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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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주년 맞은 007, 여전히 유효한가

D.H.Jung 2012. 10. 3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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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스카이폴>, 007을 도마에 올리다

 

여전히 007 제임스 본드는 유효한가. 50주년을 맞은 <007 스카이폴>이 던지는 질문이다. 영화 속에서 제임스 본드의 상관인 M은 장관에게 불려나가 MI6라는 조직의 유효성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 장관은 이제 007 같은 스파이가 물리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시대가 아니라고 말한다. 영화 속 스파이 조직의 존폐에 대한 질문은 그대로 이 스파이 영화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사진출처:영화 <007 스카이폴>

바뀐 시대에 대한 증언은 007 시리즈에 신무기를 개발하는 캐릭터인 Q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는 과거처럼 제임스 본드에게 어마어마한 신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저 제임스 본드의 지문을 인식해서 그만이 쓸 수 있는 총 한 자루와 그가 위기상황에 놓일 때 위치를 알려주는 위치추적기 한 개를 줄 뿐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 그런 무기를 만들던 시대는 지났어요.”

 

실제로 그런 시대는 지났다. <007 스카이폴>의 적으로 등장해 MI6를 위기에 처하게 만드는 실바라는 인물은 간단하게 컴퓨터를 해킹해서 버튼 하나 누르는 것으로 건물을 폭파시킬 수 있는 시대라고 증언한다. 놀랄만한 무기? 아마도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에는 그것이 유효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신무기를 제공하는 Q는 이 영화에서는 이제 해커 같은 존재가 되어 있다.

 

007 시리즈의 핵심적인 재미 중 하나인 신무기가 빠져버린 그 자리의 공백을 메우는 건 제임스 본드라는 그 자체가 강력한 무기다. 제임스 본드는 이 스마트한 디지털 세상에 혼자 남아있는 아날로그적인 존재처럼 보인다. 그는 여전히 오토바이를 타고 허공을 날아오르고 달리는 열차의 지붕 위에서 적과 사투를 벌인다. 그를 디지털 세상으로 연결하는 건 그의 귀에 꽂힌 무선통신기가 전부다. 그 통신기를 통해 그는 컴퓨터가 날라다주는 거대한 정보를 제공받는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살인무기인 몸과 통신기.

 

여러모로 달라진 환경(국제정세나 미디어 환경 같은)은 007이라는 시리즈 자체에 대해 그 유효성을 묻는다. 사실 007 시리즈의 기반은 50년대 초반부터 80년대 말까지 이어지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다. 이 냉전체제는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정치 개혁에 의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그 막을 내렸다. 007 시리즈도 그 영향을 그대로 받았다. 87년 티모시 달튼이 주연한 <리빙데이라이트>와 89년작 <살인면허>가 실패한 것은 냉전체제 붕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하지만 007시리즈는 이후에 피어스 브로스넌을 새로운 제임스 본드로 만들고 적으로 ‘테러리스트’들을 설정하면서 다시 부활한다. <007 스카이폴>에서 장관이 질문한 MI6의 유효성에 대해서 M이 증언하는 것과 딱 맞는 얘기다. M은 이 달라진 시대에 “우리는 과연 안전한가”하고 질문을 던지고는 과거의 보이던 적보다 지금의 ‘보이지 않는 적’이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또 무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용기라는 것을 피력하면서 제임스 본드를 그 상징적인 존재로 설정한다.

 

<007 스카이폴>의 적이 테러리스트라기보다는 M을 제거하려는 인물로 설정된 점은 이 영화가 다른 한편으로 007 시리즈가 왜 여전히 필요한가를 설파하려는 목적을 띠고 있다고 읽혀진다. 제임스 본드는 위기에 처한 M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이 장면들은 마치 007 시리즈를 지켜내려는 사투처럼 보인다. 50주년을 맞은 007 시리즈가 그 존속의 의미에 얼마나 천착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007 스카이폴>은 그래서 최첨단 무기들의 전시장이었던 전편을 탈피해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액션에 더 천착한다. 디지털 시대에 더 강력하게 다가오는 아날로그에 대한 매력. 본드 카로 1964년 작인 <007 골드핑거>와 1965년 작인 <007 썬더볼 작전>에 등장했던 ‘애스턴 마틴 DB5’라는 클래식한 디자인의 차가 등장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늘 나오는 시퀀스 중에 하나지만 제임스 본드를 붙잡아 놓고 적인 실바가 너의 장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제임스 본드는 “부활”이라고 말한다. 그 말에 걸맞게 <007 스카이폴>은 007 시리즈가 여전히 매력적이고 유효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