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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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골든타임', 왜 시즌제 요구 유독 많을까

D.H.Jung 2012. 9. 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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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타임>, 연장보다 시즌을 요구하는 이유

 

권석장 PD의 엔딩은 독특하다. 정지화면과 동영상이 교차되면서 그간 있었던 사건들과 일어날 사건들이 열거되고 그 위로 엔딩 크레딧과 함께 음악이 흐른다. 이것은 <파스타>에서도 그랬고 이번 <골든타임>에서도 그랬다. 이 짧은 엔딩의 특징은 이들 드라마의 성격을 압축해 보여준다. 연속극의 전통을 갖고 있는 우리네 드라마들이 다음 회에는 무슨 이야기가 벌어질 것인가를 놓고 엔딩에 이른바 ‘낚시질’을 한다면, <골든타임> 같은 드라마는 오히려 그날 있었던 사건들이 보여준 흥미로운 순간들을 정리해준다.

 

'골든타임'(사진출처:MBC)

물론 다음 회에 대한 기대감을 보여주는 걸 포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대해 그다지 집착하지는 않는 인상이다. 이것은 <골든타임>이라는 드라마가 어떤 이야기의 연속적인 흐름을 타고 위기 절정을 향해 치닫기 마련인 여타의 우리네 드라마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골든타임>은 그 한 회가 집약해서 보여주는 에피소드와 그 의미에 더 천착한다. 우리가 흔히 미드에서 보게 되는 형태다. 각 회마다 각각의 제목을 부여해도 충분할 법한 그런 구조.

 

이렇게 각각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드라마는 아무래도 시청률에서 불리할 수 있다. 즉 연속적인 시청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골든타임>이 보여주는 것처럼 여러 개의 이야기가 서로 병치된다고 해도 그 안에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그 흩어진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준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현재 <골든타임>의 에피소드만 봐도 그렇다. 갑자기 강대제(장용) 이사장이 쓰러지면서 강재인(황정음)이 그의 손녀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그것을 알게 된 병원 과장들의 역전된 반응이 씁쓸한 웃음을 전해주었으며, 이 사실을 이용해 응급실의 해결사가 된 강재인의 유쾌한 모습도 방영되었다. 그 와중에 최인혁(이성민)과 이민우(이선균) 사이의 사제 간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고, 최인혁과 신은아(송선미)의 연애보다 흥미로운 밀당도 보여준다. 배달부로 일하면서도 이웃사랑을 전한 박원국 환자의 따뜻한 이야기, 산탄총을 맞고 들어온 미스테리한 사건의 환자들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이 많은 이야기들이 어떻게 한 드라마 속에 용해되어 있는가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응급실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이야기는 이처럼 산발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고, 이것이 오히려 진짜 리얼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한 마디로 정신없이 흘러가는 응급실의 일상을 보여주는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흩어지지 않는 건 그 이야기들을 묶어주는 강력한 캐릭터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인술의 대명사로 서 있는 최인혁 교수와 병원 과장 4인방의 팽팽한 대결구도가 틀을 만들고, 이민우와 강재인의 성장담이 그것을 받쳐준다. 여기에 신은아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는 최인혁 교수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인물구도라면 그 안에 어떤 에피소드가 들어와도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의사들을 도전하게 만드는 응급한 환자들이 있고, 그 환자들이 갖고 들어오는 무수한 사연들이 있다. 환자를 겪으며 성장해나가는 의사들의 성장드라마가 있고, 이상과 현실의 부딪침에서 생겨나는 의사들 간의 정치적인 드라마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걸 아우르면서도 유머를 만들어내는 여유 또한 잊지 않는다.

 

이런 수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는 <골든타임>이라는 드라마에 대해 유독 대중들의 시즌제 요구가 많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게 보인다. 건물로 치면 이제 겨우 기초공사 끝내고 골조만 세웠을 뿐인데, 어느덧 종영에 가까워지고 있으니 어찌 아깝지 않겠는가. 대중들은 최인혁 교수가 제대로 트라우마 센터를 운영하게 되는 그 과정을 보고 싶어 하고, 이제 겨우 시작한 이민우와 강재인의 성장드라마를 보고 싶어 한다. 또 아직 전면에 보여주지 못한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멜로라든가, 사제 간에 벌어질 멘토링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주연들 못지않은 존재감을 보여주는 많은 동료나 후배 의사들의 변화과정도 궁금하다.

 

이런 것들을 단 몇 회만에(심지어 몇 회 연장한다고 해도) 보여주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골든타임>이 갖고 있는 특유의 전개 속도 때문이기도 하다. <골든타임>은 이야기의 속도를 높이기보다는 짧은 시간에 벌어진 여러 많은 이야기들을 중첩시켜 보여줌으로써 속도감을 준다. 따라서 디테일들이 풍부한 반면, 인물들의 성장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다. 이런 속도라면 몇 차례의 시즌을 해도 충분할 정도다.

 

끔찍할 정도로 리얼한 수술 장면이 주는 긴박감과 사제 간의 공조와 팀플레이가 주는 따뜻함, 조직의 냉혹한 현실과 그 속에서도 잊지 않는 유머감각, 환자들을 통해 보여주는 서민들의 감동적이고 때론 아픈 삶의 이야기들까지... <골든타임>은 실로 다채로운 감정을 끄집어내주는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게다가 어디서 이렇게 리얼한 배우들을 모았을까 싶을 정도로 단역들조차(이를테면 박원국 환자나 신경외과 레지던트인 조동미(신동미)같은) 주목되게 만드는 연기자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시즌제를 통한다면 또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물론 우리네 드라마 환경에서 연장은 쉽고 시즌제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든타임>은 그 내적인 장점들 때문에 가장 현실적으로 시즌제가 가능한 드라마인 것도 사실이다. 대중들의 시선이 자꾸만 장르드라마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현재, <골든타임>이 장르드라마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시즌제의 포문을 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연 <골든타임>은 이러한 대중들의 바람을 이뤄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