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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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거침없이 캐릭터를 날리다

D.H.Jung 2007. 3. 9.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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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공화국, ‘거침없이 하이킥’

왠만해선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아무 생각 없이 보다가도 거침없이 날아오는 웃음킥에 실실 웃다보면, 어느새 이 유쾌한 하이킥에 중독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중독의 실체는? 바로 캐릭터공화국이라 할 만큼 다채로운 웃음의 개성을 지닌 폭소유발자들. 따로따로 떼어놓고 봐도 영 웃기는 캐릭터인데, 이들이 서로 얽히고 설키는 이야기에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거침없이 하이킥’, 그 속의 캐릭터에는 도대체 어떤 마력이 숨어 있는 걸까.

세대를 잇는 이 시대의 아버지, 야동+순재
이전까지 젊은 세대들에게 그는 좀 재미있는 기성세대로서의 ‘대발이 아빠’ 혹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높은 영원한 스승으로서의 ‘유의태’였다. 그러나 그가 노트북 앞에서 “야동”이라 외쳤을 때, 젊은 세대들의 가슴속으로 그는 단박에 들어갔다. 다음날 인터넷에는 그의 이름과 ‘야동’이란 단어가 합쳐진 ‘야동순재’라는 검색어가 떴다. 그런데 ‘야동순재’는 전날 시트콤에 나온 에피소드를 줄여만든 단순한 단어의 결합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꺼이 젊은 세대의 마음 속으로 파고든 일흔이 넘은 어르신의 표상이 되었다.

그것을 신호탄으로 이후에도 그의 이름 앞에는 새로운 단어들이 붙기 시작했는데 그 중 주목할만한 것은 ‘악플순재’이다. 인터넷 게시판에 독수리타법으로 계속해서 악플을 올리는 모습에서 비롯된 호칭.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순재라는 이름 앞에 붙은 ‘야동’과 ‘악플’이란 단어다. 이 단어들은 모두 인터넷과 연관된 것으로 네티즌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 두 단어가 순재라는 이름 앞에 붙어버리자 이것은 순재와 네티즌 사이에 놓여진 길게는 오십 년, 작게는 사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버린다. 이 시대의 아버지의 초상, 이순재라는 놀라운 캐릭터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후에도 이순재라는 캐릭터는 당당하고 거침없어 보이며 자애롭기까지 해 도무지 이빨이 들어가지 않을 기성세대의 모습을 겉으로 내세우면서도, 그걸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 방송에 나가 땀을 뻘뻘 흘리며 굴욕을 당하는 순재, 나문희에게서 S라인을 느끼는 순재, 멋진 골을 넣고 골 세레모니를 통해 나문희에 대한 사랑을 전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리는 순재의 모습은 우리가 아버지는 권위적일 거라는 피상적인 편견을 깨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렇게 어르신이 솔선수범해서 마음을 열어주자 그 속으로 들어온 다채로운 캐릭터들은 마음껏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시집살이하는 시어머니 애교+문희
이 시대의 진정한 연기자 나문희. 다양한 스펙트럼의 어머니 연기로 정평이 난 그녀는 ‘거침없이 하이킥’에 와서는 ‘시집살이하는 시어머니’ 역할을 맡았다. 멋대가리 없는 남편과 제 주장만 펼치는 며느리 사이에서 제 영역이 불분명해진 요즘의 시어머니들을 대변한다. 겉으로 보기엔 무뚝뚝하고 세상 놀랄 것 없는 나이의 그녀. 그러나 찬찬히 면면을 살펴보면 놀랍게도 수줍은 소녀 티가 묻어난다. 캐릭터 상 아들 준하와 함께 ‘괴력’과 ‘식탐’으로 한 세트를 이루는 그녀에게서 언뜻 보이는 이런 면모는 ‘애교문희’란 호칭을 얻은 에피소드에서 극대화된다.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줍기만 한 그녀가 자신의 나이 값을 하기 위해 취하는 의식적인 행동은 무뚝뚝함. 그런 그녀가 어느 순간 ‘애교’라는 닭살을 떨어보기로 한 것. 그것은 차마 보기 힘들 정도의 대변신이지만 한편으로는 앞치마에 휴대폰을 목에 건 채 늘 부엌떼기로 취급받는 자신에 대한 작은 반란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그렇듯이 그녀 역시 조그마한 일에서 기쁨을 찾아낸다. 자신을 왕 무시하는 며느리 앞에서 늘 입을 삐죽대다가도 며느리의 작은 실수에 쾌재를 부른다. 시청자들은 기꺼이 그녀의 작은 기쁨에 동참한다.

그런데 그녀의 ‘작은 기쁨’에는 묘한 페이소스가 숨어있다. 유난히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 기쁨을 찾는 자는 슬프다. 울상의 얼굴을 하고 있다가 통닭 몇 마리에 환하게 웃는 얼굴에는 왠지 모를 가슴저림 같은 것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그녀가 괴력의 소유자라는 것과 기묘하게 어울린다. 마치 엄청난 힘을 가진 거인이 그 힘을 모두 타인을 위해 쏟아 부은 후, 자신을 위해서는 작은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모습. 그것은 바로 생각하면 유쾌하게 웃다가도 뭉클해지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아귀가 되어버린 고개 숙인 가장, 식신+준하
그가 바보라는 편견은 버려야 한다. 그건 그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니까. 그는 오히려 기꺼이 웃음 없는 사회에 웃음을 주기 위해 바보가 된 천재다. 바보가 주목을 받는 건 그만큼 사회가 각박하고 힘들다는 반증이다. 너도나도 잘난 사회에서 그가 늘 도맡는 역할은 어눌하고 바보 같은 캐릭터. 준하는 그 같은 캐릭터로 오히려 사람들에게 때론 진한 공감을 때론 희망을 선사한다.

늘 손에 무언가 먹을 걸 들고 있는 그를 보며 순재는 “동물이냐 사람이냐”고 되묻는다. 하지만 그 질문은 “왜 버젓한 가장이 빈둥빈둥 집에서 어슬렁거리면서 늘 먹을 것만 찾는 동물이 되었는가”하는 사회적인 맥락으로 읽힌다. 그는 마치 자신을 끼워주지 않는 저 사회에 대해 반항하는 것 같다. 자신이 원한 것이 아닌데도 밥벌이를 못한다는 주변의 질책에 대해 오히려 먹을 것만 찾는 모습으로 말이다. 그의 식탐은 못 먹어 죽은 귀신이 아귀로 태어나는 것처럼 어쩌면 밥벌이에 대한 갈증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 아귀가 되어버린 고개 숙인 가장의 가족을 향한 마음은 애틋하기만 하다. 아내인 해미와 벌이는 닭살 애정행각은 ‘아내 자랑은 팔불출’이란 맥락과도 맞닿아있지만 또 한편으론 부부사이에도 쿨하기만한 세태에 가슴 뭉클한 따뜻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늘 인상을 쓰고 앉아 무언가를 먹으며 투덜대고 작은 것에 기쁨을 느끼는 괴력의 사나이. 그는 어머니인 나문희와 그대로 짝을 이룬다. 그래서 이 시트콤의 가장 억압받는 두 존재는 문희와 준하가 된다. 그래서일까. 그 둘이 함께 식탐에 빠지는 장면에서 늘 배꼽잡고 웃다가도 애잔한 감정이 남는 것은.

먼저 OK할 수 있는 그녀, OK+해미
‘하늘이시여’에서 자신의 딸에게조차 시어머니 역할을 했던 해미는 ‘거침없이 하이킥’에 와서는 자신의 시어머니에게조차 시어머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다만 확연히 달라진 것은 ‘하늘이시여’의 방식이 부정(NO)의 방식이었다면, ‘거침없이 하이킥’의 방식은 긍정(OK)의 방식이라는 것. 당당한 이 시대의 며느리들이라면 해미의 OK 방식에 마음을 빼앗겼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거침없는 OK가 매력적인 것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자신감에 있다. 사회생활을 하는 워킹우먼이라면 선택의 기로에서 그녀처럼 명쾌하게 답을 내려주는 자신이었으면 할 때가 얼마나 많을까. 해미 캐릭터의 핵심은 바로 ‘능력’이다. 그녀는 사회생활에서도 가정사에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여성의 표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아마도 이건 이상일 뿐 현실은 아닐 것. 그런 점에서 그녀는 이 시대의 여성상을 대변하는 동시에 여성들이 희구하는 하나의 환타지가 된다.

“남이 당신에게 OK라 하기 전에 당신이 먼저 OK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그녀의 대사 속에는 누구에게 규정되기보다,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능동적인 여성상이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적극적이고 심지어는 공격적으로 느껴져 사육해미가 되기도 하는 그녀의 캐릭터는 그녀 주변에 있는 소심한 캐릭터들(가장 중심에 있는 나문희와 준하 같은)과 명쾌한 대비를 이루며 웃음을 유발한다. 나문희와 준하 같은 소심한 우리네 소시민들에게 늘 시원시원한 해답을 내주는 그녀가 소중하게만 느껴지지 않을 까닭이 있을까.

이 시대가 요구하는 까칠남, 까칠+민용
요즘은 까칠한 남자가 뜬다는데, ‘거침없이 하이킥’에도 ‘까칠’하면 빠지지 않는 이민용이란 캐릭터가 있다. 까칠남이 이렇게 주목을 받는 이유는 과거의 이상적인 남성상으로서의 로맨티스트가 이제는 느끼남이 되어버렸기 때문. 즉 까칠한 건 참아도 느끼한 건 못 참는다. 물론 드라마 캐릭터로서(아마 실제는 다를 지도 모른다) 말이다. 까칠남의 매력은 늘 까칠하다가도 어느 순간 잠깐 보이는 부드러움에 있다. 본래는 부드러운 사람이지만 무언가 상처 같은 것이 그를 까칠하게 무장시킨 탓이다. 이민용은 이 복합적인 까칠남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까칠해진 이유? 그건 아마도 27살이란 젊은 나이에 이혼남에다 아이까지 갖고 있다는 데서 오는 게 아닐까. 그 정도 되면 이제 현실의 각박함은 이미 벌써부터 겪어왔을 터이지만, 그럼에도 젊은 나이가 갖는 풋풋함 역시 갖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젊은 나이에 젊음을 누리지 못하게 된 상황을 자초한 그는 지금 자신을 벌주는 중이거나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잔뜩 웅크리는 중이다. 어찌 보면 배배 꼬여버린 성격의 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런 사심 없이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밖에 없다. 바로 꽈당민정이다.

울면서 웃기는 그녀, 꽈당+민정
그녀는 왜 아무 이유 없이 ‘꽈당’ 넘어지는 걸까. 그 행위 자체는 바보스럽다 할 수 있겠지만 그 이미지가 민정과 연결되자 거기에는 순수함과 더불어 묘한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구석이 생긴다. 작고 약하기만 할 것 같은 그녀. 하지만 그녀의 솔직함은 그대로 까칠한 민용의 마음에 꽂혀버린다. 그녀는 늘 진지하다. 좋다면 “정말 좋아요”라고 거침없이 말하고, 아이들을 꽉 잡기 위해 단호한 목소리로 사랑의 매를 들고 호통을 친다. 하지만 진지한 그녀가 하는 행동은 늘 어색하다. 이 마음을 몸이 따라가지 않는 상황이 그녀로 하여금 웃음을 유발시킨다.

그렇지만 그 어색함은 기분 좋은 어색함이다. 마치 어린이가 어른 흉내를 내다 들킨 것 같은 유쾌함. 그래서 그녀가 웃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웃게 된다. 또 그녀가 진지해질 때도 우리는 웃게 된다. 심지어 때로는 그녀가 울 때조차 우리는 웃음을 짓게 되는데 그것 역시 그 울음 속에서 과장된 응석의 귀여움이 포착되기 때문이다. 사정없이 귀여운 그녀. 넘어질 때도, 화를 낼 때도, 심지어는 울 때조차도.

모성애로 돌아온 철없는 이혼녀, 신지
신지란 극중 캐릭터는 억울하다. 그것은 최초 설정에서 얄팍하고 깨지기 쉬운 가족의 모습을 구성하다 보니, 신지란 캐릭터가 ‘자신의 꿈을 찾아’ 철없이 이혼하고 러시아로 떠나는 설정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러시아에서 얻은 것은 결국 사기. 그리고 돌아온 그녀의 모습에서 먼저 여타의 캐릭터와 달리 신지는 진지함이 사라졌다.

여기에 돌아온 이혼녀가 이제 막 러브라인을 만들어가는 민용과 민정 사이에 끼어 삼각관계를 이루자 캐릭터에 대한 호감마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신지란 신인연기자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애초 캐릭터 설정에서 생겨난 문제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신지는 러브라인에서 빠져나와 적극적으로 민용과 민정을 밀어주는 조력자가 되면서 캐릭터에 대한 존재감이 살아나고 있다. 또한 아무 대사는 없지만 늘 온 가족을 울리고 웃기는 아기, 준이의 도움을 톡톡히 받고 있다. 준이를 통해 신지는 철없는 이혼녀에서 모성애로 귀환하고 있다.

톰과 제리, 이윤호와 이민호
우리는 이윤호와 이민호, 이 두 캐릭터를 보면서 좀 헷갈리게 된다. 겉으로 볼 때 전교 꼴등에 오토바이를 몰지 않나, 툭하면 패싸움에 휘말리고, 툭하면 자습시간에 도망치는 윤호는 전형적인 꼴통이다. 반면 늘 일등에, 탁월한 언어능력과 논리력, 심지어는 여자친구까지 뭐하나 빠지는 게 없는 민호는 모범생으로 보인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아닌 속까지 이 두 캐릭터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본 시청자들이라면 이 전형적인 사고의 틀에 균열을 일으키게 된다.

모범생으로만 보이는 이민호는 사실 그 얄미울 정도의 똑똑함으로 철저히 이득만을 챙기는 인물이다. 청소년으로서의 풋풋함보다는 일찍 어른의 세계에 도달한 캐릭터. 그래서 그는 오히려 꼴통으로 보인다. 반면 완소윤호라는 호칭을 얻고 있는 윤호는 거칠고 때론 모자란 듯하지만 정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인물. 그런데 재미있는 건 힘으로는 형인 민호를 동생 윤호가 제압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전형적인 톰과 제리의 재미가 이어진다. 힘은 세지만 어리숙해 매일 당하면서 “억울해”를 연발하는 윤호는 톰의 역할을, 힘은 약해도 비상한 머리를 굴려 윤호를 골탕먹이는 민호는 제리의 역할이다.

하지만 때론 제리의 영리함이 바보스러움을 만들기도 한다. 설익은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일약 ‘카리스마민호’란 호칭을 얻는 민호를 윤호를 위시한 가족들은 보기 좋게 한방 먹인다. 그래서일까. 공부만 잘했지 다른 방면에는 영 무지한 민호의 모습을 보면서 대학입시 교육의 희생자로서 윤호뿐만 아니라 민호까지 생각하게 되는 것은.

가족보다 가족다운 그, 김 범
가족 바깥에 존재하지만 더 가족 같은 인물이 있다. 그는 신비롭기까지 한 김 범이란 캐릭터. 민호와 단짝을 이뤄 거의 매일 이 가족들 주위를 배회한다. 식신준하보다 민호네 냉장고 사정에 더 정통하고, 애교문희보다 더 가족사에 민감하다. 그러니 하숙범이란 호칭으로 불릴만하다. 그가 하숙범이라 불릴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이 김 범이란 캐릭터가 그저 자주 놀러오는 친구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캐릭터가 배신범으로 불리기 시작하자, 갑자기 이 캐릭터에 매력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만큼 가족의 결속이 약해져만 가는 시대에 가족들보다 더 가족 같은 김 범의 존재 때문이다. 민호의 가족들이 김 범을 배신범으로 놀리는 장면들에서 ‘이건 너무 한다’싶은 마음이 들다가 그가 눈물을 흘리며 “그래요 전 가족은 아니에요. 하지만 단 한번도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 없어요.”라고 하는 장면에서는 왠지 모를 감정이 솟구쳐 오른다. ‘하숙생’이란 음악이 흘러나오며 리어카에 민호네 집에서 나온 자신의 물건을 싣고 떠나가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터지면서도 동시에 각박해진 현실의 씁쓸함이 느껴진다.

진지한 캐릭터들, 그 조합이 유발하는 웃음
이상에서 본 것처럼 ‘거침없이 하이킥’의 캐릭터들은 그저 희화화된 캐릭터로만 보기 어렵다. 그들은 과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틀 안에서 진지하다. 그들은 억지로 웃기기 위해 과장된 몸짓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특정 성격으로 극대화된 캐릭터들이 서로 조합을 이루면서이다. 캐릭터들의 수로 미루어보면 그 조합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웃음과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시트콤의 성공이 결국 그만큼 생산된 캐릭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보기만 해도 공감이 가고 웃음이 터지는 캐릭터들은 중요한 성공의 기반이다. 이것은 캐릭터 조합의 수를 1:1, 1:2, 2:2, 2:3…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변주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 점에서 이 시트콤은 지금까지 그 재미의 반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울한 시대, 불륜 코드까지 시청률이란 명목으로 방영되는 저녁 시간대, 가족이 둘러앉아 유쾌한 웃음을 웃게 해준 ‘거침없이 하이킥’의 롱런을 기대하게 하는 요인이 아닐까.

☆ 캐릭터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웃음들
▶ 야동순재 + 윤호민호 : 노트북을 사기 위한 윤호민호의 거짓말에 속은 순재가 노트북 앞에서 ‘야동’을 외치는 이야기.
▶ 순재 + 애교문희 : 모임에서 자신과 달리 애교를 떠는 여자(김애경)를 본 문희가 순재 앞에서 애교를 떨기 시작하는 이야기.
▶ 식신준하 + 문희 : 문희의 먹는 양이 줄자 울면서 “왜 밥이 줄어!”하고 준하가 오열하는 이야기.
▶ 순재 + 식신준하 : 늘 식충이로 순재의 주식만 날리던 준하가 갑자기 몇 일동안 계속 상한가를 치다가 결국 작전주로 밝혀지는 이야기.
▶ OK해미 + 까칠민용 : 사사건건 간섭을 하는 해미를 호시탐탐 노리던 민용이 해미의 실수(변기물이 막힘)를 찍기 위해 달리는 이야기.
▶ 까칠민용 + 꽈당민정 : 학생들에게 매일 당하기만 하는 민정에게 민용이 학생들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지만 영 안 되는 민정의 이야기.
▶ 순재가족 + 배신범 : 민호의 여자친구 유미를 꼬드겼다는 사실로 순재가족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범이가 민호네 집에서 이삿짐만큼의 자기 짐을 챙겨 떠나는 이야기.
▶ 순재 + 준하 + 민용 + 윤호 + 민호 + 범 : 순재에게 쫓겨 민용의 옥탑방으로 들어간 그들이 오히려 거기 갇히는 이야기
▶ 이외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