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이미자 흑산도 공연에 울컥한 이유 본문

옛글들/명랑TV

이미자 흑산도 공연에 울컥한 이유

D.H.Jung 2012. 9. 20. 08:44
728x90

이미자 공연, 흑산도 아줌마는 소녀팬 같았다

 

서울에서 차를 달려 4-5시간 겨우 목포에 도착해 거기서 또 배를 타고 두 시간. 지난 15일 그 먼 거리에 있는 흑산도가 때 아닌 인파로 북적였다. 바로 국민가수 이미자(70)가 공연을 위해 섬을 찾은 것. 이미자는 1967년 ‘흑산도 아가씨’를 발표하고는 무려 45년 만에 처음으로 흑산도를 밟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그 남달랐을 소회는 말하지 않아도 익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자 흑산도 공연(사진출처:MBC)

‘흑산도 아가씨’가 발표됐을 때 아가씨였을 할머니들은 구부정한 몸을 이끌고 공연장으로 나오셨다. 아마도 그 할머니 밑에서 ‘흑산도 아가씨’를 들으며 고달픈 섬 생활을 버텨냈을 아주머니들도 공연장에 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햇볕과 물빛에 검게 탄 얼굴에는 힘겨운 삶의 흔적처럼 주름이 가득했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소녀 팬의 그것이었다. 이미자가 무대에 오르자 아주머니들은 소녀 팬처럼 열광하기 시작했다.

 

'엘레지(애가 哀歌)의 여왕'답게 이미자의 목소리는 세월을 비껴간 듯 여전히 관객들의 귀에 내려앉아 마음 한 구석에 숨겨둔 애절한 마음을 술술 풀어냈다. 칠십의 연세에도 2시간 동안 무려 22곡을 부르는 저력을 보여준 이미자의 무대에 흑산도 주민들의 서걱대는 마음도 풀어졌을 것이다. 왜 아닐까. 무려 두 차례의 태풍이 흑산도를 강타하고 지나간 후였다. 그것도 모자라 태풍 산바가 또 들이닥칠 것이라는 불안한 예고가 있었다. 공연장이 설치된 흑산도 항구에는 태풍을 피해 들어온 고깃배들이 저마다 불빛을 반짝이며 항구에 정박해 있었다. 그 모습이 이미자 공연을 보러온 흑산도 주민들처럼 애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애절함과 거친 환경, 게다가 먼 거리에 있어 문화 사각 지대가 될 수밖에 없는 그 곳에서의 이미자 공연은 진정 노래의 힘을 알게 해준 공연이었다. 거친 삶을 위로해주고 다시 살 흥을 돋워주는 것이 노래라면 이런 곳이야 말로 노래가 필요한 곳이 아닌가. 아마도 수십 년 간 이런 대형 공연을 접해보지 못했을 흑산도 주민들의 환호성은 그래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이미자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동백아가씨’, ‘흑산도아가씨’. ‘섬마을 선생님’을 연달아 불렀을 때였다. 그러고 보니 이미자의 이 노래들은 모두 바다를 끼고 살아가는 이들의 애환이 담겨 있었다. ‘물결은 천번 만번 밀려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의 가사는 섬처럼 소외된 지역에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이 아닐는지.

 

목포에서도 100킬로가 떨어져 있는 흑산도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기획은 아니었을 것이다. 풍랑에 서울 못간 흑산도 아가씨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 ‘흑산도 아가씨’처럼, 몇 번 공연을 기획했다가도 바다 사정이 여의치 못해 포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란다. 45년 만의 이미자 첫 흑산도 공연. 그 공연을 위해 이 공연을 주관한 MBC측은 장비를 옮기는 데만 무려 2주가 걸렸다고 한다.

 

우리는 도시에서 아이돌이다 뭐다 하며 쉽게 공연을 찾아볼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정약전 선생이 유배됐던 그 외로운 섬 흑산도 같은 문화 소외 지역에서 이제 칠순을 맞는 이미자가 정성을 다해 부르는 노래는 더 짠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이를 계기로 좀 더 많은 소외 지역에서의 문화 행사가 많아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