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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손현주, 이성민과 대선주자의 자격

D.H.Jung 2012. 8. 1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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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주와 이성민, 서민들을 위한 리더십

 

<뿌리 깊은 나무>의 한석규, <추적자>의 손현주에 이어 <골든타임>의 이성민까지 최근 드라마에는 그간 주변에 머물러 있던 중견배우들의 재발견이 새롭다. 사실 이들이 연기 잘 한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다만 그간 드라마에서 맡은 역할이 그들의 가능성을 최대치로 보여주지 못했을 따름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감이 확실히 드러날 수 있는 역할을 맡게 되자 말 그대로 펄펄 날았다. 그들이 연기한 캐릭터의 무엇이 그들을 비상하게 만든걸까.

 

'골든타임'(사진출처:MBC)

<골든타임>은 지금까지의 의학드라마와는 사뭇 다른 극도의 리얼리티가 돋보이는 작품. 그 리얼리티를 100% 만드는 인물이 바로 이성민이 연기하는 최인혁 교수다. 최인혁 교수는 그간 의학드라마에서 괜스레 폼을 잡는 의사들과는 다르다. 죽음이 경각에 달린 환자를 살리기 위해 피 튀기는 수술대에서 온 몸에 피칠갑을 하고 수술을 하는 의사. 오로지 환자만을 보는 그 자세는 이 병원에서 그저 권력을 잡기 위해 메스를 쥐는 여타의 의사들과 비교된다. 돈과 권력에 따라 환자 대접도 받는 현실에서 최인혁은 서민들의 희망 같은 존재다.

 

수술을 못하게 만들어버린 과장들의 담합 속에서 환자를 외면하지 못해 결국은 사표를 쓰게 된 최인혁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거부하지 못한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교통사고 부상자를 즉석에서 응급조치하고 병원까지 이송한 후 아무도 수술을 하려 하지 않자 자신이 또 메스를 잡는다. 환자가 그저 보잘 것 없는 배달부라는 사실 때문에 쳐다보지도 않던 과장들은 그러나 그가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미담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서로 그를 맡으려 돌변한다.

 

하지만 응급환자 수술 경험이 최인혁에 비해 일천한 외과과장은 결국 수술대에서 환자가 초응급상황이라는 걸 깨닫고는 다시 자신이 내친 최인혁을 부르는 뻔뻔한 짓을 벌인다. 그런 짓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최인혁 교수는 환자를 향해 달려가 그를 응급수술해 일단 살려놓기로 마음먹는다. 천사배달부로 알려진 고 김우수씨의 미담을 소재로 가져온 이 에피소드는 이 의학드라마가 가진 정치적인 특징을 잘 말해준다. 친서민적인 최인혁이란 의사는 각박한 현실에서 힘겨운 서민들을 토닥이는 존재가 된다.

 

<추적자>의 손현주가 연기한 백홍석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열심히 산 것밖에 죄가 없는 그이지만 딸과 아내를 잃고 오히려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린 그 역시 이 땅의 죄 없는 서민들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자신의 가족을 모두 잃은 그가 개인적 복수가 아니라 사회 정의의 차원에서 사투를 벌이고, 법정에서 진술하는 모습에 대중들이 공감하고 감동한 것은 그가 서민들의 희망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석규 신드롬을 만들었던 <뿌리 깊은 나무>의 세종과도 맞닿는 이야기다. 이 사극에서 세종 이도는 왕과 백성들 사이에서 한자라는 독점 문자체계로 농단을 부리던 신하들과 맞서 왕과 백성을 직접 소통시키는 한글을 발명하고 반포하는 인물이다. 정기준(윤제문)과 그 무리들이 이 소통의 적들이라면 세종 이도와 그 측근들은 소통 사회를 이끌어낸 백성들의 희망이었던 셈이다.

 

한석규나 손현주, 이성민 모두 무수한 작품을 통해 연기지존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들의 연기가 새롭게 보이는 것은 그들이 만난 캐릭터에 답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캐릭터들이 모두 서민들의 구원자 같은 존재라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들의 캐릭터가 가진 정치적인 함의는 현재 힘겨운 현실에 허덕이는 대중들이 갖고 있는 서민들을 위한 진정한 지도자에 대한 갈증을 잘 말해준다. 그들은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인가. 올해 대선을 앞두고 있는 현재, 과연 이런 자격을 갖춘 인물은 나타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