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놀러와' 폐지 유감, 버릴 건 따로 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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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와' 폐지 유감, 버릴 건 따로 있다

D.H.Jung 2012. 12. 11.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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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은 지표일 뿐, 살생부가 될 순 없다

 

아마도 시청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프로그램은 없을 게다. 그것은 유재석이라는 발군의 MC가 무려 9년 동안이나 이끌어온 장수 프로그램 <놀러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시청률이 빠진다고 폐지 결정이라니. 그것도 제작진이나 출연자와의 고민은커녕 일방적인 통보라니 그간 함께 고생해온 시간에 대한 예의조차 없는 행동이다.

 

'놀러와'(사진출처:MBC)

시청률 하락은 분명 시청자가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가 맞다. 하지만 그것이 프로그램을 폐지하라는 신호는 아니다. 특히 <놀러와>처럼 오랜 시간을 끝없이 변신과 진화를 거치며 버텨내온 프로그램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MBC라는 몸통에 병이 나서 <놀러와>라는 손가락이 예전처럼 잘 움직이지 않는다고 그 손가락을 잘라내는 게 방법일 수는 없지 않나.

 

물론 아예 가능성조차 없는 프로그램이라면 폐지 수순을 밟는 것이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놀러와>는 다르다. 그 동안 달라진 예능 트렌드 속에서 위기를 맞기도 했었지만 이 토크쇼는 특유의 ‘착한 토크 방식’으로, 또 편안함을 무기로 시청자들을 다시 끌어 모았고, ‘세시봉 콘서트’ 같은 음악과의 접목을 통해 토크쇼의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위기 대처 능력이 충분히 있다는 방증이다.

 

이것은 최근 <놀러와>의 변화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새롭게 시작한 ‘트루맨쇼’가 좀 더 솔직한 남자들의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얻어가고 있고, ‘수상한 산장’ 역시 지금껏 시도하지 않았던 ‘잠자리 토크(?)’로 주목을 끌었다. 유재석이 ‘위기의 토크쇼’라고 말할 만큼 <놀러와>에 대한 위기의식은 MC들조차 공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모두가 그 위기를 넘어서려 노력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폐지결정은 자칫 MBC의 다른 프로그램들에게도 찬물을 끼얹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잘 나가던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떨어진다면 정확한 그 원인을 찾아 변화를 모색해봐야 할 일이지, 애꿎은 프로그램을 희생양으로 내세울 일이 아니다. MBC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경영진들의 ‘내 탓이요’ 마인드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자신들은 잘못한 게 없고 모두가 제작진의 문제이고, 파업의 여파 때문이라는 식이다. 위기에 있어서 좋은 수장과 나쁜 수장의 차이는 그 집단의 문제에 스스로 책임을 지느냐 아니면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느냐의 차이다. 과연 현재의 MBC 경영진들은 좋은 수장의 역할을 하고 있을까.

 

만일 시청률표를 하나의 살생부로 들고 다니며 휘두른다면 MBC에 남아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몇 되지 않을 게다. 시청률은 시청자의 마음을 읽는 지표로 활용해야지, 그것이 가진 차가운 숫자와 그로 인한 방송사의 수익 그리고 그로인한 경영진의 정치적인 입지의 문제로만 읽어내면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 시청자들의 마음이 MBC로부터 떠나는 것은 일선에서 고생하는 제작진들이나 프로그램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 시청자들이 사랑했던 MBC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지게 만들고 있는 일부 MBC 정책결정자들의 잘못된 일련의 선택들에서 비롯된 것이다.

 

MBC가 버려야 할 것은 <놀러와> 같은 변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MBC가 버려야 할 것은 날 선 비판의식을 갖고 대중들의 눈과 입이 되어주었으나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기자들과 PD들이 아니다. MBC가 버려야 할 것은 시청률이 바닥을 치는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유재석처럼 열심히 노력해온 MC들이 아니다. MBC가 버려야 할 것은 일부 경영진들의 내 탓은 없고 남 탓만 하는 마인드다. 시청자들의 이반된 정서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 마음이다. 유감스런 <놀러와> 폐지로 인해 더 이상 MBC에 놀러가지 않겠다는 시청자들의 이 정서를.