 주 시청층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높아진 눈높이에 부응하지 못하면 바로 고꾸라지는 게 요즘 드라마의 운명이 되었다. 초반 기획으로만 봐서는 성공 요소가 별로 없다 여겨졌던 <추적자>의 성공이나, 아직은 조금 시기상조로 여겨졌던 본격적인 장르 드라마인 <유령>의 선전은 그래서 달라지고 있는 작금의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말해주는 징후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